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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더스티의 뒤편 골목 어딘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 차례 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에 더스티는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짖어대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더스티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아무래도 개는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더스티는 아까처럼 발자국을 따라 숲을 가로질러 달렸다. 여전히 소년의 모습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거칠고 험악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보다 어린 듯한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굳이 알아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소리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이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으니까.
더스티는 미끄러지고 비틀거리며 나무들 사이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소년도 찾아야 했고 동시에 안전하게 머물 곳도 찾아야 했다. 마음속 한편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달리라고 외쳐댔다. 이제 그만 소년을 잊으라며 비명을 질러댔다. 바로 그때 어린이 놀이터 바로 아래에 공원 입구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잘하면 입구의 담을 넘어 노울로 이어지는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달아날 수도 있고, 황무지 가장자리로 이어진 승마길을 따라 황급히 달아나도 좋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아예 황무지를 가로질러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서둘러야 했다.
개들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 컹컹대며 짖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더스티는 어깨너머로 뒤를 흘긋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나무들과 눈뿐이었다. 숲을 헤치며 달리고 또 달리자 마침내 불쑥 반대편 길이 나타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백의 눈밭 속에 축구 경기장과 럭비 경기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바로 가까운 곳에 회전목마며 모래놀이터, 장난감집, 정글짐 등이 갖추어진 어린이 놀이터도 온통 눈으로 뒤덮여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른쪽에 놓인 그네는 가벼운 바람에 밀려 삐거덕 삐거덕 귀에 익은 무딘 소리를 냈다. 더스티가 줄곧 따라가던 발자국은 이곳 그네까지 죽 이어졌다.
더스티는 발자국을 따라 달려가, 그네 아래에 또 하나의 와인병과 또 한 병의 알약 통이 모두 텅 빈 채 나뒹굴어있는 걸 발견했다. 어쩌면 소년이 그네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는 마지막 남은 알약들을 전부 털어 넣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년은 그네를 살짝 흔들었을지도 모르고, 그 소리가 더스티의 귓가에 전달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소년은 이제 이곳에 없었다.
바로 그때 발자국이 그네에서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는 걸 발견했다. 아무래도 소년은 공원 밖을 빠져나가 승마길과 황무지로 향하려 한 것 같았다. 더스티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쨌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섰다.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입구의 담을 넘어 도망쳐야 했다. 더스티는 서둘러 입구 쪽으로 다가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발자국은 정문에서 약 3미터쯤에서 끊겼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더 이상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다. 소년이 눈 속에 깔고 누웠으리라 짐작되는 평평한 판자 조각 하나만 달랑 남아 있을 뿐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발자국은 이곳에서부터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다. 소년은 정말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어서 달아나야 했고, 그러려면 이 정문을 타고 넘어가야 했다. 정문 옆 담장에는 비집고 통과할 만한 틈새가 전혀 없었다. 저 뒤편에서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개들이 이제 숲 가장자리 가까이까지 왔다는 사실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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