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학 대가인 피터 드러커 박사를 만나 뵈러 간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여간 부러워하질 않았다. 드러커 박사의 〈단절의 시대〉라는 책을 30년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세상을 밝히는 책들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만 20권이 넘는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비영리 단체의 경영〉 〈이노베이터의 조건〉 〈21세기 지식경영〉 〈다음 사회〉 〈경영의 지배〉 등 수많은 역작들이 번역되면서 드러커 애호가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드러커 박사를 직접 만나 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업적을 기념해서 이름붙인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그는 33년째 석좌교수로 있는데 올해 나이가 아흔다섯이다. 엘에이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클레어몬트라는 대학도시에서 사는데 작지만 숲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담한 댁 앞에 도착하니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어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드러커 박사가 보행기를 앞세우며 거실을 가로질러 나오고 있었다. 드러커 박사의 수많은 저술들을 번역한 대구대학교의 이재규 총장, 이해두 대학원장, 이형모 〈시민의 신문〉 사장, 장영철 경희대 교수 등 뉴패러다임 포럼 일행을 노교수는 마치 오랫동안 친한 제자들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했다.

거실에서 두 계단 아래, 마당을 향해 서재 겸 라운지가 있었는데 한쪽 벽에는 책이 가득 꽂힌 서가가 있었고, 소파와 의자가 편안히 놓여 있어, 드러커 박사와 정담을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제 막 출판되었다는 드러커 박사의 신간 〈데일리 드러커〉를 사오느라고 약속시간보다 다소 늦은 우리 일행들의 시간에 쫓기는 마음을 읽었는지, 드러커 박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에 대한 이야기와 지식사회로 가야 하는 시급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전날 엘에이에 도착하자마자 3시간 가까이 검토하고 보낸 질문서를 이미 다 읽은 듯 종합적인 강론을 한 시간 이상 이어갔다. “평생학습은 사람들을 젊게 합니다”라는 말로 끝마무리를 했다. 점심을 예약해 놓았으니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면서 우리 일행들이 사 간 책들에 일일이 덕담을 써주고 친절히 서명을 하는 노교수의 모습은 평온하고 인자하기 그지없었다.

드러커 박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야 창밖에선 비가 폭우처럼 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인코트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뒤, 드러커 박사는, 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보행기를 앞세워 집밖으로 걸어 나갔다.

식당에서 노교수는 우리들의 일정을 다시 한번 물었다. 전날 오후 늦게 엘에이에 도착하였고, 그날 밤으로 떠난다고 했더니, 당신만을 보러 그 먼 곳을 왔느냐며 새삼 놀라는 기색이었다. 우리를 귀한 손님이라며 점심은 자신이 굳이 사겠다고 고집했다. 오래동안 존경해 마지않던 노교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느라고 수저 들기조차 잊고 있던 필자를 향해, 왜 식사가 오지 않느냐고 물을 만큼, 드러커 박사는 자상하고 좌중을 이끌고 있었다.

요즘 무슨 글을 쓰시냐고 여쭈니까 〈월스트리트 저널〉에 나갈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했다. 컨설팅 관련 사업도 준비하고 있지만, 터부 같은 것이 있어, 아직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아흔다섯 나이에도 불구하고 드러커 박사의 머리와 마음은 청년 같았다. 다가오는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지식 전문가들이 실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실존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점심을 끝내고 일어나면서 드러커 박사께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들려달라고 했다. 드러커 박사께서는 “평생학습은 사람들을 젊게 합니다”라고 웃으면서 힘차게 화답했다. 클레어몬트를 떠나며 우리는 드러커 교수께서 백수를 넘어 만년 청년으로 살기를 기원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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