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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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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라서 읽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책 소개만 훑고 공상과학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골랐다. 


처음 읽고 나서는 '음, 뭐지?' 싶었다. 짜임이 엉성한 털목도리 같다고 해야 하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다. 


챕터 대부분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홍콩 술집에서 친구를 봤다. 지난달 런던에서 그 친구가 조만간 홍콩으로 간다고 했다.', '오늘 런던에서 친구와 커피를 마셨다. 홍콩에서 그 친구는 불행했다. ' 이런 식이다. 


그런데도,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다. 상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대로 실종되면서 런던으로 돌아온다. 어른이 된 그는 탐정이 되고 부모를 찾으러 다시 상해로 떠난다.


특히 어린 시절, 아이의 눈으로 부모가 사라지던 날의 풍경, 집안의 분위기를 회상하는데 이는 사건 전말에 대한 힌트가 되기도 하지만, 후에 그 전말과 대비돼 더 극적으로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며, 어른인 우리는 그 시절을 얼마나 아름답게만 기억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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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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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은 10여년 전에 본 '달려라, 아비'와는 많이 다르다. 20대였던 작가가 30대가 되면서 마주하는 일상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고시원에 살면서 편의점을 오가던 주인공이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30대가 됐지만 아직 가족을 꾸리지 않은 나로서는 아이의 학교 생활을 걱정하고 집에 집착하는 이런 이야기가 솔직히, 그리 와닿진 않는다. 


아이를 잃거나, 남편을 잃거나, 애완견을 잃거나, 대부분의 이야기가 상실에 맞춰져 있다. 이별한 사람이 어떻게 이후 시간을 받아들이는지 되새기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에는 다음 장이 궁금한, 그런 사건은 없다. '죽음'은 이미 발생했고, 남은 사람이 감정을 추스른다고 할까. 감정만 남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 감정도 신파 같았다면, 내 취향의 문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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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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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재미로 읽는다면 이 책은 재미없는 소설일 게다. 흥미진진한 사건도, 새로운 사실도 없다.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엄마들. 돈은 있는데 가방끈 짧은 남편에 컴플렉스를 가진 여자. 그런 여자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여자. 이런 여자들을 보며 한숨쉬는 의사 여자. 이들의 경쟁심리를 부추겨 학원등록을 유도하는 학원 직원. 주인 없을 때 주인행세하는 도우미 아줌마. 대학 등록금이 없어 몸을 파는 여대생. 그 여대생에 용돈을 주며 심심함을 달래는 중년남자. 학력을 속여서 과외하는 선생. 가난한 학생을 염려하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얻는 교사.

잠실동 사람들은 유쾌하지 않고 학교와 학원, 아파트를 둘러싼 이야기는 뻔했다. 너무 뻔해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잠실동에 살지 않아도 나는 저들 중 하나이거나 하나가 될 것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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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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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나 서브웨이에 가면 귀찮을 정도로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커피 한 잔을 사면서도 크기를 숏으로 할지 톨로 할지, 우유는 저지방으로 할지 두유로 할지, 컵은 머그잔이 좋은지 종이컵이 좋은지 질문이 이어진다.


오늘날 소비의 특징을 꼽으라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엄청난 종류의 상품이 진열돼 있다.


하지만 상품의 종류가 많아졌다고 더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대개 상품은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다양해지는 데 수직적 상품군 앞에서 선택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천원짜리 딸기 우유와 커피 우유, 흰 우유를 사이에 두고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 원짜리 마트 우유와 이천 원짜리 브랜드 우유, 오천원 짜리 유기농 우유를 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는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배제의 원리가 숨어 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소비가 아니라 '능력 있는' 나만 할 수 있는 소비를 광고하면서 '남과 다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상품의 가격대를 촘촘하게 만드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 교수는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코난북스)에서 이 배제의 원리가 서울을 작동하는 힘이라고 봤다. 백화점, 대형 마트 같은 쇼핑 공간뿐 아니라 주택, 학원, 여가 등 우리 생활 곳곳에 배제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멤버십 제도로 운영되는 미국 대형 할인마트 코스트코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특정 신용카드로만 계산해야 한다. 하나짜리 방은 고시원, 원룸, 미니텔, 오피스텔로 구분해 부르고 고급 주택으로 여겨지는 아파트는 위치, 평수, 브랜드, 단지 크기에 따라 위계가 만들어 진다. 


