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파리는 푸르다

피가  푸르기 때문이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앞 뒤에 숨어 꽃은 오월에 피고

가지들은 올해도 바람에 흔들린다

 

같은 별의 물을 마시며

같은 햇빛 아래 사는데

네 몸은 푸르고

상처를 내고 바라보면

나는 온몸이 붉은 꽃이다

 

오월이 오고 또 오면

언젠가 우리가 서로

몸을 바꿀 날이 있겠지

그게 즐거워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가 서로 몸을 바꿀 날이 있겠지,하면서 그게 즐거워서 물푸레나무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시인을 생각하면 나도 그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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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    담

                                                                     이 문 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로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 보내기 위하여

종은 아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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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많은 예술 이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 참된 예술과 거짓 예술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사이의 대립 역시 진부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과 사이비 예술은 구별되어야 한다. 진정한 예술이 권력에 의해 은폐된 모순을 폭로하고,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격화된 대립을 화해로 이끈다면, 사이비 예술은 모순을 은폐하고, 격화된 모순 앞에서 침묵한다.(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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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자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단편적인 사실과 흔적들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우리는 실제 사례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상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한 작가가 침묵했던 것,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것, 그 말하지 않은 것의 깊이이다. 작가가 어떤 작품을 남겼다면,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면, 우리는 분명 그를 잊을 것이다.

자신의 환멸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 모르고 그대로 사라지게 내버려둔 실패자, 그 실패한 예술가의 운명...

(에밀 시오랑, <독설의 팡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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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집에 전화를 한다.

전화를 하기만 하면

언제나 전화를 받던 어머니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매일매일 전하던 안부를 어찌할까.

그래도 나는 전화 앞에 우두커니 앉아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귀에 대고

행여나 어머니 음성 들릴까

숨죽여 전화벨 소리를 듣는데

전화벨 소리 저쪽 끝

너무나 넓고 아득한 쓸쓸함만

전화 줄을 타고 와

나를 덮는다.

 

어머니!

-시집 <위험한 향나무는 버릴 수 없다<(시학). 2006.8.30한겨레 신문 <시인의 마을>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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