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이야기 - 숲속 모험, 2024 볼로냐 라가치상 오페라 프리마 스페셜 멘션, 2025 프랑스 소시에르상 수상작
최연주 지음 / 엣눈북스(atnoonbooks)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으로 하는 것 -그림그리기,뜨게질 같은-이 젬병이라 섣불리 시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그림은 그려보고 싶어서 책을 사보곤 했었다. 그러다 깨닫게 됐다. 내가 그림을 못그리는 것은 관찰력이 없어서란 걸. 간단한 물건을 그리려해도 그 모습을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본 순간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그리기는 너무 어렵다. 당연한 이야기다. 모가 웃는 별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삶이 늘 그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철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뭔가 내 삶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만큼 내 삶이 괴롭고 비참하다는 건가? 슬프다.

니체는 "자신의 시대를 극복" 해야만 했다. 그리고 퇴폐한시대의 본능에 맞서 싸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퇴폐일 뿐이다.
정확히 말해 철학이란, 삶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던지는 것이며,
그러한 한에서 철학은 퇴폐의 징후다. 니체는 건강한 삶이란 기쁨에 찬 삶이며, 고통과  괴로움이 기쁨을 능가하는 곳에서 삶은  병든다고, 곧 퇴폐한다고 말한다. 기쁨에 찬 삶에는어떠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오직 괴로움이  우세한 곳에서만 "설명"이 필요하며, 사람들은 설명(골 철학)이  제시된 곳에서  삶이  비참하게 굴러가는 이유를 추론할 것이다.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개의 철학 지도 -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밑그림
김선희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앎과 실천에 대한 책으로 이해한다. 앎에 대한 바른 기준이 있어야하고 그래서 철학지도가 필요하다. 깨달았으면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렌 식수 라이브 이론
이언 블라이스.수전 셀러스 지음, 김남이 옮김 / 책세상 / 2023년 2월
평점 :
절판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궁금증으로 추켜든 책. 엘렌 식수 읽기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는 옮긴이의 말이 맞겠지만 식수를 전혀 알지 못하면 접근하기 쉬운 책은 아니다. 엘렌 식수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편으로, 그녀는 "쓰기란 그 상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성찰한다(p.7). 말하자면, 쓰기란 기억하기의 행위, 있었던 것. 있는 것, "5분 후에는" 사라질 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행위인 것이다.  - P132

아니요. 전 계획하지 않아요. 제가 계획하는 것은 계획하지않는 것이죠. 심지어 그것조차도 계획하지 않아요. 전 아무것도알지 못한 채 어떤 책의 시작점으로 가죠. 그것의 성별도 모르고요. 그것이 무엇이 될지, 괴물이 될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라요… 전혀요. 저는 그저 느낌만 갖고 있어요. 매우 이상한 느낌이요. 신뢰 같은 것. 마치 제가 약속 장소로 가면 그것이 올 것이라고 믿는 그런 느낌이요. 그게 다예요. 누가 될지, 어떻게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르죠. 오랜 세월 제가 지니고 있는 앎의 유일한 조각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이에요. 그게 제가 아는 전부예요. - P190

만일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이론‘의 발전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만일 (버지니아 울프가 언젠가 말했듯이) 독자에게 건네질 "순수한 진리의 덩어리"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써라‘일 것이다. 식수의 ‘이론‘은 타자가스스로에 대해 글을 쓰고 읽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식수의 발자취를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여정, 자신만의 탐색을 시작하는 것, 자신만의 질문을 찾고 탐구하는 것이다.  - P194

<출구>에서 식수는 역설적 방식으로 ‘여성적 글쓰기‘를 규정한다. "오늘날 글쓰기의 여성적 실천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실천은 결코 이론화되거나 제한되거나 코드화되거나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Sorties. p. 92). 즉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를 이론화 불가능한 것‘으로 ‘이론화한다. 하나의 개념을 요모조모 따지고 분석하며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단 하나의 유일한 명료한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 본래적 의미의 이론이라면, 여성적 글쓰기는 그에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식수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론화한다. 기존의 개념화와 선형성, 팔루스적 경제를 따르는 이론이 아닌 이론으로서 말이다. - P200

그러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심지어 자신의 신체적 경험, 여성으로서의 경험이언어화된 적이 없고, 자아를 제대로 인식할 기회도 없이 살아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자를 인식할 자아를 구성하는 일이다. ‘결여된 성적 주체가 아닌 온전한 성적 주체, 타자를 남성적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자아를 말이다. 그러므로 글쓰기가 시작되는 자아의 탐색이 나르시시즘적이라 해도, 그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듯 남성이 자신의 완전함과 사랑에 빠지는 식의 나르시시즘일 수 없다. 그것은 자아의 파편들 사이를 개미처럼 기어 다니며 다시 이어 붙이고 다시 잘라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타자성을 인식하는 나르시시즘이다. -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