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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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범죄'는 꽤나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다. 비싼 예술품들을 둘러싼 도난 사건이나 사기 행각이 많아서인지, 둘 다 어딘지 지하 세계의 음침한 면이 있어서인지, 예술가들의 기행적인 행동들이 생각나서인지, 아뭏튼 예술은 느와르 장르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무대는 온갖 예술품의 전시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화랑 밀집지역인 뉴욕의 소호. 소호는 원래 공장, 창고 지구였던 곳인데 가난한 예술가들이 불법으로 거주하다가 로프트라는 이름의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예술가들이 생활도 하고 작품도 제작하면서 발전하게 된 지역이다. 소호의 태생이 그러하다보니 그곳을 중심으로 한 예술계의 실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모든 예술 작품은 저지르지 않는 범죄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 (책에서 재인용)

 

   책의 첫장에서 존재감을 자랑하는 문장인데, 소설 속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추잡한 일들과 예술가를 자처하고 그들의 작품을 포장하는 딜러들의 민낯을 제대로 표현해주는 경구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은 예술계를 좌지우지하는 역대급 미술품 컬렉터 부부인 필과 맨디의 신상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전개된다. 부인인 맨디가 머리에 두발의 총알을 맞아 얼굴이 날아간 채로 자신의 집에서 발견된 것. 그리고 뒤이어 남편인 필이 기억은 안나지만 자신이 부인을 죽인 것 같다며 자백을 해온 것이다. 필은 최근 들어 뇌질환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진다. 필과 맨디 부부와 절친이며 소호에서 유명한 미술품 딜러로 활약하며 부동산 중개업자이기도 한 잭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서술된다.

 

   자백으로 명백한 용의자가 된 필이 진짜 살인자일까, 아니면 최근 필의 젊은 애인인 클라우디아일까. 그것도 아니면 필이 맨디와 결혼할 때 버림받은 전 부인 앤젤라일까. 혹은 앤젤라의 애인이었던 폴 모스일까. 살인의 동기가 있을 법한 모든 이들이 의심받는다. 작가는 독자들을 혼란케 만드는 떡밥을 여기저기에 뿌려놓는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떡밥은 하나씩 수거되지만 마지막장까지 반전이 있으니 방심하지 마시라. 각종 예술기관에서 큐레이팅을 하고 예술매거진에 기고를 한 경력이 있고 현재 미술 매거진인 <아트 인 아메리카>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첫번째 소설이라는 타이틀로부터 오는 기대감을 뛰어넘은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한가지 거슬렸던 부분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천장에 그려져 있다고 나온다. 원작을 보지 않아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최후의 심판>은 천장이 아니라 시스티나 예배당 벽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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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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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난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탄생시킨 오토 펜즐러는 미스터리 소설의 편집자로 명성이 자자한 모양이다. 1979년에 맨해튼에 '미스터리 서점'이라고 불리는 작은 서점을 열었는데 여느 작은 서점들과 마찬가지로 대형서점들과 아마존 같은 거인들에 밀려 위기에 처한 서점을 살리고자 친한 작가들에게 '미스터리 요소를 포함하고,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이며, 공간적 배경은 미스터리 서점'인 짧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해서 크리스마스 당일 서점을 찾은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다고 한다. 암튼 이 짧은 이야기들을 묶어서 출간한 책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라는 작품이고 아마도 이분은 크리스마스와 미스터리의 조합을 너무나 사랑했던 나머지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를 모아서 출간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이 책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이다. 원래는 한권의 책인데 그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한국어판은 작년과 올해에 나누어 출간하기로 하였는데, 내가 좀 전에 읽기를 끝낸 이 책이 작년에 나온 것이고 올해 크리스마스에 나머지 한권이 나온다고 하니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괜시리 기다리게 된다.

 

   서론이 길었는데, 제목 그대로 여러 작가들이 쓴 크리스마스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작품 모음집인데, 매우 고전적인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요즘 세대가 보면 싱겁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나름 추억돋는 그런 이야기들 많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평소에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도 많아서 의외의 발견이기도 하다. 어떤 작품은 웃음을 자아내고 어떤 작품은 찡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기발한 착상(셜록 홈즈를 패러디한 헐록 숌즈가 나온다)이 돋보이기도 한다.

 

