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화서 - 2002-2015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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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화서

이성복 지음

 

동네에 숨듯이 열린 작은 책방을 좋아한다. 그곳은 지하에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나열된 [무한화서]를 만났다. 정갈함을 넘어선 획일하고 고집스러운 책 표지에 읽고 나면 넌덜머리가 날 것 같았다. 다시 자리에 꽂아두고, 같이 간 친구에게 [태어난 나이] 그림책을 선물하고는 나왔다.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을 사려는데, 왜 이 책 생각이 났을까? 불쑥 구매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저자의 세계가 정리되지 않으면서 정리되어 있어, 의도를 알 수 없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것은 내 것이 되고, 어느 것은 남의 것이 되기도 하는 그런 글들이 찾아왔다. 후회하고 후회하는 속에서 재미있기도 하다.

 

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서너줄씩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비단 이는 시를 쓰는 것만의 자세가 아니다. 글을 쓰는 자세,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도 이에 비유할 수가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은 들이고, 반감이 드는 것은 지우면서 보았다.

 

[시는 곶감에 분이 나는 것과 같아요. 자기 시에 분 안 난다고 밀가루 쳐바르면 되겠어요.] 쳐바른다는 말이 이렇게 웃기면서 속시원한 표현이었던가. 그때부터였나. 반대하는 마음이 아닌 반기는 마음이 든 것은.

 

[뭔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에게 속는 거예요.] 뭐라고요? 그럼 내가 드는 이 짜릿함은 나를 속여서 드는 도둑의 마음이란 말인가요? 그럼에도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저 정말... 좋아요...

 

[치명적 상처를 입은 사람은 난 괜찮아...... 한 대요. 그러고는 퍽 쓰러지지요.] 난 안괜찮아요. 괜찮지 않다고요!

 

저자의 이런 저런 말들이 꼬이고 꼬이면 이렇게 된다. [평범한 것들을 오래 지켜보고, 힘없고 초라한 것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어차피 다 망하게 되어 있다]. 저자의 말들에 토를 달면서 언어유희에 듬뿍 절여져서는 다른 것들은 잡음으로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우리의 일상은 얼다가 녹다가 하는 일의 반복이에요. 이 지루한 아름다움! 우리가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요. 오직 견디는 것뿐, 이루 안 받기 위해, 좀 더 강해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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