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네 야채가게
김영한.이영석 지음 / 거름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 관념이 없어서 돈 관리 엉망이고 경제경영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퇴근과 동시에 지하철을 타면서 집에 도착하기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고, 결국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서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읽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 야채가게에 가서 과일이든 야채든 꼭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이 정도면 이 책을 구입한 건 성공이다!

이 책은 정치인이나 재벌 같은 사람들의 자서전도 아니고 평전도 아니다. 경영컨설턴트인 저자가 야채가게 사장 이영석 씨를 관찰하면서 쓴 제3자의 관찰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이영석 사장이 '나 이렇게 고생했고 이만큼 성공했소'라고 말했다면 자랑처럼 들리고 설득력이 떨어질텐데 이영석 사장이 당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더라, 야채가게에서 물건을 사보니 이렇더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해 주니 책의 내용이 더 잘 와닿는다.

총각네 야채가게가 나에게 준 충격은 너무 크다. 매스컴에서 많이 소개되었다고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을 뿐이다. 18평짜리 야채가게의 평당 매출액이 대한민국 최고라니. 10여 명의 종업원들이 모두 총각이라니. 15개국에 해외 연수를 다녀온 직원도 있다니. 이 정도면 기업 수준 아닌가! 하지만 이건 잘 나가는 어느 벤처기업의 이야기도 아닌, 단지 하나의 야채가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놀랍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의 비결이 있고, 성공하는 회사에는 회사를 잘 되게 만드는 경영 원칙이 있다. 야채가게의 이영석 사장에게도 나름대로의 성공의 비결과 경영 원칙이 있다. 수많은 소비자를 대표해서 과일, 야채, 생선을 산다는 책임감이 투철하고, 야채가게로 적당히 돈이나 벌자는 한탕주의로 장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업종만 바꿨어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을텐데, 결국 이별을 택한 걸 보면 그 꿈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지금도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장엘 나가서 물건을 손수 고른다. 그리고 소비자가 만족할만한 물건을 사기 위해 모든 과일을 먹어보는 수고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분명 팔릴만한 물건인데도 맛이 없으면 아예 가게에 들여다 놓지도 않는다. 그래서 재고가 없는 야채가게가 가능한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처음의 마음이 사라지고 적당히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사회의 적당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영석 사장은 정말 유별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유별남이 그와 총각들의 야채가게를 대한민국 최고로 만들어 놓았다. 최고에는 항상 이유가 있고, 그만큼의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와는 업종도 다르고 앞으로의 방향도 다른 야채가게의 이야기이지만 총각네 야채가게에는 무료함과 나태함에 빠진 나에게 좋은 명약이 숨어있었다. 물론 그 명약을 어떻게 복용하느냐는 나에게 달려있겠지만. 야채가게에 장보러 가면 좀더 효력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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