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월폴라 라훌라 지음, 전재성 옮김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전재성 역본은 약간 심하게 말해서 라훌라 스님이 쓴 «What the Buddha Taught»의 역서가 아니다. 전재성 역본으로 읽다보면 나름대로 잘 읽히다가도 팔정도 대목에서 한없이 늘어질 것이다. 역자가 자신의 글을 수십 면 삽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본 제목조차도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이다. 물론 원저에 역자의 글을 삽입하면서 별도의 표기를 해 주었다면 참을 만하겠지만, 그런 표기도 해놓지 않았다. 팔정도 대목 뿐만 아니라 “일일이 거론하기가 무척 어려워 밝힐 수가 없”을 정도로 곳곳에서 역자가 라훌라 스님의 글을 보완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저자의 글이고 어디까지가 역자의 글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역자의 의도는 분명 보완이었겠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보완이 아니라 훼손이다.

더구나 전재성 역본의 역어들은 내가 서양인문학을 거치면서 머리속에서 털어내었던 개념들을 대다수 포함하고 있어서 글을 읽을 때 꼭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 든다. «What the Buddha Taught»에 어엿하게 실려 있는 Selected Texts(pp.91~138) 대목을 아예 빠뜨린 것도 의외다. (원저는 Selected Texts를 부록이 아니라 본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 역본은 라훌라 스님의 책이 아니라, 저자와 역자의 합작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역자 역시 이점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거지 성자» 등을 읽으면서 역자의 인생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독자로서 이런 비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프지만 라훌라 스님의 저서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나와 의견을 달리하여 전재성 역본의 상세한 보완 의도를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라훌라 스님의 «What the Buddha Taught»의 또 다른 역본,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이승훈, 경서원)를 추천한다. 그 책에 대한 서평에서 밝혔지만, 탁월한 번역이다. 물론, 전재성 역본이 나은 점도 있다. 전재성 역본은 라훌라 스님의 빨리어 텍스트 출처를 근간된 PTS 판본의 출처로 바꾸는 수고를 하였으며, 일일이 주석 형식으로 빨리어 원문을 싣고 있다. 이 장점을 제외하고는 이승훈 역본의 우위가 현저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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