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치유나 정상성 획득 같은 의미와 연결되지 않고 장애 그 자체, 접히지 않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다 읽었지만 여전히 장애유전자를 지운 아이를 낳고자하는 ‘엄지공주‘의 노력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궁금하다. 방법이 있다면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건 잘못이 아닌거 같은데. 그 반대의 경우를 비난하는건 아니다. 다만 내가 장애유전자가 있고 과학기술로 내 아이에게서 그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고통이 수반된다고 해도 난 그렇게 그렇게 할 것 같고 그게 논쟁의 여지를 준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장애치유가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이 된다는 것,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거리를 준 좋은 책이다.
과학적 담론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계와 결혼에 대해 만들어진 문화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곧질병이 감염되고 유전된다는 우려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야 결혼이 가능하다고 전제된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결혼은 질병의 부재로 그상징적 가치를 획득하기 때문에, 오직 장애가 없는 세계에만 존재할 수 있다. 혼인의 성립은 한센병이 치료가능하며 전염되거나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특성들이 전제되어야만삶을 살 수 있고 그 삶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 P305
성자원봉사라는 개념에는 만족감도 경제적 보상도 신체적 끌림도없는(모든 성관계를 봉사로 만드는 요건들) 성적 서비스를 누군가 기꺼이제공한다면 장애인은 그와의 성관계를 원하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이개념은 또한 장애인은 서로 성관계를 원하는 상대방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성자원봉사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인도주의적‘ 해결책이며, 누군가의 괴로움을 짐작해서 이를 덜어 주려는 목표를 가진다. 성자원봉사자와 성노동자를 구분하려는 시도 역시 문제가있다. 성노동자에 결부된 낙인에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을 위한 성자원봉사/돌봄/도움을 옹호하는 것은 문제적인 방식으로, 장애인에게 가능한 성적 경험의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게 된다. - P334
과연 우리는 장애가 있는 몸을 과거의 몸이나 앞으로 되어야 할 미래의 몸이 아닌 현재 상태 그 자체로 볼 수 있을까? 무엇이 장애를 가진 현재의 삶을 가능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가, 혹은 그 중간의 무언가로 만드는가? ‘괜찮았던 과거를 향한 향수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장애가 있는 몸에 투영하면서 과거와 미래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몸의 역사와함께, 그리고 나이든후의 미래와 함께 현재에 머무르기 힘들다는 것이 접한 시간속에 살아가는 삶의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접힌 시간은 누군가에게 현재를 떠나게 해주는 목적을 가진 타임머신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과거와 미래의 중요성을 일축하며 단순하게 현재주의presentism를 주장하거나 혹은 우리 모두 이 순간만을 위해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개선과 악화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또한 거창한 희망과 절망이라는 이분화된 도식 밖에 존재하는 미래, 폭력없이 살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보려는 것이다. - P358
개인이 훈련을 통해 능력을 갖춰야한다는 생각, 재활을 통해 이전의 ‘적절한‘ 몸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생각, 장애와 만성적 질병은 영적·가족적·의료적 개입을 통해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는 생각 등은 모두 장애인을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분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유예시킴으로써 현재로부터 분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 P360
그에게 죽음을 막아주는 것보다 스스로 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다는 것은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관과감관과 능력과,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모든 신체부분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장 잘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인생을 가장 잘 느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백 살이 되어 무덤에 묻혔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젊어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삶을 제대로 살았다면. - P71
이 이미지 속에서 장애를 가진 몸은 불의와 상처를 일으키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만, 이와 동시에 장애를 갖게 된 이후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물질적·사회적 상호작용의 복잡한 요소를 가려 버린다. 즉, 장애가 생긴 이후에 개입의 초점은 사회구조에서 개인의 몸으로 옮겨 가고, 왜 장애여성이 무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제거될 수 있고, 지역사회와 단절되는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장애를 구성하는 역동적인 사회적 관계 대신 장애를 비극으로 보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게 된다. 이런 방식의 여성주의적 상상에서는 정신장애 여성이 보다 적절한 주거와 돌봄을 얻을 수 있는 지역사회로부터 단절되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간과된다. - P258
폭력을 둘러싼 복잡한 사회적 각본은 누구도 장애여성을 원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가부장제와 근대적 자본주의국가를 유지하는 특정한형태의 젠더화된 여성성을 따르도록 장애여성에게 요구한다. 마치 장애여성이 비인간이었던 것처럼 폭력은 역설적으로 폭력적인 주체가 타자화된 대상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권력을 만들어 낸다. 장애를 의학적으로 치료하는 것 또한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성은 이분화된성별에 따른 이성애에 순응하고 특정한 행동적 · 언어적 능력을 가진 상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된다. - P202
조선말기의구전설화에는 "보이는 것도 보지 않는 척해야 하고, 주변에 들리는것도듣지 않는 척해야 하고, 가능한 적게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듣고 장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댁식구들은 "그녀가 귀머거리에 바보라고 생각해서 친정아버지 집에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 비장애인으로 여겨진 신부들에게 말을 못하고,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비유적 제안은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지말고 주변 상황을 목격하지 말고 그저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그렇지만 이 설화는 결혼한 조선시대 여성이 당면한 딜레마를 보여 준다. 가정 내에서 처신을 잘하려면 장애를 수행해야 하지만 결혼을 유지하려면 실제로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