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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온 한국인의 역동적 생활철학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평점 :
나는 가난이를 등에 업고 산다. 끼니를 굶거나 길바닥에서 잠을 청해야하는 정도는 아니다. 아담한 방이지만 몸을 뉘일 공간이 있고, 가끔이지만 책을 한 권씩 구입할 여유도 있다. 내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건, 돈을 아끼기 위해 몇 킬로나 떨어진 마트에 가서 샴프를 사오거나 먹고 싶은 걸 참아야할 때이다. 그리고 생리대를 아껴 써야 할 때 약간은 연민을 느낀다. 사실 가난하게 사는 게 몸에 익은 터라 난 가난을 잘 모른다. 며칠 전 “넌 가난이랑 잘 어울려.”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골똘히 생각을 해보았다. 부유하게 사는 내 모습, 왠지 어색하다.
가난을 가난으로 여기지 않는 건(=괴로워하지 않는 건) 어쩌면 내가 가난을 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원한다면 부유하게도 될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돈을 원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윤택한 생활을 했을 테다. 내게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젊음과 건강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박하게 사는 건, 단지 소박한 게 좋아서다. 욕심을 내는 일이 나는 피곤하다. 욕망을 채웠을 때 얻는 쾌감보다 욕망을 채우거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책임감의 부담이 더 크다. 그래서 나는 하루 평균 2시간 일하며 소박하게 살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모닝응가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창비, 2008)의 저자 탁석산에 따르면 이런 나의 생활태도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 중 하나다. 탁석산은 현대 한국문화의 특징으로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셋을 꼽는다. 한국인들은 초월적, 내세적 세상을 믿지 않는다. 불교, 기독교도 해탈하거나 천국에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현생에서 복 받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걸 믿다보니 추상적, 관념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측정하기 쉽고 눈에 잘 보이는 아파트 평수, 학벌, 외모를 중시한다. 또 사후세계란 없고 이 세계가 유일하니, 이왕이면 즐길 것 다 즐기자는 인생주의를 띈다. 마음껏 마시고 즐기는 음주가무가 발달한 배경이다. 좋은 점도 있다. 현생에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다보니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경제개발에 도움을 주었다. 인생을 허무한 것으로 보는 경향은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마음 속 깊이 평안을 유지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인생 뭐 별거 있어?”하면서 술과 함께 털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뿐인 세상에, 한번뿐인 인생, 인생은 허무한 것이기에 인생을 즐기자.’ 이것이 한국인의 마인드란다. 이 마인드를 현실에서 실현시키는 방법론이 실용주의다. 한국의 실용주의는 ‘유용성은 좋은 것이다.’로 표현할 수 있다. 인생의 즐거움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현재는 “인생에 유용한 것이 좋다.”가 일반적이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면 ‘인생’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식 실용주의에 따르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가치란 없다. 뭐든지 도구나 방편일 뿐이다. 탁선산은 그 예로 박정희 집권 시절 국민들이 독재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본다. 먹고 살기 위해 발전하기 위해 독재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80년대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게 된 건 개발로 얻은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통일도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 추구에 유용하냐 아니냐에 따라 추구되는 상황적 목표일뿐이다.
내 생활이 탁석산이 말한 한국문화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건, 사회적인 성공이 내 즐거움 추구에 유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가난하더라도 적게 일하고 베짱이처럼 노는 걸 한번뿐이 삶을 후회 없이 사는 방도라고 나 자신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 있어 그의 의견에 동의를 하고, 한국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뽑은 4가지 키워드가 적절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겠다. 일단은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을 한국의 실용주의로 설명할 수 있냐는 건데, 국민들이 경제개발을 위해 독재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점은 논외로 치고서라도 산업화 이후의 민주화 요구를 한국만의 특성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유럽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유사한 시기에 겪었는데,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시민혁명이 일어난 데는 자본주의의 발달로 성장한 부르주아나 젠트리 계급의 역할이 컸다. 조선후기 상민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양반직을 사거나 그들만의 문화를 생산하고 누리는 주체가 된 것처럼 경제력 획득이 정치적인 요구로 나아간 사례는 많다. 굳이 한국인들의 특성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
한국인의 특징으로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융합 사상을 얘기했는데, 그러면서 외국인과의 결혼이 늘고, 외국인 며느리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고, 외국인들과 잘 지낸다는 근거를 들었다. 제노포비아가 신문을 장식하는 일이 흔한 요즘이라 그런지 억지스러운 감이 컸다. 아마도 저자는 외국인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우리에게 ‘유용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제노포비아’가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라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사실 ‘단일민족’의 한국인이 누구보다도 ‘집단주의’, ‘배타성’이 강하고, 외국인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정반대의 얘기를 들어서인지 이 부분만큼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한국인의 음주가무, 학벌, 서열, 종교, 역사, 과시, 체면, 성형, 빨리빨리, 경쟁, 화병, 국민정서법, 밤 문화, 다양한 음식, 시끄러움, 빠른 변화, 역동성, 아파트 등 다방면에서 근거를 끌어오다보니 핵심 키워드는 퇴색하고 사이비 철학관 냄새를 풍기는 점도 아쉽다. 나뿐만 아니라 이 중 한두 가지 해당사항 없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걸려든다! 사실 내 생활 태도는 전혀 전형적이지 않으며 수많은 어르신들로부터 지탄받는 것인데, 그리고 내 또래 친구들의 것과 상극인 경우도 많은데 어쨌거나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 4가지 키워드로 묶인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현세주의, 허무주의, 인생주의를 발현하는 실용주의의 방식이 같다는 거지, 각자의 생활은 개인 특유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게 문제다. 다른 점들은 내 특유의 성격 문제고, 맞는 건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얘기한다면 비판의 여지가 없다. 딱 철학관이다.
문화비평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읽을 만하다. 4가지 키워드는 분명 한국문화를 꿰는 구슬들이다. 덧붙여서 ‘한국문화는 조선 문화가 아니다.’는 단절된 문화 진화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하고 ‘문화재는 문화가 아니다.’는 편견?을 깨는 지식도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