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은 사진 한 장 - 윤광준의 사진 이야기
윤광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등학교 때는 꿈도 많았다. 실현 불가능한 꿈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였다, 대포 같은 커다란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하고 아마존 여전사처럼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사진반에 든 적도 없고, 취미 삼아 카메라를 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겉멋만 잔뜩 든 그때의 꿈.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런 꿈을 다시 꿀 기력조차 없고, 어딜 다니는 것도 귀찮아서 누가 카메라를 안겨 줘도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것은 겉멋에 물들어서 꿈꾸는 것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말이다.

최근 불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 열풍에 나도 전염되어 이것저것 찍어 보면서, 사진에 대한 감각을 익혀 보려고 하지만 찍어도 찍어도 다른 사람의 잘 찍은 사진에만 눈이 가서 도대체 내 사진에 대한 만족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라는 제목의 강렬함에 선뜻 이 책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확실한 답을 주진 않는다. 작가의 사진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을 잘 찍는 비법이 다름 아닌 사랑과 끈기, 열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20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며 겪었던 일, 작가의 사진 철학 등을 재미있게 풀어 쓰고 있다. 특히 부러웠던 건 곤충 사진을 찍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산과 들판을 헤매던 작가의 무대포와 열정이다. 성공을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곤충 사진 촬영을 무작정 시작했지만 계속되는 실패에 일본까지 건너가서 장비를 구입하고 촬영법을 배우고 돌아온 작가의 끈기에는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런 노력 끝에 찍은 정말 잘 찍은 곤충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란 이렇게 찍는 것이구나, 계속 찍어서 만족스런 사진 한 장을 건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미치면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 사랑을 하든 일을 하든 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즐거움을 안겨 준다. 표지에도 나왔지만 이국적인(?) 바닷가 아이들의 모습과 때가 꼬질꼬질한 코흘리개 사내아이의 표정에 절로 웃음이 터진다. 작가 인생에서 최고의 모델이 되어 주는 아내와 아들의 변해가는 모습도 볼만하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 아름답게 커가고 늙어간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해주니 말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일출이나 일몰, 아름다운 풍경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풍경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남겨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부터 열심히 찍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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