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동물에게서 인간 사회를 읽다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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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는 번지르르한 자기도취적인 주장 아래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기억한다면 여전히 인간이 자연을 포함, 만물을 향해 나는 너희들의 영장이다라면서 군림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특히 자신의 지적 능력을 특별히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이 하는 행동이나 보여주는 감정은 본능에 불과하다라고 치부하고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동물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그러한 근거없는 자아도취를 동물들, 특히 우리 종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영장류의 예를 들어 조목조목 반격한다. 동물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과거의 경험을 인지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며 공감, 감사, 용서, 애도 등 사회적 유대를 증명하는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만이 사회적 동물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러한 증명은 오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개인적으로는 관찰과 실험의 에피소드들이 특별히 흥미로웠다. 얀과 마마가 나눈 마지막 포옹이랄지, 카위프의 젖병 수유 학습,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반응하는 방식, 동료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애도하는 모습, 동료들끼리의 싸움을 중재하는 행위, 서로의 상태에 공감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방식 등에 관한 증명들은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영장류와 인간이 공유하는 이러한 생물학적 본질의 유사성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길을 보여준다. 동물을 감정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감정은 행동을 촉발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위험으로부터 달아나거나 숨는 행위를 유도하고 이는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는데 유리하다. 동물과 인간이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경험'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고루한 오만감을 떨쳐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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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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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시리즈물인 경우, 작가가 탄생시킨 캐릭터가 있기 마련이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이나 포와로랄지 그런 인물들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도 그런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 바로 '가가 형사'이다. 이번 작품이 가가 형사 시리즈 중 열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작품을 모두 읽은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기 전부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츤데레 매력이 있는 가가 형사를 이 책을 마지막으로 놓아주어야 하다니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랄까.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가가 형사의 개인적인 가정사가 사건과 얽히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약 2년여전에 읽었던 <기린의 날개>에서 언급되었던 가가 형사의 철학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건의 해결이란 범인을 잡는 것만이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번에도 역시 사건은 30여년전의 사건과 맞닿아있고 가가 형사는 오래전부터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이번에는 그 자신의 과거가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여느 살인 사건이 그렇듯,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암울하다. 사건 속에 제 아무리 사연이 숨어있다 한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쉽사리 용서받지 못한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는 인간의 마음을 다독이는 스토리가 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밝혀내는 것이 가가 형사의 몫이다. 특히 이번에는 가가 형사의 개인사, 즉 어머니와 관련된 부분이 많아 가가 형사의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철학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짐작케 한다.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아쉽긴 하지만 본청 수사1과로 돌아온다고 하니 어쩐지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작은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가가 형사의 팬이라면 마지막 작품을 절대 놓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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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하지 않을 권리 - 당신의 관심을 은근슬쩍 사고파는 광고 산업에 대항할 유일한 방법
팀 우 지음, 안진환 옮김 / 알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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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원제는 The Attention Merchants, 주의력 사업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의력을 사고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광고를 들 수 있는데,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중간중간 가장 클라이맥스 때 프로그램의 흐름을 끊으면서 등장하는 광고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 무조건 볼 수 밖에 없는 광고,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포털 창을 열거나 뉴스를 보기 위해 클릭 하나 했을 뿐인데, 온갖 팝업 광고가 우후죽순으로 화면을 점령하고 심지어 광고를 닫으려고 하면 움직이는 화면 탓에 엉뚱하게도 광고를 클릭해버리게 된다. 게다가 이메일은 어떤가. 우리의 개인정보가 어디서 샜는지 모르게 스팸메일이 잔뜩 들어와있고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동의해버린 사이트의 광고메일이 수두룩하다.

 

   이 책은 이러한 주의력 사업이 어제 오늘 생겨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두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자발적 군대입대를 유도하는 국가가 만들어낸 전쟁의지라던지 날조된 여론 등도 주의력 사업에 해당하며 최초의 주의력 사업은 무려 1833년 '하루의 모든 뉴스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광고를 위한 유리한 매체를 제공하려는 것'을 창간취지로 삼았던 <뉴욕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낚시(클릭베이트)'라는 말이 있다. 낚시꾼이 미끼를 던져 물고기를 낚아 올리듯, 주의력 사업가는 우리의 미끼를 던져 우리의 주의력을 낚아 사고판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주의력을 파는 이 엄청난 사업은 그 형태를 끊임없이 진화해가며 여전히 성행 중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광고로 인해 알게 된 좋은 상품도 있을 수 있고 주의력 사업가들이 벌어들이는 광고수익 덕분에 양질의 컨텐츠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의력을 소유주인 우리도 모르게 사고 팔거나 그것도 모자라 그러한 사업이 우리를 짜증나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주목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한때 가히 혁명이라 일컬으며 등장했던 웹이 이제는 '상업적 쓰레기'들에 밟혀 피로함을 느끼는 공간이 되었고 콘텐츠들 역시 주의력 사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예전에는 사업가에 한정되었던 주의력 사업의 경계가 일반 개인으로까지 확장되어 유투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소위 나르시스트들이 등장하면서 더더욱 개인의 의지력이 중요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되찾기 프로젝트'라고 말하면서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 인류가 보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인적 자산은 우리의 의식과 정신공간'이 될거라고 지적한다. 이미 '플러그 뽑기'나 '디지털 안식일'처럼 우리의 주의력을 더 이상 뺏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결심이 행동으로 나타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 업무가 컴퓨터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주의력 사업가들의 미끼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온라인으로 물건 하나 주문하려다 몇시간동안 여기저기 웹사이트들을 무기력하게 돌아다닌 적이 있거나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날씨나 확인하자 했다가 이런저런 의미없는 기사들로 수면 시간을 뺏겼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어려울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나의 경험은 내가 주의를 기울이기로 동의한 모든 것이다.

