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후'라는 주제로 글을 한 편 썼다. 눈 앞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해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태도를 꼬집고자 했다. 2014년 수능 개편안이나 대학교 과 통폐합을 예로 들었다. 수능 개편안에 따르면 사탐과목 11과목을 6과목으로 줄이고 그 중 1과목만 택해 수능을 본다. 과목 수를 줄여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탐을 1과목만 본다면 사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수능 과목 위주로 공부하는 학생은 치러야 할 과목만 공부할 가망성이 높다. 그러면 사탐과목에 흥미를 느끼기가 더 어려워진다. 대학에서 사탐과 연계되는 과에 진학할 확률도 낮아진다. 대학에서 비인기과를 통폐합하는 것도 문제다. 비인기과목은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정도가 될 것이다. 일부 대학은 당장 취업률이 높은 과의 인워수를 늘리고, 아예 대학에서 취업준비를 시키겠다고 나선 모양이다. 대학이 취업자 양성소는 아니다. 취업 문제는 정부에서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대학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방안들이 너무나 근시안적이라는 점이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탄탄해야 실용학문도 발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만들지 않았다면 핵폭탄은 없었을 것이다. 인문학으로 세상과 나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상상력, 창작력이 발전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사회나 개인을 만들기 위한 시도도 없을 것이다. 중국이나 미국은 기초과학에 앞 다투며 투자하려고 한다는데 한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한다고 비난받고 있다.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면 졸속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청년취업률을 높이려면 쓸데없는 인문학보다 실용학문에 더 투자해야 한다. 당장 학생들이 힘들다는데 과목 수도 팍팍 줄여줘야 한다. 어디 10년 후를 내다보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일이 불투명한데 10년 후를 공약해서 누구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가짐은 아닌지. 7,4,7 정책처럼 공약은 화끈하게 수치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인문학이 없는 '공정한 사회'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라고, 썼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남의 서재를 들락달락하며 시간을 보냈다. 길고, 어려워 보이는 글, 왠지 읽어두면 좋을 것 같은 남의 글을 읽었다. 한 문단,, 두 문단,, 그리고 제일 밑으로 내려가 추천 횟수를 확인한다. 댓글을 읽어본다. 스크롤바를 내리고 다음 글을 읽는다. 제목 확인, 책과 저자 확인,, 한 문단,, 두 문단 ,, 제일 밑으로 내려가 추천 횟수를 확인하고 댓글을 읽는다. 글쓴이는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추천 수가 많다고 잘 쓴 글은 아니겠지만 나도 모르게 추천 횟수가 높으면 눈이 간다. 남이 공들여 썼을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대충 훑어 내리고 댓글로 글쓴이의 됨됨이를 평가한다. 아, 이 얼마나 성과주의적이며, 근시안적인가. 내가 바로 4대강 가서 삽질할 사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