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남자가 여전히 더스티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발이 더 굵어지고 있었다. 더스티가 뒤를 돌아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소년들을 향해 두 눈을 깜박거렸다. 그들을 재빨리 흘끔 쳐다본 더스티는 그들 세 사람 사이에 무언의 메시지가 오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에게 달가운 내용은 아닐 것 같았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녀석은 어디에 있지?”
남자의 목소리는 굵고 거칠었으며, 억양이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과 달랐다. 그가 어느 지역 사람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더스티는 최대한 대담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누가 어디에 있냐는 거예요?”
“나하고 장난칠 생각 마.”
“아저씨가 누굴 말하는 건지 전 모르겠는데요.”
남자와 그의 두 아들 사이에 또 한 차례 눈빛이 오갔다. 더스티는 소년들이 서서히 앞으로 다가오는 걸 느끼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남자를 흘긋 쳐다보았다. 남자가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머리를 가로젓자 소년들이 자리에서 멈추었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더스티는 개들을 바라보았다. 개들은 어떻게든 더스티를 향해 다가가려고 가죽 끈을 홱홱 잡아당기고 있었다. 남자는 투박하고 단단한 손으로 개의 목줄을 꽉 쥐었고, 더스티는 제발 그가 이 목줄을 놓지 않길 바랐다. 남자는 더스티의 손이 간신히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개들을 멈춰 세우고는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넌 스톤웰 공원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그 녀석하고 같이 걸어갔잖아. 그리고는 정문 앞에서 멈추었어. 그리고 녀석과 같이 담장 틈사이로 들어갔지. 우리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 두 개, 그러니까 너와 그 녀석 발자국을 똑똑히 봤어. 암만 봐도 아이들 발자국이더군. 다시 말해 넌 그 녀석과 함께 언덕 아래로 내려가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간 다음 분수를 지나 놀이터까지 온 거야. 심지어 녀석과 함께 그네 쪽에도 갔더군. 그런 다음 너희 둘은 반대편 입구로 향했어.”
더스티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이제야 자신이 이 일에 얼마나 깊이 관여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지? 넌 입구의 문을 타고 넘으려 했어. 그렇다면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거지?”
더스티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들은 소년의 발자국이 눈에 덮여 점점 사라져간 걸 알아채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그들은 더스티가 출입문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만 보고 더스티를 잡으러 황급히 쫓아온 것이다.
“너희 둘이 정문까지 같이 왔잖아.”
남자가 말했다.
“우리는 네가 철문을 타고 올라가는 걸 봤어. 자, 녀석은 어디로 갔지?”
“녀석이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전 정말 몰라요.”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남자는 개들을 흘긋 내려다본 다음 다시 더스티를 쳐다보았다.
“우리를 속이려면 좀 더 그럴듯한 대답을 생각해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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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3.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더스티는 땅에서 풀쩍 뛰어 올라 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온몸을 비틀어가며 필사적으로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검은 형체들이 눈에 들어왔고, 아무래도 재빨리 벽을 넘기는 틀린 것 같았다. 이가 덜덜 떨릴 만큼 무서운 걸 꾹 참고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두 다리를 붙잡고 자신을 벽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두 소년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더스티를 붙잡은 다음 그의 등에 더스티를 업어 개들 옆에 내려놓았다. 다른 소년 역시 앞으로 달려 나와 어른 남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아빠! 그 사람들을 다시 부르세요! 그들을 다시 부르세요!”
남자는 휘파람을 불었다.
개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어 더스티는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녀석들이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한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대략 1미터 50센티미터쯤 되는 투견들은 여전히 으르렁대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앉아!”
더스티를 붙잡고 있는 소년이 소리쳤다.
개들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 녀석들 좀 앉으라고 해주세요, 아빠!”
“앉아!”
남자가 큰소리로 고함쳤다.
그러자 두 마리의 개들이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난 갈 거야.”
더스티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이 더스티를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 바람에 더스티는 한 차례 눈 위에 굴러 넘어진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두 마리의 개들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더스티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앉으라니까!”
남자가 고함쳤다.
“제 자리에 있지 못해!”
개들은 즉시 주인의 말에 순종했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마지못한 태도였다. 더스티는 서서히 오솔길 방향으로 달아나려고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도 거기 그대로 있어!”
남자가 더스티를 지켜보며 소리쳤다.
더스티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달아나려 해봐야 소용없었다. 자칫하다간 남자가 당장에라도 개들에게 명령해 자신을 덮치게 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이 남자 외에는 아무도 개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스티는 자신을 둘러 싼 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벽에 기대어 몸을 움츠렸다.
