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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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레프 톨스토이 지음/박형규 옮김

 

누군가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고,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이 신의 뜻이라며 맹목적인 믿음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 누군가는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고, 내 고통을 암묵적으로 수긍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신앙의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믿음이 없다. 차마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믿음을 가진다는 건 이 생애는 힘들 거 같다.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될테니.

 

[셋이면서 하나의 실체인 하느님, 엿새 동안의 창조, 악마와 천사 등등 내 머리가 돌지 않는 한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성에 기초한 지식의 길에서는 삶을 부정할 수 밖에 없고, 신앙 속에서는 삶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말도 안되게 이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신앙에 따라 삶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이성을, 그러니까 삶의 의미를 요구하는 이성 자체를 부정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앙을 믿는 나라들에 사는 우리 교양 있는 계층은 각 종교가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완고하게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경멸스러운 모습을 똑똑히 보았고, 그만큼 그 악의 유혹도 강력하여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브런치를 한다는 것, 서평을 적는다는 것, 페이지를 쓴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어를 잘하거나 논문을 써서 학위를 취득하는 일처럼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는 건 아니지만, 나로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병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런 때에 글을 읽고 사유하고 무언가를 쓰는 행위는 분명 나를 살게 한다.

 

톨스토이는 회고록에서 지식, 학문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결국 종교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살아가게 함을 이야기 한다. 그러기 위해 [삶의 질문은 신경 쓰지 않고 특수한 학술적 문제만 해결하려는 분야에 눈을 돌려본다면 인간의 지적 능력에 감탄하는 한편,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된다.]거나 [인류의 아주 작은 부분을 연구해서 얻은 결론을 일반적인 결론인 양 내세우는 이러한 지식들이 얼마나 불성실하고 부정확한지는 제쳐두자]고 이야기한다. (내 입장에서는 삶의 지식과 학문의 경계를 어우르는 심리학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종국에는 [지식은 덜 필요한 것일수록, 다시 말해 삶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적을수록 명료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시간에도 글을 쓰며 학문을 하고 있다. 학문으로 돈을 벌고. 지혜가 많을수록 힘들다고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지식을 넘어선 지혜가 뒤따라야 한다. 그가 정말 종교에 대한 최종 믿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글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했다. [월든]이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아도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보는 이유는 어느 면에서라도 일치된 자연주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 가축처럼 부려지는 미천하고 배우지 못하고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한편, 똑똑하다는 우리는 공공연히 주인의 재물을 축내고 주인이 바라는 일을 하지도 않는 데다가 빙 둘러앉아 이러쿵저러쿵 따지기만 한다. ‘왜 이 막대기를 움직여야 하지?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러고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주인은 바보이고 이 세상에 주인 따위는 없다. 우리는 똑똑하지만 그 똑똑함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무용함만 느끼게 되어, 어떻게든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한다.] 톨스토이 자신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회고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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