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님의 서재에서 가디언에 실린 지젝의 Q&A 가 흥미로워서 따라해 봅니다.
http://blog.aladin.co.kr/trackback/mramor/2250312
지젝의 솔직한(?) 답이 재미있네요. 

제 답이야 뭐, 너무나 평범하겠지만, 문항이 모처럼 좋아서 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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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했복했던 때는?
중학교 3년간.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도전이자 즐거움이었다. 
어머니도 계셨고.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젠가 올 인간 문명의 퇴행. 그리고 그에 따른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대책 없이 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능한 연착륙을 했으면 좋겠는데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4살 때. 엄마가 떠준 모자와 목도리.

가장 존경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가까운 데서 찾자면 buddy 변혜진, 우석균... 그리고 James Love.
그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사명감이 존경스럽다. 인간적으로도 소탈하다.

당신 자신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굼뜨게 있는 것.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못한 것.

타인들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타인의 고통, 그리고 미래에 대한 방관적인 태도.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하이텔 시절에 대화방에서 '귓속말' 기능으로 보낸 말이 전체 공개로 뜬 것.

자산을 별도로 하고, 당신이 구입했던 가장 값비싼 것은?
총액으로 하면 1등: 책,  2등: 공구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책 읽고, 인터넷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력, 지력, 그리고 손가락.

당신을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왜 나는 살을 못 뺄까?

당신의 외모에서 가장 싫은 것은?
맘에 드는 부분이 별로 없다. 역시 체중?

가장 매력 없는 습관은?
습관은 아니지만.... 무대 공포증.

가장무도회의 의상을 고른다면?
난 무도회나 파티가 싫다.

가장 죄책감이 드는 쾌락은?
집안 일을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겨 놓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하고싶은 다른 일들을 하는 것.

부모에게 빚진 것은?
DNA와 어린 시절의 경험.
행복은 재산순,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것.

미안하다고 가장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고 이유는?
남편 - 별난 마누라 만나서 고생이다.

사랑의 느낌은?
수퍼에고가 흐물흐물해 진다.

일생의 사랑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
나름대로의 방랑.  

좋아하는 냄새는?
모닝커피향

그런 뜻이 아니면서 "널 사랑해"라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음... 영어로 메일을 보낼 때, 가끔 'love, gaulsan' 이라고 끝맺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 표현을 쓸 때마다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끼지만 그쪽도 그렇게 써오는데 그렇게 답하지 않는 것도 실례인 것 같다.

가장 경멸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사실 한두명이 아닌데, '기득권'에 안주해서 세상이 자신을 '인정'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 그 거들먹이 참으로 추하다는 것을 본인들만 모른다. 

자신의 최악의 직업은?
세일즈맨. 아마 난 굶어 죽을 것이다. 

가장 큰 실망은?
고등학생 때 교장선생님을 따라서 어른들의 오찬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름 VIP들이 호텔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강사의 강연을 듣는 자리였는데, '어른들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나?' 의아했었다.
문제는, 지금 생각해도 그정도면 괜찮은 수준의 모임이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1. 고등학교 진학. 특목고를 가지 않고 일반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2. 고3때부터 6개월에 한 번씩 엄마 내시경 하시도록 하겠다.
     (대학 2년때 엄마가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의 충돌 장면을 보고 싶다.

어떻게 쉬는가?
몇날 몇일 강행군을 하다가.... 잔다.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가?
섹스보다 잠자는 게 더 좋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때는?
2년 전에 한 buddy의 차를 타고 서울에 가는데, 길이 막혀서 급정거한 우리 차를 뒷 차가 받았다. buddy의 차는 앞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져서 폐차되었는데 타고 있던 3명은 타박상만 입었다.

당신의 삶의 질을 향상해줄 단 하나가 있다면?
호기심

당신의 최대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업적 씩이나....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운 것 아닐까?

삶이 당신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버리자.

우리에게 비밀을 하나 말해달라.
가을산은 거짓말쟁이다. 있는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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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젝 따라하기
    from 남은 건 책 밖에 없다 2008-08-21 02:40 
    서재 잠깐 둘러본 뒤 간만에 따라합니다. 워낙 기억력이 짧아서, 이런 종류 별로 안 좋아하는데...몇가지 짚어보고 싶은 질문들에 그만 낚였어요. ... 가장 했복했던 때는? 연애시절? 아니 나의 행복은 1초짜리 기억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지금이 제일 행복할 때라고 최면을 건다. 마구 행복했다가 금방 까먹는....한마디로 늘 오락가락. 가장 두려운 것은? 공포영화 같은 스토리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겹쳐지는 상상들. 한
 
 
마노아 2008-08-1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가을산님. 읽고나서 갑자기 거대한 풍차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울 아부지도 저 스무살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열흘 뒤면 기일이에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무뎌질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아빠가 저에게는 그래요.
지젝의 날것 그대로의 답변을 보다가 가을산님을 보니 따뜻해지네요.

가을산 2008-08-19 23:1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안녕하세요? ^^
그렇죠? 일찍 돌아가신 분이 오히려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계산을 해보았는데, 제가 이번 달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나이가 되었어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하루하루의 무게가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어머니가 저의 수퍼에고이자 롤 모델이시거든요.
아마 그래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한 것 같아요.

마법천자문 2008-08-20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진학. 특목고를 가지 않고 일반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특목고를 가지 않고 일반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특목고를 가지 않고 일반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왕~~ 당신은 천재소녀!!!

가을산 2008-08-20 10:33   좋아요 0 | URL
제가 당시 특목고 간 이유가 진로보다는 '차마 일반고를 가지 못한 오만함' 때문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지금은 제가 무척 싫어하는 '난척' 하는 아이였어요.

호랑녀 2008-08-2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을산님...
보고싶어요 ^^

경멸하는 생존인물, 최악의직업... 저랑 똑같아요.
저 경멸스러운 짓을 20대 젊은 것들이 하고 있을 때는 정말 암담했어요.
그 녀석들이 저 정신상태 그대로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그룹에 낄까봐요.

가을산 2008-08-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호랑녀님의 푸근한 미소가 보고 싶어요. ^^
일산이라니... 너무 멀다... ^^

마늘빵 2008-08-2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대답이 이전의 대답을 허물 수 있는 구조. 하지만 가을산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ㅋㅋㅋ

가을산 2008-08-21 00:54   좋아요 0 | URL
아녀요... 저도 지젝이나 아프님이나 다른님들 같은 답을 하고 싶었어요.
답을 쓰면서도 제 답이 맘에 안드는데... 와.. 끝까지, 나자신에게도 껍질을 둘러쓰는구나... 하구 말이죠.
그래서 마지막에 거짓말이라고 쓴거에요.

sweetmagic 2008-08-2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퍼에고가 흐물흐물...에서 흐느적하며 웃어버렸어요 ^^

비로그인 2008-09-0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 때부터 존경하는 친구였어요... 말이 없는 남다른 포스... 잘 지내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