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서재 - 자기만의 책상이란 얼마나 적절한 사물인가 아무튼 시리즈 2
김윤관 지음 / 제철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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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재

김윤관 지음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가 어떻게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목수의 목적은 유용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마치 목수라는 사람을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기계, 사물로 비추어지는 문장을 구사해, 적잖히 당황하고 실망했다. 그런데 이 사람, 생각이 좋다. 그리고 책 표지에 있는 흘린 피사체도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꽤 이 분야에서 느낌있게 일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한 피사체는 실망스러웠다. 내가 왜? 나는 왜 이렇게 실망하는 걸까? 바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귀히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었다.

 

타인의 서재를 본다는 것은 타인의 은밀함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근거림, 그 엷고 달콤한 죄책감. 서재를 통해 저자는 사람을 들여다본다. 서재에 놓인 책상, 물품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고개를 15도 정도만 돌려도 버리고 싶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전히 빈곤하고, 부산하다. 비워내고 비워내야 한다.

 

기대는 번번이 배반당한다.

 

책장의 한 칸을 떠올려보자. 수직으로 꽂은 책들 위에 공간이 남는다. 자연스럽게 그 책들 위에 수평으로 책을 쌓는다. 책을 꽂은 앞부분에도 여분의 공간이 남는다. 자연스럽게 그 칸에 액자를 두거나, 열쇠 약통, 작은 컵 등등을 놓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직으로 꽂은 책들의 단정한 모습은 사라지고 책장은 무질서한 책들과 잡다한 물건들의 보관함처럼 변해간다. 언제부턴가 이런 모습을 낭만적인 정서로 받아들이게까지 됐지만, 책장의 원래 목적과 멀어진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일반적인 소설 크기의 책을 간결힌 꽂기 위한 칸의 적정 높이는 25cm이다. 시집과 작은 판형의 소설에 맞는 칸의 높이는 23cm이다. 올바른 문화라는 것,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균형이, 책장에 있다.

 

서재의 중심은 책상이다. 책상은 서재의 문패와도 같다. 책상이 있다면 그 공간을 서재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완벽한 서재는 책상 하나가 놓인 적절한 크기의 텅빈 공간일 것이다. 책장이 인풋의 장치라면 책상은 아웃풋의 도구이다. 책장이 인트로라면 책상은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책상은 나라는 주체성의 기물적 상징이다. 독립된 인간은 반드시 자기만의 책상을 소유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책상을 소유하고부터 자신을 돌아보고 손끝을 움직이게 된다. 책상이 없는 사람은 재산이 없는 사람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사람이다. 오직 작은 책상 하나에서 자기 삶의 시작과 끝을 느끼고 바라보는 한 인간이다. 쓸쓸하고 불완전해서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다.

 

왜 굳이 내키지 않는 의자를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문장을 통해 내 소비패턴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천원이든 십만원이든 소비를 하는데 만족감을 느끼며 해야 하는데 그냥 조금 더 싸서 하는 소비를 하고야 만다. 오늘도 그렇다. 난 그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가격을 보고 물건을 구매하고 만다. 정녕 그건 내가 원해서 산 것인가. 굳이 내키지 않는 소비를 하는 건 비단 의자뿐만이 아니다. 내 삶이 거기 있었다. 혹은 거기 있다, 여전히.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는 일

밝은 빛이 스며들고 정갈한 책상 하나로 이루어진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는 일이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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