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과 멀린다 게이츠가 이혼한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부자라 그런지 이혼의 변(辯)도 고급지다.
결혼이란게 어느 한쪽의 희생에 기대는게 아니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말, 참 낯설다.제마 하틀리는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제목 별로다) 에서 셰릴 샌드버그의 말을 인용했다.
파트너에게는 각자 책임을 지는 분야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받기만 하는 사람은 의무를 행하면서도 호의를 베푼다고 느낀다.-21쪽
내가 당장 이 책을 구입하게한 구절이다.
같이 일을 하고 같이 애를 낳았어도 집안일과 육아를 주로 담당하는 쪽은 대부분 나였다.
늘 사용하던 물건이 떨어지면 나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서 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한다.
남편은 ○○가 떨어졌더라 하고 말만 한다.
책에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
결혼하기 전에는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을 때 바로 새것을 가져다 걸고, 자기가 사용한 컵을 싱크대에 두지 않고 바로 씻어놓는다 따위의 일로 다투게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런 자질구레한 일의 순서와 담당을 정하는 일의 연속이다.
책의 제목처럼 지긋지긋한(fed up) 일이지.
이혼에 이르게 된 부부사이의 일을 당사자가 아니면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유명한 부자의 이혼을 보면서 결혼이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 그러나 함께 성장하지 못해도 그런 멋진 멘트를 날리면서 이혼에 합의하지 못하는, 또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가사에서의 육체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비교적 평등한 부부 사이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실제로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가사와 육아를 정확히 5대 5로 나눈다고 해도 여성들이 그 일을 수행할 때 사용하는 감정노동은 수량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추가로"하는 일을 못 보기는 너무 쉬운데 "추가의"일 대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 가시적 결과를 내기 위해서 밟아야 할 정신적 단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여자의 눈에만 보이고 여자만 따라가고 여자만 수행한다. - P19
의식적이건 아니건 남성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반면, 여성들은 존재의 한 방식으로서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등한 관계에서 행복하게 시작했다가 몇 년 후 서로를 향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품게 되는 것이다. - P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