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기 아깝지만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일종의 희생이고, 희생이란 그 본질이 코스트(cost, 비용)와 같은 것이다. 미국 회계학회(American Accounting Association)가 마련한 코스트의 개념 및 기준에 따르면, 코스트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발생하는 ‘희생(forgoing)‘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적함수의 정립은 그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가치관을 전제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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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과 연초에 '시선으로부터,'와 '우리가 쓴 것'을 연달아 읽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저 두 권은 손에서 놓질 못하고 단숨에 읽었다.

여성작가가 쓴 여성에 대한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다툼이나 의견충돌 같은 불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어지간하면 상대에 맞추며 살다보니 자신의 의견을 똑부러지게 표현하거나 거절의 말을 쉽게 하는 여자들이 부러웠다.

항상 상황종료후 '아~~~ 그 때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데~~~'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내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 말은 꼭 할 걸' 하다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스트레스다.

그래서 두 소설이 더 재미있었나 보다.

여자니까, 엄마니까, 늙은이라서 참거나 입을 다물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의견을 드러내는 그런 여자들이 부럽고 또 반갑다.

 또 나이 핑계대지 않고 촌스러운 이름을 개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오로라 보러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그녀들을 응원한다.

나도 그렇게 씩씩하게 늙어가야지.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인공호흡기니 뭐니 다 달아줘요. 죽을 때 고와 뭐해? 곱지 않더라도 오래 살거야. 이 좋은 세상에 오래오래 숨 붙이고 있을 거야!"
이번에는 내가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어머니와 너무 어울리는 소원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며느리와 팔순을 바라보는 시어머니, 이제는 그냥 어쩌다 한집에 살게 된 두 여자의 왠지 부끄러운 소원이 오로라의 너울 속으로 빨려 올라가 회오리쳤다. -조남주, 우리가 쓴 것(오로라의 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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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성이 치매에 걸린 자신의 배우자를 지칭하면서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은 gone but not gone 남편'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다. 치매의 역설을 통렬하게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지만, 동시에 그와 비등한 정도로 강렬하고 뚜렷하게 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니 말이다. -33쪽

 

 

치매에 걸렸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라져가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을까.

치매인들을 가까이서 매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고민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를 그냥 소멸시켜 버릴 것인가.

저자는 기꺼이 그 사라지는 마음을 붙잡겠다 한다. 힘을 다해서 찾겠다고.

모든 것을 잃어가는 그 삶이 지킬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모든 삶은 본인이 이어나갈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가치있는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는 그 감정이, 그것이 더 슬프다.

차라리 모르는게 낫지 않을까.

바란다고 되는일일까 싶지만 치매라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고, 치매인의 삶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겠다.

 

치매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삶을 그저 평범함과 특이함, 작은 조각과 전체, 현재와 소멸하는 것의 결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 P34

이런 관점에서 늙은 몸은 부품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낡아빠진 기계일 뿐이다. 그들은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간다...... 좋은 것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가치있는 재화를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버려질 위험에 처한다. - P84

미국 고령화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절반 가까이는 어떤 형태로든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사회에 만연한 학대와 방치의 원인은 치매 노인이 ‘이미 가버린‘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P108

몽유병의 영역은 명백한 이성의 명령보다는 감정, 어두운 형체와 실감나는 느낌, 흐릿한 논리가 지배한다. 내용과 줄거리는 차츰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 나는 일시적으로 변화하고, 분열하고, 정신이 몽롱해 질 수도 있지만, 감정을 느끼거나 열망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치매인도 마찬가지 상태일 것이다. - P176

다른 질병과 다르게, 치매는 ‘안다는 것‘, 즉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한 사람의 인식능력은 보통 다른 사람의 이름과 역할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으로 규정된다. 인식능력의 저하는 치매의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 P207

치매인은 병을 앓고 있어 한계가 있음에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한다. 치매인을 대할 때 의사소통하면서 그들이 보이는 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표현을 존중해야 한다. - P213