"안과 밖의 은유는 이렇듯 그 '안'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위계로서 성립한다. 안과 밖의 은유, 그 위계의 은유가 작동하는 공간의 한편에서는 배제의 논리가, 그 반대편에서는 모방과 추격의 논리가 작용한다. 그리고 두 논리에 공통된 것은, 물신의 논리다."(175쪽)


류 교수는 구별 짓기와 추격의 과정을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환상과 실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돈에 따라 자유의 크기가 결정되는 데도 큰 불만이 없는 것은 바탕에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에서 실패는 노력 부족 탓으로 여겨지고 이런 인식은 사람들을 개미로 만든다. 가난의 책임을 내 게으름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일단 열심히 하고 봐야 한다. 이것이 서울을 관통하는 두 번째 원칙인 '알아서 살아남기' 즉 '자기 경영의 원칙'이다.


노후나 실업, 질병 대비부터 안전까지 모두 개인의 책임인 곳에서 살아남으려는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대치동 학원가, 강남 성형외과 신림동 고시촌이 이를 반영한다. 요즘은 긴 불황으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로 출세를 꿈꾸던 신도림 고시촌 인파가 하급 공무원을 꿈꾸며 노량진으로 옮겨가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복권에서 보험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보험이란 사회 전체의 안전이 아니라 개인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 결국 본인 스스로 준비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점. 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없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도 없다는 점에서 비유하자면 사보험에 가깝다."(257쪽)


이런 곳에서는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 몸을 누이나, 넓은 아파트를 차지하고 있으나 행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쫓고 쫓기는 삶은 앞에 선 자도 뒤에 선 자도 지치게 할 뿐이다. 


류 교수는 배제의 원리, 자기관리의 원칙, 미시적 안전에 대한 집착이 강화될수록 공공적 도시권 확보를 위한 길이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비굴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삶 혹은 먹고사는 것 때문에 생겨나는 비굴함을 최소화하는 평등주의적 열망"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 서울을 공공적 도시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이다. 


물론 류 교수가 말한 작동 원리는 비단 서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도시화, 산업화를 이룬 도시라면 어디나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류 교수는 "책에서 다룬 서울의 장소들은 반드시 특정 공간일 필요도, 심지어는 서울에 있는 장소일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서울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비단 서울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인사동, 삼청동, 서촌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공간, 종로구 창신동 봉제 골목, 구로공단, 가리봉오거리 등 산업화 시대의 쓸쓸함을 간직한 공간, 서초, 강남, 잠실로 이어지는 화려하고 세련된 고층 건물과 쇼핑의 공간 등 압축 성장을 이룬 서울은 수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한 이 얼굴을 만든 것이 그 공간에 살았고 살고 있는 우리라는 점이다. 서울을 더 촘촘하게 구분하고 철저하게 소외된 수직적 공간으로 만들 것이냐 어느 정도의 자유를 공유하는 수평적 공간으로 만들 것이냐도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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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위안, 그것이 허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밖에 있는 이들은 누릴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 이 사실이 물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35쪽 


"어쩌면 소비자라는 정체성이란 진실로 중요한 것은 하나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엇ㅂ는 바깥세상을 잊도록 해주는 마취제일지도 모르다." 39쪽


"재화의 목록과 그것이 가져다줄 만족의 크기, 주머니 속에 든 예산의 한도 등을 감안해 극댓값을 신속하게 찾아내는 미분기계로서의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도록 강요당하는 공간."


"이성적 비판과 의지적 순종, 낯섦과 풍족감이 뒤섞이는 정서, 그 모순적인 욕망이 작동하는 곳이 바로 쇼핑몰이다."


"들어가는 순간 닫히는 구조, 끝없이 펼쳐지는 상품 무더기, 밖을 볼 수 있는 유리창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도 없는 공간."45쪽. 


"여가의 품질 또한 여가를 즐기는 비용,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가 시간 중에 소비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여가의 품질이 여가의 가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여가의 가격이 여가의 품질을 규정하는 일종의 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49쪽 


"어쩔 수 없는 역설은 공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사적 이익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이들은 대형 마트 안 가기 운동을 실천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을 고수한다는 심리적 만족까지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그러한 정신적 여유를 위해 물질적 이익을 버릴 수 없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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