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평민열전 -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또다른 조선
허경진 지음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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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를 일컬어 흔히 승자(勝者)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다. 이는 승자의 시각이라는 한계 외에, ‘지배층의 기록’이라는 한계 또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배층과 식자층이 주가 되는 표층문화 뿐 아니라, 피지배층과 평민층을 바탕으로 하는 기층문화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평민열전>은 기층문화의 주체인 평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다. ‘전(傳)’은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의 행적을 서술한 작품을 말한다. 저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이나 <고려사(高麗史)> 열전,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등이 이러한 예이다. 고려시대의 가전문학(假傳文學)이나 전기소설(傳記小說)로 분류되는 <임경업전(林慶業傳)>, <김유신전(金庾信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등도 여기에서 발전된 형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열전들은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평민층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조선평민열전>을 그런 점에서 볼 때 <조선평민열전>은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평민 화가 조희룡이 지은 <호산외기>(1844), 아전 출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1862), 그들과 교류했던 시인 이경민이 지은 <희조질사>(1866) 세 권의 책을 중심으로 평민들의 전기를 추려 엮었다. 시인, 화가, 서예, 의원, 역관, 출판, 충렬, 효자, 열녀, 기생 등으로 분류한 이 책에는 ‘달마도’로 유명한 화가 김명국(金鳴國)이나 단원 김홍도(金弘道), 고산자 김정호(金正浩)와 기생 황진이(黃眞伊), 제주도의 김만덕(金萬德)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몇을 제외하고는 이제껏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110여 인의 인물을 다루다 보니 책의 내용이 조금 단편적으로 흐른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배층의 삶에 가려져 있던 평민들의 삶을 한층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이 책에는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형제와 시를 교류했던 홍세태(洪世泰), 비천하고 추악한 용모에 말까지 더듬었으나 정조에게 신임을 받았던 천문학자 김영(金泳), 억지로 그림을 요구하는 벼슬아치에게 노하여 그 자리에서 자신의 눈을 찔렀던 화가 최북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동안 더욱 눈길이 가는 인물들도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화친(和親)의 불가함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화친이 이루어진 소식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던 의원 이형익(李亨翼)은 모 케이블 드라마에서 희화화되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드라마가 망쳐놓은 인물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위인전에서 잠시 읽었던 안용복(安龍福)을 다시 만난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조정 일각에서 ‘울릉도를 쪼개서 왜에 주자’는 허무맹랑한 논의를 하고 있을 때 아무런 벼슬도, 명령도 없이 오랑캐와 대마도 도주를 혼내어 울릉도를 지켰던 인물이다. 인물은 간 데 없고, 국민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조정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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