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알지 못한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여러 증거와 연구로 주장되고 있을 뿐.
결국 빅뱅, 쿼크, 원자, 분자,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같은 어려운 물리학 이론들과 생물학, 생소한 퀄리아(의식의 특성들, 따뜻한 공기, 빛나는 햇빛...)에 대한 내용으로 두통을 일으키는 이 책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우주는 ‘내‘가 의식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이 나의 우주이고 퀄리아다. 명상이나 수행에서 강조하는 ‘알아차림‘이다.
-의식함으로서 생존하고 의식이 끊어지면 죽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의도와 딱 들어 맞는다. ‘당신이 우주다‘=내가 우주다.
저자를 봤을때 ‘알아차렸‘어야 하는건데...... 과학책인줄 알고 샀는데 의식이니, 자기인식이니, 알아차림 같은 내용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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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이 종교에 대해 행동하는 방식으로 과학에 대해 행동하는 벽돌공이 필요하다. 
우주의 구성 요소는 성당보다 무한히 더 복잡하며, 이들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벽돌공 후보는 우주의 마음이다.
‘노트르담의 경우, 비록 건축가는 죽어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 의식의현존은 분명하다. 의식하는 행위자가 일하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데는 추론만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같은 방식, 즉 추론을 통해 우주 속에서 의식의 행위를 추론할 수 있다(우주의 설계자를 만나거나 인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약간의 물질이 충돌하는 그런 행동 말고 마음이 목적을 가지고 모든 것을 행하는것과 같은 방식만을 관찰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 P299

우리가 인간 존재를 다중우주의 카지노에서 우연히 승리한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무작위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자신을 물질적 힘의 산물로 인식하면, 우리는 유기화학물질로 만들어진 로봇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적자생존을 통해 진화했다고 우리 자신에게 말하면, 우리는단지 짐승 중 최고의 짐승일 뿐이다.
우리가 자신을 정보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물로 본다면, 우리는한 다발의 고속으로 처리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 P301

38. 인간에게는 자기인식이라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열쇠다. 자기인식은 우리가 우리 퀄리아의 성향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퀄리아의 감옥에 갇힌 것은 더더욱 아님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 자체만큼이나 역동적이다. 이것은 정의상 자기 자신의죄수가 될 수 없는 순수 의식과의 끊어질 수 없는 연결을 보여준다. 무한한 잠재력은 어떤 한계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받아들이려는 과정인 자기인식은 우리가 창조적 진화 속의한 종으로서 다음 단계를 향해 도약할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 도약 역시 우주를 다시 만들 것이다. 우리가 인간적 우주에 살기 때문이다. 우주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들어맞는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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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의 전체 영역이 이러한 가정에 기반해 있다. 어떤 사람이살아 있고 의식이 있으면 의심의 여지 없이 뇌에서 활동이 일어난다.
반면에 죽으면 이 활동이 멈춘다. 모든 음악이 라디오에서만 나오는세상을 상상해보라. 라디오가 죽으면, 음악도 죽는다. 하지만 이러한사건은 라디오가 음악의 원천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한다. 라디오는음악을 전송할 뿐이며, 모차르트나 바흐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다. 뇌도 마찬가지다. 뇌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단순한 전달 장치이다. 뇌 스캔이 아무리 강력해져도 신경 활동이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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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각(인식)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현실이 될 수없다. 공교롭게도 인간의 뇌는 매우 선택적인 인지 메커니즘인데 가장 정교한 광자검출기, 즉 시각피질만큼이나 정교할 수 있다. 동시에 뇌는 자신의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전혀 모른다. 우리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세포들의 발화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커다란 소음에 화들짝 놀란다. 자동적인 뇌 메커니즘이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싸우거나 도망치는‘ 반응을 부추기는 아드레날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볼 수도 없다. 뇌가 자신의 활동을 알아차리지못하기에, 사춘기나 노화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놀라게 된다.
소박한 실재론의 큰 문제점은 인간의 뇌가 현실의 모습을 전달한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하나의 지각perception일 뿐인 3차원 이미지만을 전달한다. 우리가 방금 다룬 이중 슬릿 실험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어려움은, 광자가 날아갈 때는 볼 수 없고이들이 사라질 때만 검출된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애초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신경 시스템을 지날 때를 제외하고는 보이게 만들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일단 신경 시스템을 지나게 되면, 빛은 더 이상 자신의 자연스러운 자기가 아니라 신경이 창조한 것이 된다. - P175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뇌는 훈련 받을 수 있고, 모든 이의뇌가 훈련을 받아왔다. 뇌는 받아들이도록 훈련된 현실의 모델만을 - P177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 종교적 근본주의자의 세계관이 과학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뇌가 받아들이는 모델과 일치하지 않는정보를 처리하지 않을 뿐이다. 바로 이 순간 당신이 따르고 있는 현실의 모델은 뇌의 시냅스와 신경 통로 속에 연결되어 있다. 허름하게 입은 노인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오가는 사람들은 같은 시각정보를 보지만, 어떤 이는 이 노인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떤 이는 노인을 동정할 것이며, 또 다른 이는 그 노인을 사회적인 위협이나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혹은 노인을 보며 자신의 조부모를 떠올릴 것이다.
노인은 동일한 사람이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매우 많은 인식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한 사람의 인식(지각)도 시간. 분위기 · 기억 등에 따라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면서 정반대로 반응한다면, 이들이 자신의 반응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이 이들을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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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층 사이에 갇힌엘리베이터처럼 왜 우리는 두 세계관 사이에 끼어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키플링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표범에게는 반점이 필요해서 반점이 있을 뿐임을 받아들인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과학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반점 이면의 메커니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지만, 다윈설, 빅뱅, 우주 팽창,
태양계의 형성은 결국 그런 식이다. 즉 목적이나 의미 같은 인간적 개념을 거부한다.
과학자들은 사라졌다고 여겼던 세계관의 기습 공격처럼 느껴지기때문에 ‘설계design‘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가 같혀 있는 두 세계관에 대한 논의를 잠시 잊는다면, 설계, 패턴, 구조, 형태라는 단어는 사실상 같은 말이다. ‘설계‘만 유난히 끔찍하게 여겨야할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단어에는 역사가 있기 마련이고, ‘설계‘라는 단어의 역사는 창조론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 P145

