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리뉴얼판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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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소설을 쓰는 이도 아니고, 류를 따지자면 거짓에세이를 쓰는 사람이다. 존트레비키처럼, 소피의 세계처럼 가상의 주제를 정해놓고 거기에 들어가는 심리학적 이야기를 버무린다.

 

장은 묵혔다 먹어야 제맛이지만 책은 사자마자 읽어야 제 맛이다. 요즘은 책을 잘 읽고, 폰을 보는 시간이 아깝고, 책을 페이지를 정해서 꾸역꾸역 읽지 않는다. 이런 날들이 약 2주 정도 이어지고 있는데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지금의 시간들이 좋다. 누군가를 폄하하고 나를 죽이면서 사는 시간들이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 나보고 아파트에서 하는 댄스에 가입을 하러고 권유해서 들은 일이 있다.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권유해서 가입했더니, 단톡방에는 끼워주지 않았다. 그리고 변경 공지를 매주 해대는 통에 수업을 듣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엔 나만 가 있거나, 어느 날엔 가보니 이미 끝나고 있거나 하는 식이었다. 몇 번 당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고 물어보니, 그제서야 단톡방에 올렸다는 말이 돌아온다. 그제서야 나만 모르는 단톡방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됐다. 이런 상황을 강사가 지켜보다가 한 소리를 하자, 내가 차단했다며 나를 적으로 몰아갔다. 누구의 단톡방인지 알고 내가 차단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 상황을 모르는 회원에게 단톡방에 입장시켜줄 수 있냐고 했더니 바로 됐다. 그렇다. 이로써 나를 배제하고 가입시키지 않았던 나를 추천한 이와 방장의 나를 향한 모욕은 분명해졌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랬을까? 여러번 물어봤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돈을 버리고, 시간과 마음을 지키기로 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을 찾는 나는, 덕분에 운동갈 때마다 아이들이 따라 간다고, 안가면 안되냐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했다. 덕분에 더 오래 아이들과 있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운동은 집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최근 르ooo이 한다는 운동 동영상이 인기라며 친구가 보내줬는데, 왠만한 운동을 다녀온 것보다 효과가 좋다. 3주 정도 하고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집에선 절대 운동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깨졌다는데 만족을 느낀다.

 

나의 일상 이야기는 그만하고, 유혹하는 글쓰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본다. 마치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사야되는 책이 분명한 것 같아서 사지만 결국엔 13000원의 돈이 무색하게 쓸모가 없는 책이다. 그저 잘 쓴 글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저 잘 쓴 글은 그저 잘난 글인 채로 있을 때가 있다.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글이란 무엇인지, 연장통, 창작론, 인생론으로 마무리한다. 목차와 글의 구성은 잘 짜여져 있다. 아니 너무나도 완벽하다. 그러나 그 안의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고 낭비했던 청춘을 서너 시간 되살려본 다음 각자의 길로 흩어지려고 했다. 그녀는 지난 세월에 대하여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아 흐릿하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는 것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없는 사람이다. 결론은 그렇게 간단하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창조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 일단 목표량을 정했으면 그 분량을 끝내기 전에는 절대로 문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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