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트 북스(Daunt Books)
런던
“어릴 때에 독서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평생 갑니다.
늘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책 속에 둘러싸이고 싶은 순간,
책이 보여주는 세상 속에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수시로 찾아오죠.”
《가디언 지》에서 뽑은 ‘영국 출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에 들어간 제임스 던트는 금융업에 몸담고 있다가 책을 파는 일을 시작했고, 그것이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책에 대한 사랑뿐이 아니었다. 당시 던트의 애인은 그가 개인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것이 몹시 불만이었고 그래서 던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독서와 여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던트 북스를 창립해서 1990년에 첫 지점을 열었다.
던트 북스(출처 www.thetouristin.com)
던트 북스가 있는 자리는 런던 말리본에 있던 에드워드 7세 시대 건물로, 이전에도 서점이었던 곳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오크 발코니, 윌리엄 모리스 벽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던트 북스는 런던 유수의 여행과 문학 전문 서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런던 곳곳에 6개의 지점이 있다(말리본에 있는 던트 북스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지하 매장으로, 번역 소설과 시가 원작 국가별로 진열되어 있다).
금융회사에서 일해본 사람으로서 제임스 던트는 다른 서점들을 보면 ‘잘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한다. 물론 서점으로 성공을 거두기가 아주 어렵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저는 1980년대 말 버블 경제 시기에 던트 북스 매장 임대 계약을 했습니다. 곧장 1990년대 초반의 불경기가 시작됐죠. 저한테는 큰 실험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는 다르게 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를 시도해봐야 했습니다.
저는 책을 파는 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제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돕고, 상거래에 대해 교육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훌륭한 서점을 만들 수 있죠. 당시에 ‘오태커(Ottaker’s)‘나 ’워터스톤즈(Waterstones)‘ 같은 체인 서점들은 단기간 일할 사람들만 구하고 인건비를 최대한 아꼈어요. 저는 그렇게 하기 싫었습니다.”
던트 북스 내부(출처 www.dauntbooks.co.uk)
2011년 5월, 제임스 던트는 워터스톤즈의 상임이사 직을 맡았다. 워터스톤즈은 도서 시장의 끝없는 변화와 아마존닷컴의 지배 속에서 회사를 구해달라고 던트에게 간청했고, 던트는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는 워터스톤즈의 운영 방식을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각각의 지점에 강한 리더십과 더 긴밀한 팀워크를 조성해서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들었다. 워터스톤즈에는 자체 카페인 ‘카페 W’가 생겼고, 새 지점도 여러 곳 오픈할 예정이다. 조금 모순되지만, 아마존과 손잡고 워터스톤즈 매장에서 킨들을 판매하는 계약도 맺었다. 던트도 모순을 인정한다.
“경쟁자의 제품을 우리 매장에서 판매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전에 워터스톤즈는 자체 이북 리더기를 개발하는 데에 투자하지도 않았고, 이북 판매를 위해서 다른 이북 리더기 회사와 계약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W.H. 스미스는 코보(Kobo)와, 블랙웰스는 누크(Nook)와 이북 시장을 함께하고 있었죠.
워터스톤즈도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빠르게 성장하는 전자책 시장에서 설 곳을 완전히 잃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킨들 판매는 나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죠. 킨들을 살 사람이라면 워터스톤즈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살 테니, 차라리 워터스톤즈에서 사게 하는 게 낫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상적인 상황은 분명 아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던트 북스 내부(출처 www.dauntbooks.co.uk)
전자책이 종이책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서점, 아니 ‘소비자에게 책을 파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그런 공간이 차지할 자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서점은 언제까지나 매력적인 공간일 겁니다. 전자책 비중이 종이책 시장을 완전히 잠식할 정도로 확대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출판사들은 종이책과 전자책의 비율이 7:3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선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미국의 동향을 봐도 확실하죠. 전자책 판매는 줄어들고, 종이책 판매가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디지털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면 물리적인 것을 또 구입하지 않아요. 한 번 읽은 뒤에 그냥 처분하는 페이퍼백은 전자책으로 대체될 겁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책을 ‘소장하기’ 좋아합니다. 종이책과 아름다운 물건들을 소장하기 좋아하죠. 그래서 좋은 책과 좋은 서점은 계속 살아남을 겁니다.
아이들도 계속 책을 읽습니다. 제 아이들도 책을 사랑합니다. 어릴 때에 독서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평생 갑니다. 늘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책 속에 둘러싸이고 싶은 순간, 책이 보여주는 세상 속에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수시로 찾아오죠.
책과 서점의 세계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작가, 책 판매원, 에이전시, 출판사, 손님 등 누구라도 재미있고 멋진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좋은 서점은 지역 사회의 중심점이 될 때가 많죠. 저는 서점이 그런 역할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