과학자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창조론 캠페인은 과학이 지적 설계의개념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의 창세기를 업데이트한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과학의 진실성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본다.
실제로 지적 설계는 주로 종교인과 흥미 있는 이야기를 쫓아다니는대중매체가 매력을 느낀다.
법원은 창조론에 학교 과학 교과과정과 동등한 시간을 제공하려는모든 시도를 기각해왔다(불행히도 비록 몇몇 예외가 남아 있지만). 이 들판을 다시 경작하는 건 무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층 사이에 갇힌엘리베이터는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둘러보면, 우리는 모든곳에서 설계를 본다. 이게 마음의 속임수일 뿐이란 말인가? 누구도 곰과 개구리가 무지개를 경이롭게 바라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없다. 사실어떤 패턴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건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우리는 매우 냉정한질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주에 설계된 게 있기는 한가? - P146

세상은 빛으로 가득한데 뇌는 완전히 어둡다는 사실은 미스터리 중미스터리라고 부를수 있다. 아직 이 미스터리를 밝힐 준비가 많이 되어 있지는 않다. 우선은 관찰자와 관측 대상을 결합하는 수준에 머물것이다. 자연의 원재료들을 처리하여 아름다운 붉은 장미로 만드는데 뇌가 필요하다면, 같은 처리 과정이 설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않을까? 대답은 명백히 "그렇다"다. 장미꽃을 씹고 있을 때, 애벌레는한 시간 안에 장미의 아름다움을 파괴할 수 있지만, 애벌레가 가져간장미의 아름다움은 인간 존재가 거기에 갖다 놓은 것이다. 장미를 먹은 벌레에게 꽃은 단지 먹이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건 사실 뇌가 아니라 마음이다. 장미에 심하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장미는 아름답기에는 너무 성가시다.
그런 사람도 짐작건대 나폴레옹 시대에 장미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였던 피에르 요셉 프루동Pierre-Joseph Redouté과 같은 뇌 메커니즘을갖고 있을 것이지만, 이들의 마음가짐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장미가 아름다운 것이 오로지 인간의 마음이 이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때문이라면, 전체 우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질문을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건 순진무구하지만, 폭발적인 영향을 갖고 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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