남자는 키가 땅딸막하고 건장해 보였으며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에 까만 콧수염을 길렀다. 얼굴에는 성난 표정이 아예 굳어져버려 더스티가 짐작하기에, 아마 단 한 순간도 그 표정이 떠난 적이 없었을 것 같았다. 소년들은 조금 전 더스티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쯤으로 짐작되었다. 둘 다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건장했는데, 한 명은 까만 머리칼에 아버지를 쏙 빼닮았고, 조금 전에 더스티를 벽에서 끌어내린 다른 한 명은 앞의 소년보다 좀 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구에 외모도 호감이 갔지만 그만큼 위험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남자가 개들에게 다가와 그 사이에 섰다. 그리고는 더스티를 주시하면서 손을 아래로 뻗어 개들을 묶은 줄을 다시 단단히 동여맸다. 개들은 초조해하며 털을 곤두세웠지만 반항하지는 않았다. 개들의 시선 역시 더스티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더스티는 일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려 했고, 침착하려 애썼다. 이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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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등 뒤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캄캄한 한밤중에 그 소리는 더욱 거칠게 들렸지만, 더스티는 그것이 소년들의 숨소리이며 그들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깨너머로 뒤를 바라보았다. 아직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더스티는 길을 따라 달렸고, 그렇게 달리는 동안 마음은 알 수 없는 공포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이 길로 오다니 엄청난 실수였다. 이 오솔길은 승마길 만큼이나 외진 곳이었다. 결국은 벡데일 도로와 만나긴 하겠지만 2킬로미터 가까이 달려도 노울에서는 집 한 채 발견하지 못할 테고 어디 한 군데 마음 놓고 숨어 있을 곳도 없을 터였다. 더군다나 오솔길 양쪽의 돌담과 그 위의 풀밭, 그리고 눈 위에 남긴 발자국으로 소년들은 더스티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게 뻔했다.
더스티는 다시 한 번 어깨너머로 뒤를 흘긋 바라보았는데, 이번에는 두 개의 형체가 자신을 좇아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들은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더스티는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전속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가볍고 맑은 눈송이들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 동안 눈송이가 더스티의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귀에는 여전히 소년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더스티의 호흡이 더 가빠지고 있었다. 지치고 겁이 났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소년들이 계속 자신을 따라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더스티는 그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이렇게 내리는 눈이 얼마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눈발 사이로 시선을 던져보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 속으로 쭉 뻗은 인적 없는 오솔길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더스티는 소년들보다 앞서 있었고, 잠시 동안 그들 사이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마침내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저 앞에 헤드라이트가 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스티는 헤드라이트를 향해 달리면서 두 팔을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재빨리 어깨너머로 뒤를 바라보았다. 소년들이 바짝 뒤쫓아 와 그들과의 간격이 2미터도 채 벌어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천천히 속도를 늦추더니 마침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들도 분명히 자동차를 보았고 그래서 일단 걸음을 늦추었던 것이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점점 밝아졌다. 이제야 비로소 차량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승용차가 아니었다. 끔찍할 만큼 귀에 익은 엔진 소리를 낸 그 차량은 흰색 소형트럭이었다.
더스티는 공포가 엄습해오는 걸 느끼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소형트럭이 더스티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멈추었다. 헤드라이트가 꺼졌다. 엔진 소리도 멈추었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남자가 소형트럭에서 내려 뒤쪽으로 걸어가더니, 잠시 후 끈에 묶인 두 마리의 투견을 데리고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더스티는 공포에 질린 채 남자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개들을 데리고 더스티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스티는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았고, 소년들은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더스티는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전화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제 그들은 더스티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더스티는 얼른 도망쳐야 했고,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더스티는 벽을 향해 달려가 벽 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벽을 타고 있을 때, 남자가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가!”
그러자 개들이 더스티를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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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더스티는 정문을 향해 뛰어간 다음, 뒤편 숲을 바라보면서 정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사람들도,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들도, 다가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문 위까지 올라가자 비로소 한시름 놓였다. 공원 안쪽에서 개들이 불협화음을 내며 시끄럽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더스티는 여전히 정문 맨 위에 매달린 채 숲을 응시했다.
드디어 세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치고는 환한 편이라 해도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들의 윤곽만큼은 제법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땅딸막한 남자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열여덟, 열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소년들이었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싸울 태세가 되어 있는 투견 두 마리를 줄에 묶어 앞세우고 걸어왔다. 남자와 소년들은 그네가 있는 방향을 샅샅이 훑어보았고 아직 더스티를 알아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개들이 더스티를 향해 다가가려 애쓰면서 줄을 잡아당겼다.
더스티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움직임이 들키지 않길 바라면서 정문 반대편으로 살짝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기다!”
남자가 곧바로 더스티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개들이 더스티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더스티가 정문에서 채 1미터도 달아나지 못하고 있을 때, 개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입구로 다가와 철문 틈새에 코를 박고 더스티를 향해 다가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달려들었다. 개들 뒤로 어른 남자 한 명과 소년 두 명이 눈길을 가로지르며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더스티의 눈에 들어왔다.