치매에 걸렸을 때 내 자아의 어떤 부분이 소실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것은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의 행방을 찾아줄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다. 램프에 불을 밝히고 빗자루질을 하면서, 작은 틈새와 어두운 구석도 빠짐없이 살펴보고, 잊고 있던 공간을 뒤지고, 온 집을 뒤집어 놓고, 나를 발견할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찾아 헤맬 사람들 말이다. 내가 할 수 있을때 까지는 동전 찾는 여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가 바로 그 동전이 될 것이다. - P258

그렇지만 치매에는 복합적인 특성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치매라는 떠남과 사라짐 사이, 출발과 도착 사이에 살면서 어떻게든 양쪽 상태 모두를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 말이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치매를 바라보는 것이 치매에 대한 오명과 공포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죽음으로 가는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사라짐도 삶의 일부임을 알게 될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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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스로 삶을 버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전에 발을 뺄 수는 없었을까 생각했었다.

남의 일이라 쉽게 말하지만

아마 발을 뺄 수 없었거나, 뺀 발을 둘 곳을 못 찾았거나, 발을 빼야할 상황이 끝없이 계속될거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을지도 모른다.

견디기 힘든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계속 생각한다.

나를 망가뜨리지 말고 꼭 발을 빼자, 다른 곳을 향하자.

 

유난히 가족과 관련된 행사가 많은 5월을 앞두고 혼자 떠나버린 그 사람을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자기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기만을 바란다.

 

                    

중요한 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거나, 선택한 것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도넛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마다 다른 맛의 도넛일 뿐, 어떤 맛이 더 우월한가를 따지는 것은 쓸데없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섭취한 칼로리만큼 살아내면 된다. 다소 고통스럽겠지만 도넛이란게 원래 그렇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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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과 멀린다 게이츠가 이혼한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부자라 그런지 이혼의 변(辯)도 고급지다.

 

결혼이란게 어느 한쪽의 희생에 기대는게 아니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말, 참 낯설다.

제마 하틀리는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제목 별로다) 에서 셰릴 샌드버그의 말을 인용했다.

파트너에게는 각자 책임을 지는 분야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받기만 하는 사람은 의무를 행하면서도 호의를 베푼다고 느낀다.-21쪽

내가 당장 이 책을 구입하게한 구절이다.

같이 일을 하고 같이 애를 낳았어도 집안일과 육아를 주로 담당하는 쪽은 대부분 나였다.

늘 사용하던 물건이 떨어지면 나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서 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한다.

남편은 ○○가 떨어졌더라 하고 말만 한다.

책에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

결혼하기 전에는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을 때 바로 새것을 가져다 걸고, 자기가 사용한 컵을 싱크대에 두지 않고 바로 씻어놓는다 따위의 일로 다투게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런 자질구레한 일의 순서와 담당을 정하는 일의 연속이다.

책의 제목처럼 지긋지긋한(fed up) 일이지.

이혼에 이르게 된 부부사이의 일을 당사자가 아니면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유명한 부자의 이혼을 보면서 결혼이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 그러나 함께 성장하지 못해도 그런 멋진 멘트를 날리면서 이혼에 합의하지 못하는, 또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가사에서의 육체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비교적 평등한 부부 사이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실제로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가사와 육아를 정확히 5대 5로 나눈다고 해도 여성들이 그 일을 수행할 때 사용하는 감정노동은 수량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추가로"하는 일을 못 보기는 너무 쉬운데 "추가의"일 대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 가시적 결과를 내기 위해서 밟아야 할 정신적 단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여자의 눈에만 보이고 여자만 따라가고 여자만 수행한다. - P19

의식적이건 아니건 남성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반면, 여성들은 존재의 한 방식으로서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등한 관계에서 행복하게 시작했다가 몇 년 후 서로를 향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품게 되는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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