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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린이 놀이터로 방향을 돌려 창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 이용했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더스티는 나무들 사이로 걸어갔다. 이곳은 숨을 만한 곳이 더러 있는 만큼 주위를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뒤편 분수를 지나 잠시 후 반대편 방향으로 나왔다. 경사로 꼭대기에 또 하나의 출입문이 있고, 그 너머에 골목과 손 코티지가 있었다.
지금 더스티는 아빠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집으로 돌아가 따뜻하게 몸을 녹인 다음 몸을 좀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오면 두 시간 전부터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아무 일 없이 잘 지낸 척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뭐니 뭐니 해도 자는 체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리라. 잘하면 아빠는 아침까지 깨우지 않고 내버려둘 테고, 그때쯤이면 더스티는 한결 차분해져서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연기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눈이 그쳤다.
더스티는 정문까지 경사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 담장 사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 공원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그 위로는 머크웰 레이크 호수를 향해 황무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레이븐 산의 두 산봉우리 저 위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타오르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더스티는 그 환한 빛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한순간 기묘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산 위의 눈들이 벌겋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은 당황스러운 느낌, 그것도 정상이 아니라 그 아래 황무지와 호수 주변, 심지어 자신이 서 있는 바로 이곳 주변의 눈들이 온통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 것이다. 더스티가 고개를 흔들자 그 느낌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밤은 여전히 더스티의 주위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 더스티는 손 코티지를 향해 나 있는 골목을 따라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집 밖에는 주차된 차가 없었다. 더스티는 집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았다. 사방이 어두웠다. 방을 나오면서 거실 불을 켠 기억은 나지만, 집 밖으로 뛰어 나올 때 불을 껐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불을 끄고 나온 게 분명했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어두운 상태로 있어 다행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두운 상태가 한결 마음이 편하니까.
그때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느닷없이 쏟아진 눈물이라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제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안전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감정이 북받쳤던 것이다. 더스티는 현관문 안쪽에 등을 기대고 서서 그대로 엉엉 울었고, 울음이 그치자 눈물을 닦고 어둠침침한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메모 철에는 자신이 아빠에게 썼던 쪽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더스티는 쪽지를 갈가리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다음, 코트를 걸고 부츠를 벗었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자신의 부츠를 아빠의 낡은 웰링턴 부츠 뒤로 안 보이게 밀어 넣고 젖은 코트는 자신의 방수복 아래에 숨겨놓았다. 여전히 온몸이 흠뻑 젖은 채였지만, 적어도 여기 현관에서만큼은 자신이 나갔다 왔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들키지 않을 터였다.
바로 그때, 골목 저 아래쪽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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