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 키드 - 소비에 탐닉하는 아이들
애그니스 네언. 에드 메이오 지음, 노승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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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6학년 음악 시간에 ‘섬집 아기’로 가창시험을 봤다. 노래를 부르면서 말도 안 되는 가사에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아기를 혼자 집에 남겨두고 엄마가 섬그늘에 굴을 따러 갈 수 있는지. 그만큼 엄마가 바빴던 걸까. 대신 아기를 봐 줄 사람이 없었던 걸까. 아마도 그만큼 범죄가 없고 안전했다는 뜻일 게다. 혼자 집 보던 아기는 걸음마를 떼면 곧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놀이를 나간다. 엄마는 이제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조바심치며 모랫길을 달려오지 않아도 된다.

 

요즘 엄마들도 직장일 하느라 밖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아이는 혼자서 집을 지키지 않는다. 여러 학원을 거쳐 집에 오면 할머니나 도우미 아주머니가 아이를 반긴다. 물론 엄마들도 아이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인다. 엄마들은 아이 손에 휴대전화를 안겨주고 수시로 통화를 하고 위치 추적시스템으로 아이의 안녕을 파악한다. 나타나야할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큰일이다. 위험한 세상, 어떤 함정이 아이를 노리를 있는지 알 수 없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밖에서의 놀이가 금지된 아이들에게 놀이가 허용된 공간은 집 안이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미안한 부모들은 업그레이드 된 휴대 전화나 게임기, 개인용 PC, 브랜드 옷을 사주어 아이가 삶에 만족하도록 만든다. 여중생 98%, 남중생 90%가 휴대 전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6세가 되면 개인용 컴퓨터가 생기고 평균 3시간 이상 인터넷을 한다. 그들은 각종 스크린을 통해 친구를 사귀고, 친구와 게임하고, 정보를 얻고, 물건을 구입한다. 더 이상 테니스 체로 테니스를 치지 않고, 승마에는 말이 필요 없다. 집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집 안에 갇힌 아니 스크린에 갇힌 아이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집 밖에서의 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집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범죄가 등장했다. 얼마 전 게임 레벨을 높이기 위해 집요하게 문자를 보내 친구를 자살에 이르게 한 대구중학생자살사건처럼 통신을 이용해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많아졌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특정인의 허점을 비방하고 놀림감으로 삼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불링(Cyber bulllying)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스크린 안에서 청소년을 노리는 건 비단 친구들만이 아니다. 「컨슈머 키드」에서 말하는 오늘 날 아이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해 상품을 파는 마케팅 및 광고다. 영국에서 어린이 시장의 전체 규모는 991억 2000만 파운드나 된다고 한다. 어린이 시장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기업들은 아이들이 상당 시간을 보내는 TV, 인터넷을 통해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문제는 어른을 설득해 아이에게 물건을 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자극해 부모에게 떼를 쓰는 방법으로 소비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쉽게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은 이성적 사고 과정이 어른보다 훨씬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들은 아이들에게 제품의 장점을 알리는 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쪽으로 광고를 만든다. 한 마디로 이성이 아니라 정서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A집단에게 펩시콜라를 마시는 2분짜리 영상을 보여주고 B집단에게 다른 영상을 보여준 후 아이들을 불러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가운데 하나를 골라 마시게 했더니 62%가 펩시를 선택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펩시 판매량은 25%다. 코카콜라가 75%.

 

인터넷과 쇼핑에 중독된 아이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것이 저자가 갖는 궁극적인 문제의식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물질로 만족을 얻기는 어렵다. 이는 실망과 좌절을 불러오고 곧 우울증과 폭력성, 반사회적 공격성을 키워 아이들을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해 저자는 ‘기업가 정신’, ‘공감력’, ‘적응력’을 제시한다. 한 마디로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고 돈이 아니라 꿈을 좇고 그 꿈은 ‘나’가 아니라 ‘우리’를 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량 식품을 불매운동하고 공정무역을 장려해 지구촌의 타자를 배려하고, 돈이 아니라 호기심과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고, 어린이 대표로 선출된 지역 구청장이 주어진 예산을 어린이를 위해 쓰는 사례들은 어린이들이 시장의 주객을 전도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가 이미 말했듯 스크린에 장시간 노출되고, 물질적인 것에서 만족을 얻고, 부가 인생의 목표이며, 더 많이 갖기를 원하며, 더 비만이 되기 쉬운 아이들은 저소득층의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값이 싸고 달콤하면 건강에는 해롭더라도 손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미국에서 저질 가공육을 만드는 한 기업의 간부는 “소비자가 유기농을 원하면 자신들은 유기농을 생산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 바꾸고 싶다면 소비자가 바꿔라.”고 말했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변화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쪽은 저소득층이며 이는 그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들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변화는 계층을 더욱 확고히 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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