 

   처음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던 말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우리의 삶에서 경험이란 그 대상이 무엇이었든,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이든 무의식적으로 그랬든 우리가 주의를 기울였던 모든 것의 총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의 주의력을 우리가 원하지 않은 곳에 내어주는 것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주의력 사업가들에게 내어준다는 뜻이다. 내 인생이 나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면 '주목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주의력 사업의 그 기나긴 역사와 교묘한 수법들의 진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우리의 주의력을 갈취당해 왔는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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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 예술을 부정한 예술가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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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대 미술은 나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관심의 아주 가장자리에 있다.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 이전의 미술을 더 편애하는 것이라고 해두자. 그래서 '마르셀 뒤샹'하면 다다이즘의 창시자 내지는 선구자, 그리고 그 유명한 레디메이드 작품, <샘>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단세포보다 못한 정보만 떠오를 뿐이다. 현대 미술 전체를 보려고 했다면 아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셀 뒤샹, 이 한사람만 보자는 생각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더라.

 

   결론은, 와, 이 사람 대단하구나!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지와는 별개로 그가 가졌던 미술과 미술품에 대한 일관된 철학과 인기에 편승하지 않은 초월적인 태도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인인 뒤샹이 미국으로 오게 된 건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유럽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항과 예술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잘난 전통주의와 유럽 예술가들의 기득권 싸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 모방하기에 급급했던 미국 미술의 독립을 이끈 사람이 뒤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뒤샹이 미국 미술계에 이루어놓은 업적은 눈부시다.

 

   예술가는 천재가 아니고 누구라도 미술 행위를 할 수 있으며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뒤샹의 생각은 레디메이드 작품의 탄생으로 구체화된다. 하지만 '무관심한 마음으로 미학적 감성을 가지지 않은 채 사물을 바라보아야' 하고 '레디메이드를 선정할 경우 시각적 무관심으로' 해야한다는 뒤샹의 의도는 결국 전시된 레디메이드가 미술작품처럼 '존경을 받으며 응시'되어버리는 바람에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샹의 미술품에 대한 일관된 철학은 현대 미술, 특히 미국 미술의 근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인인 뒤샹이 정작 자국에서는 예술가보다는 체스 선수로 알려지고 미국에서는 다다이즘의 창시자라는 멋진 타이틀을 가졌다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말이다. 이 정도 되면 프랑스는 좀 배가 아프지 않을까?

 

   여전히 나에게 뒤샹의 작품은 어렵고 그 제목의 무의미함은 이해불가이며 레디메이드 작품은 좋아하기 어렵다. 하지만 뒤샹을 현대 미술 역사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책이 정말 잘 쓰여졌다. 난해할 법도 한 현대 미술이 이렇게 쉽게 읽히다니, 정말 감탄!

 

파리와 유럽에서는 어느 시대에서라도 젊은이들은 늘 자신들을 어떤 위대한 사람들의 손자쯤으로 생각한다. 프랑스의 젋은이들은 자신들이 빅토르 위고의 손자들이라 생각하고 영국의 젊은이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손자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회의 조직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산출하려고 하더라도 파괴할 수 없는 전통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이 미국에는 없다. 당신은 셰익스피어 따위에 관심이 없지 않느냐? 당신에게는 그의 손자란 느낌이 전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진전시키기에 이곳보다 더 훌륭한 곳은 없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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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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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테마로 기획된 arte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첫번째로 선택한 책이다. 우리시대 대표작가 100인이 선택한 내 인생의 거장을 선택해서 책을 쓰는 것인데 지금까지 열몇권 나왔나 그랬던 듯. 물론 저자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만큼 지식도 깊어야 할테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할테니 어느 정도 내용의 충실함이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뭉크>가 너무 좋아서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뭉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절규'일 것이다. 그 이외에도 아픈아이, 마돈나, 뱀파이어 같은 그림들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뭉크의 그림을 실제로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 뭉크의 그림은 대부분이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과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다. 뭉크가 말년에 거의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선택한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웨이가 나치의 침공을 받았을 때, 자신의 그림들이 몰수되거나 강제 처분될 것이 두려워 오슬로 시에 자신의 모든 작품과 소유물을 기증한다는 유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뭉크가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의존했던 누나도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어 뭉크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는데, 이 책을 통해 뭉크의 전 생애를 되짚어보니 그의 예술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예술가들이 살아 생전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뭉크는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75세까지 살면서 물론 고국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절도 있기는 했지만 당시 북유럽의 유명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명성도 얻고 부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개인적인 삶을 보자면 사랑이랄지 가족이랄지, 이런 쪽으로는 운이 좋지 못했지만 그 둘 다 못가진 예술가들도 많았으니까.

 

   뭉크는 꽤나 다작을 한 화가이고 같은 주제로 여러 버전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판화로 제작하기도 해서 남아있는 작품들이 풍성하다. 게다가 뭉크는 그림만 그린게 아니고 글까지 쓰는 화가였다. 뭉크의 노트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글들 안에서 뭉크 그림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는데, 저자는 뭉크가 쓴 감정의 편린들이 담긴 글들과 그림들을 엮어서 왜 뭉크가 그런 그림들을 그리게 되었는지 혹은 그 그림을 그릴 당시 어떤 감정이었을지에 대한 힌트를 담아내어 독자들이 뭉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그림 이외의 시각적 자료들도 풍부해서 뭉크를 만나기 원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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