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펄 벅 지음, 장왕록.장영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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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콩쥐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밑빠진 물독에 물을 부을 땐 오히려 멍청해보이기까지 했다. 심청이가 바다에 빠질 때도 그랬다.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효심이 지극하구나 했지만 연민은 없었다. 그들의 희생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과응보',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은 마음이 편하다. 아니, 감흥이 없다.  

오란은 다르다. 오란의 부모는 어린 그녀를 황 대감 댁에 팔았다. 부모는 커녕 그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오란은 부엌에서 자랐다. 넓적한 얼굴과 단추 구멍같은 눈때문에 사랑보다는 매를 맞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아이러니 하게도 못생긴 얼굴 덕에 가난한 농부 왕룽이 자신을 부인으로 맞이할 때 까지 그녀는 처녀였다. 시집와서도 고생은 계속 됐다. 시아버지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밭일을 나갔다. 임신을 하면 출산 진통이 올 때까지 일했다. 아이는 산파없이 혼자 낳고 탯줄 끊고 피 닦는 일도 스스로했다. 그리고는 다시 일을 나갔다. 긴 가뭄에 먹을 것이 부족하자 아이들을 데리고 구걸을 나갔다. 이 때 낳은 아이는 어차피 굶어 죽을 터, 오란은 매정하게 아기의 숨통을 막아 버렸다. 부자가 되어도 그녀의 팔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왕룽이 색에 빠져 첩을 들여온 것이다. 우직하게 평생 일만 하다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오란은 눈을 감았다. 

오란에게는 두꺼비, 원님, 용왕님, 임금님 그 누구도 없었다. 희생의 대가는 잘 짠 관과 양지바른 무덤뿐이었다.(아니 아무도 오란의 삶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첩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오란이, 고생 끝에 낙이 아니라 고생 끝에 죽음을 맞은 오란의 삶이 가슴을 후벼팠다. 왜 오란은 콩쥐가 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콩쥐는 가짜고 오란은 진짜라서 그렇다. 세상일은 '인과응보'로 돌아가지 않는다. 콩쥐처럼 희생한다고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희생을 기대할 것이다. 그 사람은 '원래'그런 사람이니까 말이다. (우사인 볼트에게 1등을 기대하듯 양보잘하는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건 자연스런 것이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죄를 범했느냐보다 누가 죄를 범했느냐가 더 중요한 사회에서 '인과응보'는 별 쓸모가 없다.(우리 사회는 그렇다. 이건희의 배임과 나의 배임은 다르니까)  

그럼 이런 세상에서 어찌하나. 오란의 삶에서 찾은 유일한 위안은 오란이 자기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녀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갔다. 아기를 죽였고 아들에게 도둑질을 부추겼고 딸을 팔려고 했지만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충실히 살았다. 어릴 적 자신을 괴롭혔던 황 대감의 첩 두쳉이나, 왕룽의 첩 롄화를 보면서  

   
  이봐, 너는 황 영감의 시중을 들고 있었고, 예쁘다고 유세가 대단했었지. 그렇지만 나는 떳떳하게 남편을 섬기며 자식을 여럿 낳았어. 한데 넌 여태까지 종 신세를 면치 못했구나.  
   

 이렇게 말하는 오란의 마음 속에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누울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를 믿고 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콩쥐보다 오란이 내 가슴을 파고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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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들르는이웃 2012-07-10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리뷰는 정말 좋군요. 콩쥐와 오란의 대비. 저도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