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장차현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장차현실은 이혼녀다. 이혼을 밥먹듯이 하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르는 것이 이혼녀다. 여자가 얼마나 대가 세면, 팔자가 세면...이런 식으로 욕을 먹는 것이 이혼녀이다. 이혼녀에다가 프리랜서 만화가다. 일이 있으면 수입이 있지만 없으면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다.

그녀에게는 은혜라는 딸이 있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졌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남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엄마의 눈에는 너무나 이쁜 둘도 없는 딸이다. 딸은 외로움 때문에 술 마시는 엄마에게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엄마를 야단치는 의젓함도 가졌지만 명절 때는 아빠가 오길 기다리기도 하는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은 그냥 아이일 뿐이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는 이렇게 이혼녀에 프리랜서 만화가인 장차현실과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 은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화로 보여 주고 있다. 장차현실의 만화는 아주 예쁘진 않지만 독특하고 인물의 개성을 잘 살리고 있는 스케치로 일상사를 코믹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또, 너무나 솔직하다.

장애를 가진 딸을 데리고 사는 이혼녀라면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보면서 남자 보기를 돌 같이 하는 그런 여자를 떠올리게 마련이건만 장차현실은 이런 고정관념을 모두 뒤집어 버린다. 혼자 자는 밤이 외로워 남자를 떠올리고, 데이트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하고, 얼굴이 붉어질만한 꿈 이야기도 서슴치 않게 하는, 한마디로 남자 밝히는 이혼녀다. 매번 딸 은혜 덕에 정신을 차리며 자신을 추스르기도 하지만 은혜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엄마가 될 것 같진 않다.

딸 은혜는 또 어떤가. 장애가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우기고, 엄마에게 이것저것 갖다 달라고 요구할 때는 장애인이라 못 한다고 철판 까는 영악한 아이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도 정말 자기가 이쁜 줄 아는 심각한 공주병 증세가 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엄마의 근심이고 한숨이고 눈물이었을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의 희망이고 사랑이며 분신이 되어 간다.

아이의 장애가 전혀 장애가 되지 않고, 이혼이 살아가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용감한 모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다 가도 가슴이 저린다. 아이의 육아 문제를 넘어서 교육 문제, 사회 문제, 여성 문제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이 용감한 모녀의 이야기는 익살스러우면서 슬프고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리고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던 문제들도 더불어 생각하게 한다.

이것 저것 많은 문제들을 이 모녀와 함께 고민해 보게 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고민하게 되는 건 이 모녀가 처한 현실에 내가 처했을 경우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다? 절망적일테지. 거기다가 이혼까지? 여자 혼자 어떻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며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인가 한탄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진 않을까.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장애를 탓하면서 엄마의 손길에서 벗어나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절망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이 모녀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은혜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사회의 벽에 많이 부닥치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특히 장애를 가진 여성의 자리가 얼마나 좁은지 뼈저리게 느끼겠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엄마의 사랑과 가르침으로 그 모든 벽을 장애로 느끼지 않고 떳떳하게 사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당당한 여성이 되지 않을까. 자신의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지, 세상의 장애는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심어준 엄마에게 너무 고마워하지 않을까.

나도 딸을 낳는다면 세상에 벽에 좌절하지 않도록, 여자로 태어난 것이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것임을 아는 당당한 여자로 키우고 싶다. 사회적 장애를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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