   미스터리는 더운 여름에 읽어야 오싹하는 맛이 있어 제격이라고 하는데, 배경이 눈이 펑펑 오고 얼음이 꽁꽁 어는 하지만 마음은 따뜻해지는 크리스마스까지 덤으로 주어지니 이야기가 훨씬 살아나는 듯 하다. 실제 크리스마스에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미스터리물을 읽는 전통을 지닌 가족이 있다고 하니, 크리스마스와 미스터리는 예전부터 찰떡 궁합이었던 모양이다. 자극적이거나 엄청난 두뇌 회전이 필요하다거나하는 스릴은 없지만 옆에 두고 한편 한편씩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 그런 작품들이니 좀 이른감은 있지만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두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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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섬
리사 시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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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제주의 해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대적 배경은 2008년 85세가 된 해녀 영숙의 회상으로 1938년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서 45년 해방을 거쳐 제주 4.3 사건과 6.25 전쟁, 그리고 이후 6,70년대를 관통하여 제주의 근,현대사를 더듬는다. 그런데 가만보니 작가가 외국인이다. 작년 언젠가 읽었던 <하얀 국화>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하얀 국화> 역시 외국인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하얀 국화>가 자매의 삶을 통해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남아있는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라면 <해녀들의 섬>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이나 육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해녀들의 삶과 또 하나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에 얽힌 분노와 용서, 그리고 이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겉으로는 영숙과 미자가 중심이 되어 우정과 증오 그리고 용서와 화해에 촛점을 맞춘 다소 개인적인 인연을 그린 듯 하지만, 실은 그 두 사람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어 지금은 과거로만 남아있는 당시 모계 중심이던 제주 해녀들의 역할과 위상을 기억하고 해녀 공동체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오랜 전통과 토속신앙에 대한 존경을 되살리며, 같은 민족에게 자행했던 극도로 잔인했던 역사의 생채기를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냥 살아있으려고 애쓰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위로와 애도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배상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다 p510

 

   오랜 세월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던 일들이 한순간에 이해되고 용서될 리는 없다. 영숙이 오랫동안 담고 있던 분노와 상처는 여러 세대를 거치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거의 한세기동안 비극을 숙명처럼 안고가는 영숙의 삶을 통해 최근까지도 지배 세력에 의해 감추어졌던 진실을 우리는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한 비극이 이해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채 망각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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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홍차 구매가이드 - 꼭 마셔봐야 할 명품 브랜드 홍차 80가지 실용의 재발견 (글항아리) 4
문기영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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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만큼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홍차도 꽤나 오래전부터 좋아해서 각 나라의 나름 유명하다는 브랜드의 홍차는 많이 마셔본 편이다. 하지만 커피이건 홍차이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접근할 기회는 별로 없어서 그저 내 입맛에 맞는 브랜드나 제품을 찾는 편인데 뭐든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맛있다라는 건 불변의 진리인지라 하나를 사더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책이다.

 

   홍차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저자는 이 바닥(?)에서 유명한 브랜드의 대표적 홍차 80가지를 선별해서 홍차의 맛과 향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였다. 물론 테이스팅이라는게 다분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와인의 테이스팅에 원칙이 있는 것처럼 티 테이스팅에도 원칙이 있다고 한다. 우선은 티의 외형, 즉 건조된 티의 모양이나 크기, 색 등을 통해 티가 언제 어떤 식으로 재배되고 가공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 티를 우려냈을 때의 수색과 향, 맛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마지막으로는 엽저, 즉 차를 우리고 난 뒤의 찻잎을 통해 찻잎의 종류나 상태, 산화 정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 우려낸 차와 엽저를 촬영한 사진들과 저자가 직접 방문한 다원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어 글만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와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각 종류별로 대표 브랜드들의 차가 소개되어 있어 자신이 마셔 본 브랜드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다음에 차를 구입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되기도 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쉬어가기 코너에서는 차에 관한 토막 역사나 상식 등이 담겨있어 단순한 실용서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차에 관한 다양한 용어들을 알게 되어 앞으로 차를 구입할 때 내가 좋아하는 차의 스타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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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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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만지면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던 탐욕스런 왕 마이더스의 손을 말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무엇이든 손만 대면 황금으로 변하니 신이 났을게다. 하지만 결국 음식을 만져도 금이 되고 무엇이든 몸에 닿기만 하면 금이 되어버리니 굶어죽을 수 밖에. 지구상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모든 동,식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생하거나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졌을 것이다. 즉 인간이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자연은 그 위대한 힘으로 탄생과 멸종의 순환을 반복하면서 살게끔 되었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이 손을 대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마치 황금처럼 인간에게 귀중한 존재로 여겨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탐욕이 더해지다 보면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가 되고 마는 자연 속 존재들이 있는데 이 책은 역사 속에서 탐욕스런 인간으로 인해 흑역사를 지니게 된 그러한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감자나 토마토 등 다행히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하지 않았던 식물들도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무자비한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후추, 잔인한 노예무역을 촉발한 사탕수수나 목화, 한 나라의 국민들을 아편쟁이로 만들어 놓은 차, 거품경제로 온 국민을 길거리로 나앉게 만든 튤립 등, 황금을 탐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던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양파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 듣는 지라 흥미로웠다. 양파의 역사가 인류 역사와 맞먹을 정도로 오래되었다고 한다. 실제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양파를 제공했다고 하는데 피라미드 부조에서 허리에 양파를 매달고 일하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니 양파의 생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대부분이 많이 알려진 이야기들인데다 깊이 있게 다루는 방식이 아니다보니 가벼운 교양서적 정도로 생각하면 괜찮을 듯 하다. 저자가 식물학자이다보니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개별 식물에 관한 소소한 깨알 정보들도 담겨있어 교양 과학서로 읽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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