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제거된다면, 단순한 음식도 사치스러운 음식과 같은 쾌락을 준다. 또한 빵과 물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배고픈 사람에게 가장 큰 쾌락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사치스럽지 않고 단순한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며,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사치스러운 것들과 마주쳤을 때 우리를 강하게 만들며, 우리가 행운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다'라고 할 때, 이 말은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다.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것도 아니고,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도 아니며, 물고기를 마음껏 먹거나 풍성한 식탁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모든 선택과 기피의 동기를 발견하고 공허나 추측들을 몰아내면서, 멀쩡한 정신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쾌락>

우리는 흔히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지금 행복하지 않은 건 그 조건의 결핍이나 불완전함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미래의 행복을 꿈꾸는 자들에게 현실은 늘 초라하다. 에피쿠로스는 결여감이나 박탈감 없는 행복, 금욕적 쾌락을 말한다. 이것은 '지금 그 자리에서 만족하라'는 진부한 정신승리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쾌락주의자'에피쿠로스는 어떻게 기존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체를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신체로 스스로를 변형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사람들이 지상과제로 떠받드는 부나 명예, 정욕 등은 그것을 얻기 위한 수고로움에 비하면 너무나 덧없고 불확실하다. 진정한 쾌락이란 그런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가 아니가 더 이상 그런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을 때, 즉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히 히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다. 달리 말하면, 쾌락이란 세상의 척도에서 벗안 새로운 욕망을 구성할 수 있는 능동적 신체의 특권이다. 채운 연구공간 '수유+너머'연구원

(경향신문, 200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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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신문을 펼치니(경향, 2008.9.3 고전에서 길찾기)짧은 문장이 눈에 들어 온다.

....근대 지식과 달리 '앎'이란 신체적인 것이다. 깨달음은 존재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앎이란 저 너머 파랑새를 쫓는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나를 변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성환(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신체와 앎의 분리가 근대 지식의 유입과 무관할 수는 없을 터, 그 폐해는 지금까지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 앎 따로, 행위 따로...어려서부터 자연 들어왔던 말들, '너는 딴 생각하지 말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라는 등등. 이런 말들의 통해 습득된 사고와 행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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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낸다면
죽집은 냈으면 한다.

죽 한 그릇
한 그릇의 죽

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었다는 말은 너무 사나워
죽이 밥보다 부족타는 생각도 습관이야

무슨 일의 바탕이든 연하고 조용해야만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다
또 그리고 싶어질 거다

거리거리마다
온갖 생고기 집 주물럭 짐 수산횟집이 난장을 치는 사이로
가만히 가만히 끼어서라도
죽집을 냈으면 한다

찬으로는 나박 물김치
단 하나지만 제일 어울리는 걸로 준비해 놓고
고소하고 삼삼하게 죽 냄새 종일 풍겨
내 죽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리

혹사와 공복, 년놈의 세상
죽사발을 만들고 말겠다 이빨 가는 사람
옳아, 죽사발을 만들어 주세요
죽사발이 많아야겠어요
이빨 상하지 않는 연한 음식 새알죽 가득 떠 올릴게
소매를 잡아 끌리라

속이 연하고 조용해지면
생각이 높아지는 법

생각이 높아지면
모든 지상의 것들에게로 겹으로 스미리
내 죽집 앞을 사뭇 기웃거리며 부딪는 떠돌이 개야
내 죽집 유리창엔 맨날 늘어진 입을 대는 늙은 가로수야
초대하리라 이 주그렁이들아, 나의 미식 녹두죽을 특별히 낼게

이 저녁도 길에 지친 행인들의 쓰린 속이 보인다
세상 폭력이 보인다
환중의 헐은 내벽이 보여

흰죽, 검은깨죽, 야채죽
비집고라도 죽집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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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백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서 한발 내디디면 추락하여 죽고 말겠지만, 마음은 한발 내딛어 허공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본래 공空인 자기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자기 자신 버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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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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