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그녀는 "쓰기란 그 상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성찰한다(p.7). 말하자면, 쓰기란 기억하기의 행위, 있었던 것. 있는 것, "5분 후에는" 사라질 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행위인 것이다.  - P132

아니요. 전 계획하지 않아요. 제가 계획하는 것은 계획하지않는 것이죠. 심지어 그것조차도 계획하지 않아요. 전 아무것도알지 못한 채 어떤 책의 시작점으로 가죠. 그것의 성별도 모르고요. 그것이 무엇이 될지, 괴물이 될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라요… 전혀요. 저는 그저 느낌만 갖고 있어요. 매우 이상한 느낌이요. 신뢰 같은 것. 마치 제가 약속 장소로 가면 그것이 올 것이라고 믿는 그런 느낌이요. 그게 다예요. 누가 될지, 어떻게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르죠. 오랜 세월 제가 지니고 있는 앎의 유일한 조각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이에요. 그게 제가 아는 전부예요. - P190

만일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이론‘의 발전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만일 (버지니아 울프가 언젠가 말했듯이) 독자에게 건네질 "순수한 진리의 덩어리"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써라‘일 것이다. 식수의 ‘이론‘은 타자가스스로에 대해 글을 쓰고 읽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식수의 발자취를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여정, 자신만의 탐색을 시작하는 것, 자신만의 질문을 찾고 탐구하는 것이다.  - P194

<출구>에서 식수는 역설적 방식으로 ‘여성적 글쓰기‘를 규정한다. "오늘날 글쓰기의 여성적 실천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실천은 결코 이론화되거나 제한되거나 코드화되거나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Sorties. p. 92). 즉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를 이론화 불가능한 것‘으로 ‘이론화한다. 하나의 개념을 요모조모 따지고 분석하며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단 하나의 유일한 명료한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 본래적 의미의 이론이라면, 여성적 글쓰기는 그에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식수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론화한다. 기존의 개념화와 선형성, 팔루스적 경제를 따르는 이론이 아닌 이론으로서 말이다. - P200

그러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심지어 자신의 신체적 경험, 여성으로서의 경험이언어화된 적이 없고, 자아를 제대로 인식할 기회도 없이 살아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자를 인식할 자아를 구성하는 일이다. ‘결여된 성적 주체가 아닌 온전한 성적 주체, 타자를 남성적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자아를 말이다. 그러므로 글쓰기가 시작되는 자아의 탐색이 나르시시즘적이라 해도, 그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듯 남성이 자신의 완전함과 사랑에 빠지는 식의 나르시시즘일 수 없다. 그것은 자아의 파편들 사이를 개미처럼 기어 다니며 다시 이어 붙이고 다시 잘라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타자성을 인식하는 나르시시즘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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