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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겨울 “나 뉴욕 갔다 왔어.”라고 말했을 때, 사실 이런 반응을 기대했다. “우와~ 부럽다.”, “어땠어?”, “뭐 봤어?” 그런데 친구는 이랬다. “무슨 돈으로? 얼마 들었어?”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했던 연애초기에는 사람들이 남자친구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 주기를 은근 기대했고, 속으로 몇 몇 자랑거리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대게 사람들은 “남자친구는 뭐해?”라던가 “연봉이 얼마지?”라는 걸 더 궁금해 했다.
사람들의 욕망이 수렴하는 곳은 돈
사람들마다 욕망은 다르지만 욕망을 충족시킬 수단으로 돈만한 것이 없는 시대다. 한 물건은 많아봤자 두세가지 용도로 쓰이는 반면 돈의 용도는 가히 무한하다. 이 무한한 ‘가능성’ 때문에 돈은 교환수단의 지위를 뛰어넘어 사람들이 일생을 바쳐 추구하는 목적이 되었다. 여행이 어땠는지 보다 그 여행에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남자친구의 성격보다 그의 능력에 관심을 보이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모든 인간이 돈을 원한다면, 얼만큼의 돈을 가졌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 사람을 만나는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이자 나의 위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게오르그 짐멜은 이런 화폐경제가 인간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관계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화폐경제 이전의 인간과 인간은 인격적관계에 놓여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외상이다. 외상은 손님이 언젠가 돈을 갚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기서 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돈이 아닌 신뢰로 연결돼 있다. 그러나 오늘날 외상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단골이라해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외상으로 구입하지 못한다. 이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돈으로 엮인 구매자, 판매자로 단순화되며 비인격적이라는 의미다. 인간을 인간과 연결하는 건 바로 돈이다. 이런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비인격적인 관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도시에서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인격적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건 무척 피곤한 일이다. 편의점에 들러서 담배 한 갑을 살 때, 주인이 담배가 몸에 나쁘니 피지 말라고 한다면 손님은 기분 나빠 다른 편의점으로 가거나 다시는 그 편의점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많은 슈퍼가 있는데 슈퍼주인과 일일이 다 친분을 맺으려면 도시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과 소음, 변화에 둘러싸여 사는 도시인들은 피곤함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비인격적인 관계를 원한다.
짐멜에 따르면 이것이 개인주의의 기원이다. 백화점, 영화관, 카페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지만 어느 누구도 말을 걸지 않으며 남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이런 거리두기로 도시인들은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고독도 느낀다. 군중은 배경일뿐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고독을 치유하기 위해 도시인들은 가족을 찾는다. ‘도시인에게 가족은 도시의 삶 속에 관념으로 존재하는 시골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가족도 고독을 완전히 없애주진 못한다. 대학, 취업, 결혼 등의 문제로 가족과 갈등한다. 간섭에 지친 이는 자기 방에 들어가 자유를 되찾는다. 물론 고독도 함께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 내 존재‘라고 했다. 초중고 교과과정을 통해 배웠던 그 긴 역사의 끝에 우리는 내던져진 사람들이다. 선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과 체제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몸담고 살아야하는 것이다. 이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야말로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제에 순응하고, 사회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 즉 돈을 숭배하고 유행을 좇고 도시 생활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좋은 점수를 내지 못해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돈이 없어 유행을 좇아가지 못했을 때 상처받는 것조차 당연한 일로 치부되는 것 같다. 보통과 다른 가치를 추구할 때도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 왜 그래야하는지 물어볼 수 있는 일이다. 대학에 못 간 것이 상처 받을 이유가 되는 게 정상일까. 인간의 존엄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면 자유권이나 사회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도 하나의 권리로 생각해봄직하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게 아니라도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 그전에 강신주의「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어보자. 우리가 왜 상처받는지 알아야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외칠 수 있다.
강신주의「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머리말의 제목인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한 책이다. 돈, 도시, 유행, 도박과 매춘, 불안, 허영, 쇼퍼홀릭과 워커홀릭, 교환이라는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개념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회에서 우리가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