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 -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살아온 이야기, 책으로 쓰면 백 권도 더 될끼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푸념 섞인 넋두리. 여자이기에 겪었던,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억울하고 기이한 일들, 설움받고 눈물 흘렸던 일들이 어찌 한두 권으로 끝나겠는가. 자라면서,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더욱 할머니, 어머니의 이야기에 구구절절 공감하며 함께 서러워하고 눈물 흘리게 된다. 이제 나도 비로소 '여자'가 된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구구절절 한 많고 사연 많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백 권도 더 나올 법한 인생'을 요약한 책이다. 굴곡 심한 우리네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치며 살아온 할머니. 상처투성이인 우리네 역사만큼이나 그네들의 인생 역시 파란만장하다. 하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 전쟁, 침입 등의 큰일을 겪을 때마다 상처받고 짓밟히는 것은 여자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뼈아픈 우리네 역사 앞에서 할머니들의 운명이 평탄할 수 있었을까.

삼천포 갑부집 막내딸이 지리산 빨치산이 되어 동상으로 얼어버린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고,  종가집 며느리로 시집와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앞세우고 남편마저 월북했지만 평생 종가집 살림을 지키며 살아가고, 한 달간의 인연으로 생긴 딸아이를 홀로 낳아 키우며 평생을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한 순애보 ....그렇다고 한숨만 푹푹 나올 법한 기구한 운명만 이야기하진 않는다. 시대를 앞서간 혁명적인 여자의 삶도 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을 열고, 세계적인 춤꾼이 되기 위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인정받는 춤꾼이 된 후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기도 하고, 미군 부대의 물품 관리를 하다가 사업을 벌여 여성기업인으로 크게 성공한 이야기도 있다.

할머니들의 주름살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가 아릿하게, 서럽게 다가온다. 허나 그네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지켜보는 이나 이야기를 듣는 이의 아련함이 우습다는 듯 그네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래도 살아있음에 고마워하고 감사해한다. 나도 그네들의 생존이 고맙기만 하다. 그래서 그네들의 한이 한으로 남지 않도록, 팔자 기구한 여편네의 넋두리로 남지 않도록 맛깔나게 써내려간 작가의 글발이 고마울 따름이다.

세상에 부딪치며 살아온 그네들의 평생, 여생만이라도 편안하게 보냈으면 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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