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 다녀온 여동생의 전언에 의하면, 그쪽은 무진장 해피하단다.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라나.

이미 사태는 끝이 났고 헌재에서도 절대 뒤집히지 않을거란다.


비교적 중립적인 여동생의 말에 더 부아가 났다.
왜 지난 이틀간과 같은 시위를 탄핵 결정이 나기 전에는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이러는게 더 웃겨. 그냥 내 생각이야.' 라고 쿨하게 결론을 맺는다.

여동생은 그 전에 발표되었던 각종 성명서나 여론조사 결과, 탄핵안이 상정된 후부터 국회 앞에서 시위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 없었을거다.


동생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열 받았었다.

얘, 누가 그런 미친 짓을 진짜로 할 줄 알았니? 그리고 사람 몇만명 모이는 것이 하루이틀에 되는 건 줄 아니?

그런데 전화를 끊고 기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니 여동생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가 잘못한거였다.
우리가 정치인들을 너무 믿었던 것이 잘못이다.

그들이 우리의 정서와 그렇게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 잘못이다.

그들이 아무리 격앙되었어도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이 70%에 이른다는 여론조사 결과 정도는 보고 들었을 줄 알았던 것이, 그들도 눈과 귀가 있는 줄 알았던 것이 잘못이다.

탄핵을 가결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가리라는 생각정도는 하고 있겠지, 그들도 머리가 있는 줄 알았던 것이 잘못이다.


어쩌랴? 우리의 대표라고 하는 자들이 이렇게 머리와 눈과 귀가 없으니.

일단은 우리 몸이 고달프더라도, 눈멀고 귀막힌 그들이 온몸으로 느끼게끔 더 큰 소리로,

더 많은 촛불로 우리 의사를 표현할 수 밖에.


이제는 그저 총선 때 두고 보자고 앉아 있기조차 불안한 마음이다.
그들이 탄핵 반대 여론과 더 추락하는 지지도를 보고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한 것이다.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는 탄핵 가결을 밀어붙인 자들이니,
총선 연기니, 개헌이니 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현실성 있는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탄핵은 가결이 되어버린 것,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 주시해야 한다.
총선의 연기나 개헌에 대해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어쩌랴? 우리가 대표들을 잘못 뽑은 업으로 이제 몸이 고달플 수 밖에 없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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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2004-03-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회민주주의의 발달과정으로 보기엔 너무나 힘의 논리가 작용된 듯한 ...
그래서 더욱 슬픈...그래서 정말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개같은xxx...개판에서 밥그릇 챙겨봐야 개밥그릇밖에 더 되겠나????



마립간 2004-03-1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너무 열받을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군가가 자충수를 두운 것 같아요.

가을산 2004-03-14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쓰고 나서 대전역에 다녀왔습니다.
글 쓴 값을 하려고 역에 다녀온건지, 아님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을 나 자신에게 강제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인지.. 나도 헤깔립니다.

Any way!

대전의 집회는 저녁 8시경 일찍 끝났습니다.
마침 대전역전의 노숙자 급식이 8시 경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급식까지 지켜보고 왔습니다.

노숙자들도... 그 어느 정권의 덕도 제대로 보지 못한 이들도 이번에는 무척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아온 지난 몇년 동안 이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예기치 못한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는.

가을산 2004-03-1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님 말씀대로 단순한 자충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충수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수를 또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우스 2004-03-14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이 감동적이긴 한데요, 너무 춥더군요. 날씨가 따뜻해지면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겠죠?

호랑녀 2004-03-1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충수! 동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전개 방향은 그렇습니다.
일단 자민련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민주당은 설 땅이 없어졌습니다. 보수도 아니고 개혁도 아닌, 그나마 지역기반도 없는... 그런 당이 되어버렸습니다.(흑, 불쌍한 조순형, 추미애)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통의 가벼움에 진저리를 쳤던 사람들을 흡수하는 듯했으나, 결국 노통에게 힘을 모아주는 결과를 내고 맙니다. 마치 지난 대선때와 같습니다. 최선은 없지만, 그나마 차선 아니 차차선이라도 골라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차차차선도 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지금이야 자못 비장하겠지만, 곧이어 탄력을 받아갑니다.
일단, 총선에서, 노통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라당에 거의 다 갔던 사람들까지도 지금 다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 후, 헌재에서도 노통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냐 개혁이냐를 떠나서, 일단 법리에서 안되는데... 어떻게 탄핵을 하겠습니까? 결국 노통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후세 두고두고 자신의 이름이 이완용처럼 읊어질 상황인데 말입니다.

제 생각엔, 이미 노대통령은 여기까지 내다봤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탄핵을 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손익계산서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당 의원들에게 좀 굽히면서 사과를 하려면 뭔가 줘야 하는데, 줘야 할 게 뭐겠습니까? 검찰의 정치인 수사입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줄 생각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미 검찰, 대통령의 그런 말 안 듣습니다.
결국, 이리 재고 저리 재다 그런 기자회견을 했다고 봅니다. 차라리 기름을 부어버리는!

sooninara 2004-03-1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는 언니들과 이야기하다가..노대통령이 총선때 우리당의 압승을 위해 탄핵까지 몰고간것이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거기서나온 의견은..."아니다..노통은 그렇게까지 머리쓰지않았다"인데..가을산님의 글처럼 총선을 미루거나 개헌을 하는거 외에는..우리당에는 이번탄핵이 시민들의 힘을 모아주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노대통령에게 불만도 있지만..선거에서 한표 찍어준 정때문에...앞으로 좋은 결과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2004-03-17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