더스티는 황무지 가장자리에 빙 둘러 있는 승마길을 따라 황급히 달렸다. 길모퉁이를 돌자 정문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더스티는 이제 어느 쪽으로 달려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면서 계속 달려 내려갔다. 개들은 출입문이나 담장 틈새로 빠져나갈 수 없을 테고 어른 남자도 개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을 테지만, 소년들은 쉽게 문을 타 넘어 자신을 쫓아올 수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좋을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황무지로 가는 건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그쪽은 워낙 황폐한 곳이라 설사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레이븐 산과 머크웰 호수의 황량한 북쪽 가장자리를 향할 뿐이었다. 그쪽으로 가다간 집에서 한참 멀어질 뿐더러 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향하게 될 터였다.
그나마 승마길을 택하는 편이 좀 더 나았다. 그 근처에는 사일러스 할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으며, 사일러스 할아버지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일러스 할아버지의 낡은 오두막은 1킬로미터가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있는데,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누군가를 도와줄 요량이라면 차라리 남극에서 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난로 주위에 몸을 움츠린 채 앉아 있곤 했는데, 설사 아직까지 잠이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더스티가 도움을 청하면 보나마나 잠든 척할 게 뻔했다.
아무래도 노울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 편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곳은 고작해야 말 세 필이 전부인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더스티가 도착할 무렵이면 틀림없이 누군가는 깨어 있을 게 분명했다. 더스티는 승마길을 따라 달려 내려갔다. 차가운 공기 속을 달리려니 숨쉬기가 힘들었다. 저 앞으로 오솔길 초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스티는 누가 쫓아오지 않나 보려고 어깨너머로 뒤를 흘긋 바라보았다.
아직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더스티는 미끄러운 땅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달렸다. 곧 눈이 펑펑 쏟아질지도 모르고, 승마길은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돌아 노울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갔을 때,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더스티가 두려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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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더스티의 뒤편 골목 어딘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 차례 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에 더스티는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짖어대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더스티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아무래도 개는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더스티는 아까처럼 발자국을 따라 숲을 가로질러 달렸다. 여전히 소년의 모습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거칠고 험악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보다 어린 듯한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굳이 알아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소리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이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으니까.
더스티는 미끄러지고 비틀거리며 나무들 사이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소년도 찾아야 했고 동시에 안전하게 머물 곳도 찾아야 했다. 마음속 한편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달리라고 외쳐댔다. 이제 그만 소년을 잊으라며 비명을 질러댔다. 바로 그때 어린이 놀이터 바로 아래에 공원 입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잘하면 입구의 담을 넘어 노울로 이어지는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달아날 수도 있고, 황무지 가장자리로 이어진 승마길을 따라 황급히 달아나도 좋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아예 황무지를 가로질러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서둘러야 했다.
개들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 컹컹대며 짖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더스티는 어깨너머로 뒤를 흘긋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나무들과 눈뿐이었다. 숲을 헤치며 달리고 또 달리자 마침내 불쑥 반대편 길이 나타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백의 눈밭 속에 축구 경기장과 럭비 경기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바로 가까운 곳에 회전목마며 모래놀이터, 장난감집, 정글짐 등이 갖추어진 어린이 놀이터도 온통 눈으로 뒤덮여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른쪽에 놓인 그네는 가벼운 바람에 밀려 삐거덕 삐거덕 귀에 익은 무딘 소리를 냈다. 더스티가 줄곧 따라가던 발자국은 이곳 그네까지 죽 이어졌다.
더스티는 발자국을 따라 달려가, 그네 아래에 또 하나의 와인병과 또 한 병의 알약 통이 모두 텅 빈 채 나뒹굴어있는 걸 발견했다. 어쩌면 소년이 그네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는 마지막 남은 알약들을 전부 털어 넣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년은 그네를 살짝 흔들었을지도 모르고, 그 소리가 더스티의 귓가에 전달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소년은 이제 이곳에 없었다.
바로 그때 발자국이 그네에서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는 걸 발견했다. 아무래도 소년은 공원 밖을 빠져나가 승마길과 황무지로 향하려 한 것 같았다. 더스티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쨌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섰다.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입구의 담을 넘어 도망쳐야 했다. 더스티는 서둘러 입구 쪽으로 다가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발자국은 정문에서 약 3미터쯤에서 끊겼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더 이상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다. 소년이 눈 속에 깔고 누웠으리라 짐작되는 평평한 판자 조각 하나만 달랑 남아 있을 뿐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발자국은 이곳에서부터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다. 소년은 정말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어서 달아나야 했고, 그러려면 이 정문을 타고 넘어가야 했다. 정문 옆 담장에는 비집고 통과할 만한 틈새가 전혀 없었다. 저 뒤편에서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개들이 이제 숲 가장자리 가까이까지 왔다는 사실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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