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 그림 시집
정여민 시, 허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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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정여민 글, 허구 그림

 

유투브를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친절한 그림자가 있다. 유투브를 보고 닫는다. 다음날 다시 유튜브를 켜면 어제 본 동영상과 관련된 장르가 친절하게 뜬다. 습관의 힘이란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은 무언가를 하고는 싶은데 실천이 되지 않거나, 무언가를 하기 싫은데 자꾸 하게 되는 이유가 습관 연결고리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습관의 연결고리를 이용하여 형성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별벅스, oo마트 등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이 중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나면 데이터를 분석하여 필요한 물건들이 있을 때 전단지를 집 앞으로 보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화를 냈다. 내 정보를 침해했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아이고 내 정보를 가지고 이리 이용 저리 이용, 이리 분석 저리 분석하다가 나한테 친절하게 추천까지 해주네식으로 좀 더 친숙하고 깊숙해졌다. 그리고 추천이 뜸하면 왜 이렇게 일을 더디게 하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기다리게 될 때도 있다. 그런 방식으로 정여민 저자의 글을 유튜브로 접하게 되었다. 80211의 경쟁률이라는 선전 문구를 메인에 걸고 있지만 주인공은 글이다. 글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수필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이미 게임 끝이다. 첫 구절을 소리내어 대뇌여 본다. 벌레를 물어다주는 어미새의 마음과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바라보는 백조의 마음, 많은 마음들이 적셔왔다. 글을 다 읽고, 정여민 저자의 글을 타이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를 하고 알라딘에 책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시집이 출간되어 있었다. 수필보다 더 마음을 애워쌌다. 모든 시가 마음에 들어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훼손되지 않은 글자들이 있었다.

 

[쉽표

책 속의 글자도 쉬어 가는 곳이 있고

자동차가 달리던 고속도로에도 쉬어 가는 곳이 있고

해님도 구름에 가려 쉬어 가는 곳이 있듯이

바람도 쉬어 가는 곳이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지금은 쉬어 가고 있는 중이다]. 시라는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저자가 글을 썼지만, 읽는 이의 세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마음 아픈 이들을 매일 만나고 있는 나는 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중이니, 언젠가 쉼표를 끝내고 다시 그들의 길로 걸어갈 것이라 믿는다.

 

비록 지금은

[시계 바늘 끝에 매달려

새벽 바늘을 밀어내고 있다

 

새벽은 가지런한 신발들을 흩어 놓았고

내 마음을 허공에 띄웠다]처럼 내 시간이 내 것이 아닌 듯 빠져나가고 있지만, [현관의 젖은 신발이 햇살에 달렸다.]는 듯이 젖은 마음도 마를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에

칼 같던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낸 장군이가

겨울에 갇힌 표정을 짖지 않고

나에게 아침부터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처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마지막으로 처음 내 마음에 들어왔던 정여민 저자의 수필을 공유하고 싶다. 정여민 저자의 앞으로의 작품을 기다리며.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 하늘 끝에서 숨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가을을 많이 닮은 엄마가 계신다. 가을만 되면 산과 들을 다니느라 바쁘시고 가을을 보낼 때가 되면 '짚신나물도 보내야 되나 보다'하시며 아쉬워하셨다. 그러시던 엄마가 2학년 가을,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 가족은 정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울 구경이나 해 보자며 서울 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3'라는 판정이 나왔다.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야 되는 순간이라 생각이 들 때 아빠가 힘겹게 입을 여셨다. "혹시 오진일 가능성은 없나요? 평소 기침 외에는 특별한 통증도 없었는데요." 무언가를 골똘히 보던 그때의 선생님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이셨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 것 같은 병원을 우리 가족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내내 엄마는 말을 걸지도 하지도 않으며 침묵을 지켰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울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소리 내어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는 한동안 밥도 먹지 않고 밖에도 나가시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둘씩 담을 쌓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떠나서 혼자 살고 싶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짐이 될 것 같다고 떠나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러면 여태껏 우리가 짐이었어? 가족은 힘들어도 헤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게 가족이잖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내 눈물을 보던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지금도 그때 엄마가 우리를 떠나려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기 좋은 산골로 이사를 가지고 하셨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도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 산골이다. 이사할 무렵인 늦가을의 산골은 초겨울처럼 춥고 싸늘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산골의 인심은 그 추위도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 할머니가 고구마 한 박스를 머리에 이어 주시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라며 갖다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함께 아파해주셨다.

이곳 산골은 6가구가 살고, 택배도 배송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 얼굴도 못 보겠구나 생각할 무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아저씨가 편지도 갖다 주시고, 멀리서 할머니가 보낸 무거운 택배도 오토바이에 실어 갖다 주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감사해 하셨는데 엄마가 암 환자라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꾸지뽕'이라는 열매를 차로 마시라고 챙겨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의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고구마를 주시던 할머니에게서도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를 주셨던 베트남 아주머니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산골까지 오시는 우체국 아저씨에게도 마음속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때문에 엄마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금 예전처럼 가을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 같아!" 하시며 웃으셨던 그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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