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는 옳다 - 프로문구러의 아날로그 수집 라이프
정윤희 지음 / 오후의서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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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사진 찍는 일을 하다 보니 꼭 필요한 것만 둔다고 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맥시멀리즘이 된다.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미니멀리즘으로 지내보려 노력 중이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마치 이솝 우화 속 여우의 신 포도처럼 관심 없는 척, 좋아하지 않는 척 외면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문구에 대한 욕심이다. 예쁜 문구, 마음에 쏙 드는 문구를 보면 여지없이 빠져들지만, 이게 또 빠져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문구홀릭(-holic)’임을 스스로 알기에 그 마음을 꼭꼭 덮어두고 지내는 중이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고 나니 꼭꼭 눌러두었던 마음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문구는 옳다>는 제목도 그렇고, ‘프로문구러라고 하는 저자의 아날로그 취향도 그렇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만년필, 연필, 노트 등 각양각색의 문구도 그렇고, 모두 여우의 신 포도처럼 외면하고 있던 내 취향이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내게 더 다양하고, 더 넓은 문구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으로 살려고 해도 지금도 책상과 책꽂이 주변에는 파버카스텔과 라미의 만년필, 잉크병, 스테들러 연필과 로트링펜, 몰스킨 수첩과 여러 가지 노트, 각양각색의 클립과 스테이플러, 한정판 책갈피에 갖가지 형태의 포스트잇과 전각으로 새겨진 장서인 등 작고 소소한 문구들이 가득하다. 거기다가 언제 쓸지도 모르면서 괜히 아까워서 모으고 있는 틴 케이스까지.

 

문구 늘리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다 보니 갖고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호시탐탐 마음에 드는 만년필에 눈독을 들이거나 혹은 어쩌다가 필기감 좋은 노트나 펜을 얻게 되면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내가 아는 문구의 세계는 빙산의 일각이었지 싶다. 몽블랑이나 파커 만년필이나 몰스킨 노트을 비롯해 대추나무 도장, 문진 등 내가 아는 문구들도 있었지만, ‘어머, 이런 것도 있네?’하며 있는지조차 몰랐던 문구들이 훨씬 많았다. 중력을 뛰어넘는 우주 최강 펜이라는 피셔 스페이스 펜’, 한 번쯤 써보고 싶은 3M 포스트잇 블랙과 펠리컨 듀오 하이라이터 형광 만년필 그리고 형태도 다양한 커터칼까지.

 

글과 사진을 함께 하는 저자는 주제를 강조하는 깔끔한 사진과 박학한 글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문구 하나하나마다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마음껏 풀어내고, ‘문구하나만으로 이렇게 책 한 권을 엮어내는 것을 보면 역시 일반적인 문구덕후가 아닌 말 그대로 프로문구러임을 알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름만으로도 향기로운 슈타이들의 북퍼퓸 Book perfume’ 이었다. 출판 장인으로서 슈타이들의 자자한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슈타이들에서 북퍼퓸이 생산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하는 터라 대학 다닐 때도 낡은 책들만 모아놓은 서고에 가서 책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는데, 북퍼퓸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그때의 책 냄새와 추억이 동시에 몰려왔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문구나 아날로그적 사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이 간다. 그중에서 특히 공감이 갔던 문장은 난을 치듯 잉크를 치다라는 표현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만년필의 캡을 분리하고, 마르거나 굳은 잉크를 씻어내고, 컨버터와 닙을 세척하고, 다시 말려서 잉크를 채워 넣고 하는 일련의 행위는 머릿속을 단순하게 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게 뭐라고하며 문구에 대한 관심을 하찮은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것들이 주는 만족감과 위로, 때로는 불편하면서도 투박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따뜻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드는 문구를 만났을 때의 흐뭇한 미소를 이해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문구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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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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