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이 치매에 걸린 자신의 배우자를 지칭하면서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은 gone but not gone 남편'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다. 치매의 역설을 통렬하게 짚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지만, 동시에 그와 비등한 정도로 강렬하고 뚜렷하게 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니 말이다. -33쪽
치매에 걸렸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라져가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을까.치매인들을 가까이서 매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고민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를 그냥 소멸시켜 버릴 것인가.
저자는 기꺼이 그 사라지는 마음을 붙잡겠다 한다. 힘을 다해서 찾겠다고.
모든 것을 잃어가는 그 삶이 지킬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모든 삶은 본인이 이어나갈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가치있는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는 그 감정이, 그것이 더 슬프다.
차라리 모르는게 낫지 않을까.
바란다고 되는일일까 싶지만 치매라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고, 치매인의 삶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겠다.
치매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삶을 그저 평범함과 특이함, 작은 조각과 전체, 현재와 소멸하는 것의 결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 P34
이런 관점에서 늙은 몸은 부품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낡아빠진 기계일 뿐이다. 그들은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간다...... 좋은 것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가치있는 재화를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버려질 위험에 처한다. - P84
미국 고령화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치매 노인의 절반 가까이는 어떤 형태로든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사회에 만연한 학대와 방치의 원인은 치매 노인이 ‘이미 가버린‘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P108
몽유병의 영역은 명백한 이성의 명령보다는 감정, 어두운 형체와 실감나는 느낌, 흐릿한 논리가 지배한다. 내용과 줄거리는 차츰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 나는 일시적으로 변화하고, 분열하고, 정신이 몽롱해 질 수도 있지만, 감정을 느끼거나 열망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치매인도 마찬가지 상태일 것이다. - P176
다른 질병과 다르게, 치매는 ‘안다는 것‘, 즉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한 사람의 인식능력은 보통 다른 사람의 이름과 역할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으로 규정된다. 인식능력의 저하는 치매의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 P207
치매인은 병을 앓고 있어 한계가 있음에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한다. 치매인을 대할 때 의사소통하면서 그들이 보이는 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표현을 존중해야 한다. - P213
치매에 걸렸을 때 내 자아의 어떤 부분이 소실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것은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의 행방을 찾아줄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다. 램프에 불을 밝히고 빗자루질을 하면서, 작은 틈새와 어두운 구석도 빠짐없이 살펴보고, 잊고 있던 공간을 뒤지고, 온 집을 뒤집어 놓고, 나를 발견할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찾아 헤맬 사람들 말이다. 내가 할 수 있을때 까지는 동전 찾는 여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가 바로 그 동전이 될 것이다. - P258
그렇지만 치매에는 복합적인 특성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치매라는 떠남과 사라짐 사이, 출발과 도착 사이에 살면서 어떻게든 양쪽 상태 모두를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 말이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치매를 바라보는 것이 치매에 대한 오명과 공포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죽음으로 가는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사라짐도 삶의 일부임을 알게 될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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