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동생이 가족들을 데리고 놀러 왔습니다.
남동생은 영화 감독 지망생인데, 지금까지 고생만 무진장 하고 있습니다.
남동생은 내성적이던 저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리더십 뛰어나고 머리도 좋고 게다가 객관적으로 보기에 키도 크고 잘생겼어요. 초중고 내내 전교 학생회장을 했었고, 한편으로는 시니 희곡이니 철학, 미학책들을 탐독했고, 고등학교 어느날부턴가 무신론으로 돌아섰었습니다. ( 제가 보기에 이때 '해탈' 해버린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 )
대학은 S대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학교와 집안에서 다들 놀랐지만, 그래도 고대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친구랑 둘이서 2인 극단을 만들어서 2인극을 하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가업을 잇기 위해 법대에 간거였는데, 정작 가보니 적성에 맞지 않았나봅니다. 언젠가 진로에 대해 내가 물었을 때 '누가 잘했나 잘못했나를 쫀쫀하게 티격태격 따지면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머리가 멈추어버릴 정도로 끔찍하다'는 말을 했던 걸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는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가겠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는 기가 막히셨지만, 본인 의지가 워낙 강하니 딱 1년의 기회만을 주기로 했습니다. 남동생은 일본어를 한 글자도 모른 채로 건너가서는 1년만에 일본의 수험생들과 경쟁해서 4년제 대학의 영상학과에 합격했습니다. 일본어 1급 시험과 입학시험, 면접을 다 통과해서요.
졸업 작품을 찍을 돈을 번다고 일본의 공사장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졸업해서 돌아온지가 이제 벌써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이제 들 만큼 들고 세상도 살만큼 산 것 같은데, 아직도 동생이 사는 것을 보면 이 애가 아직도 꿈을 먹고 사는건지,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는 건달인지, 영화판 사람들은 다 그러고 사는건지, 아니면 진짜로 '해탈'을 해버린건지 저도 판단이 잘 안섭니다.
어쨌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지독하게 판다는 것만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찍고 싶어하는 영화의 장르도 이른바 흥행과는 인연이 먼 쪽인데도 하나도 기죽지 않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장래 희망은? 좋은 영화 만들어서 먹고 살만하게 된다면.... 영화 만드는 틈틈이 악기(기타) 만드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것, 섬에 틀어박혀서 낚시 하면서 시나리오 쓰는 것, 외국 어디에 가서 몇개월씩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저 그 꿈에 맞장구 치면서 같이 고생하며 기다려 주는 부인 얻은 것이 신통할 뿐입니다.
한편으로.... 지독하게 자기 관심사만을 파고드는 용기(?) 혹은 무책임함(?) 이 가끔은 부럽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앞뒤 재고 앞날을 대비하느라 정작 오늘의 꿈을 접고 살 때가 많잖아요.
난 무얼 꿈꾸지? 난 무얼 하고 싶지?
남동생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