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사랑한 책과 서점 이야기
“게으른 서점들은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거예요.”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
워싱턴에서 태어나서 지금은 영국에서 살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라스트 런어웨이(The Last Runaway)》를 비롯해 일곱 권의 소설을 썼다. 두 번째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는 세계 각국에서 4백만 부가 팔렸으며, 콜린 퍼스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졌다.
“제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서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구했어요. 미국에서는 도서관에 가는 게 생활의 큰 부분이에요. 저도 매주 갔죠. 동네에 있는 도서관의 어린이 도서 담당 사서 선생님과 친했어요. 도서관에 갈 때마다 선생님이 제 옆에 추천하는 책을 밀어 놓으셨죠. 선생님은 제 손에 책을 올려놓고 말했어요. ‘이제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구나.’
작가가 된 뒤로는 미국에서 아주 많은 서점에 가 봤어요. 신간 홍보 행사 덕분이죠. 요즘 매출 부진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독립 서점보다 큰 체인 서점인 듯해요. 대형 체인 서점들은 변하고 있어요. 전에 대형 서점은 책으로 차 있는 넓은 공간이었는데, 이제 게임이나 과자 같은 상품으로 채워진 넓은 공간이 됐죠.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독립 서점은 온라인 서점의 위협에도 살아남을 겁니다. 대형 체인 서점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가격이 아닙니다. 질이죠. 대형 체인이 살아남으려면 지금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마존 모방을 그만두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즉, ‘서점’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책을, 좋은 서점을 더 많이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이 실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전자책 단말기는 저도 갖고 있어요. 가끔 씁니다. 그렇지만 전자책 단말기로 책을 읽을 때에는 모든 게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종이책을 볼 때에는 시간과 장소를 책과 연결시킬 수 있는데 전자책은 그렇게 안 돼요. 우리 삶은 더 편리해지고 있지만 점점 더 실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서점은 그런 변화에 희생되고 있어요.
런던 리뷰 북숍(출처 www.londonreviewbookshop.co.uk)
스스로에게 희생되는 서점도 있어요. 게으른 서점들을 말하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이 팔리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서점들이죠. 노력하는 서점, 애쓰는 서점에 들어가면 정신이 번쩍 들고 귀가 쫑긋 섭니다. ‘미스터 비스’, 배스에 있는 ‘토핑 & 컴퍼니’, 킹스크로스에 있는 ‘워터마크북스’ 같은 서점들은 아주 훌륭하죠. ‘런던 리뷰 북숍’도 훌륭해요. 게으르지 않은 곳들입니다. ‘돈트 북스’와 ‘포일스’는 좋은 서점 되는 법의 견본이죠.
책과 연관된 최고의 행사는 《진주 귀고리 소녀》 순회 홍보를 할 때 있었어요. 《진주 귀고리 소녀》 페이퍼백이 나왔을 때고, 제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어쨌든 밀워키에 있는 ‘해리 W. 슈워츠’라는 서점(안타깝게도 지금은 폐점했어요)에서 가진 행사가 최고였어요. 그곳 주인인 낸시는 아주 멋지고 다정했는데, 청중을 300명이나 모았어요. 서점에서 정말 노력했고, 아주 들뜬 분위기였죠. 이틀 뒤에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체인 서점에서 행사가 열렸어요. 여섯 명이 왔고, 저는 커피 머신 소음과 경쟁하며 말해야 했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파리 ⓒ Shadowgate from Novara, ITALY - Pantheon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서점의 표본으로는 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꼽겠어요. 몇 주 전에 친구와 거기 다녀왔어요. 제가 친구를 데려갔는데, 친구는 그저 감탄하느라 정신없었어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중고 서적과 새 책이 조화를 잘 이루며 갖춰져 있죠. 책을 고르는 안목도 높고, 역사도 살아 있어요. 저는 그 서점에서 앞쪽 이층에 있는 공간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 공간 밖으로 책을 내가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오래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서점 뒤쪽 계단 벽에는 사람들이 남긴 쪽지들이 붙어 있어요. 쪽지에 적힌 언어도 갖가지예요. 모두 이 서점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곳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적은 것들이죠. 진짜 공동체의 느낌이 나요.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의 일부가 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서점은 그래야 해요. 영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하죠. 서점에 가면 주눅 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뭘 사야 할지 모른 채 와인 상점에 들어가서 진열된 와인들과 거만한 주인만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손님한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면 안 됩니다. 좋은 서점들은 절대로 그런 기분을 안기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