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어찌할 수 없는 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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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출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in your revolution)

엠마 골드만, <내 인생을 산다는 것>(Living My Life)(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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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기회 균등이란 결국 개인이 지닌 성별, 인종, 계층 등과 같은 귀속적 특성이 그들의 상승이동 기회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하며, 대신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은 공명정대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크리스토퍼 헌(Christopher Hurn) , <학교 교육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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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 칼국수

눈이 우르렁거리는 사나운 날엔 국수를 해 먹는다. 애 곤지 알이 명태머리 꼬리가 처박는 폭설. 된장을 푼 멸

치 국물이 가스불에 설설 맴도는, 까닭없이 궁핍한 서울. 엉덩이 들고 홍두깨로 민 반죽을 칼질하고 밀가루

뿌려놓은 긴 국숫발. 바다 모래불 가 눈발을 그리는 20년 객기, 하며 창밖에 펄펄날리는 하는 눈사태 바라보

는 나는 이런다,

 

이러 날은 이 조태 칼국수만이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다.              


*조태(釣太): 주낙으로 잡은 명태              

조태 칼국수가 어떤 맛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음식이미지 하나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게'하는 이 근원적 힘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토속적 미각을 잃어버린 시대, 문득 그 始原을 찾아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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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계속 둥글어지고

그대는 수박을 먹고 있었네

그대의 가지런한 이가 수박의 연한 속살을 파고들었네

마치 내 뺨의 한 부분이 그대의 이에 물린 듯하여

나는 잠시 눈을 감았네

 

밤은 얼마나 무르익어야 향기를 뿜어내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잎사귀들 살랑거리는 소리 들으며

나는 잠자코 수박 씨앗을 발라내었네

입 속에서 수박의 살이 녹는 동안 달은 계속 둥글어지고

길 잃은 바람 한 줄기 그대와 나 사이를 헤매다녔네

 

그대는 수박을 먹고 있었네

그대가 베어문 자리가 아프도록 너무 아름다워

나는 잠시 먼 하늘만 바라보았네


 시를 읽는 내 가슴은 아리다.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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