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 살인 사건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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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스토리가 주인공이 아니다. 스토리는 어쩌면 많이 들어봤을 법한 범죄 이야기.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던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직원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떠나온지 오래인 고향의 주민들과 심지어는 부모까지 용의자에 대해 호의적인 것 같지 않다. 주변인들의 증언과 정황은 점점 용의자가 범인임을 나타내는데 정작 용의자는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범죄소설과 달리 이 작품에는 혜성처럼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나 신적인 추리력과 예지력으로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누군가가 없다. 작가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의 자극과 특종에 집착하는 행태, 사건과 피해자 및 용의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기억과 진실 사이의 간극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 보았던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연상시키는 너가 기억하는 일과 내가 기억하는 일 사이의 엄청난 차이와 과연 진실은 너가 기억하는 것일지, 내가 기억하는 것일지 확신하기 어려운 과거의 조각들이 독자를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는 자극적인 가십 만들기에만 급급한 주간지의 악마의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친구의 카더라 소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드는 천박한 기사를 퍼뜨리고 용의자로 몰린 사람의 친구들이 보내는 항의 편지조차 교묘한 가위질을 해대는 언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아무말 대잔치를 여과없이 날리는 SNS 관심종자들, 자신의 기억에 대한 불완전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뿐더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그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는 인간의 교활한 이중성 등, 이 책은 인간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고발로 가득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처는 어떻게 생기기 시작하는지, 왜 어떤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결국 큰 일이 생기고 마는건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스토리의 개연성등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스토리에 대한 비중이 크지 않은데다 가독성이 좋아 그다지 흠이 되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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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읽는 시간 - 처음 만나는 고양이 세계문학 단편
에드위나 스탠턴 밥코크 외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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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묘가라면 솔깃할 책이 등장했다. 12명의 작가가 쓴 고양이에 관한 세계문학 단편 27편을 모아놓은 바로 이 책! 평소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 존재했던 작가들이 쓴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들은 장편 못지 않게 흥미진진했다. 흔히 고양이를 돌보는 인간을 집사라고 하는데, 그만큼 고양이는 도도하고 위풍당당하고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존재처럼 여겨지는데, 작품 속 고양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작품들을 읽다보면 고양이들 역시 어딘지 어리숙할 때도 있고 늘 따뜻한 곳이나 풍족한 음식이 존재하는 인간들 옆에만 있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며 나름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니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들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작가들 역시 고양이를 통해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애묘가로 유명한 작가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애묘가라고 해서 고양이들을 마냥 고고하고 예쁜 존재로만 그리지는 않았기에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탄생한 듯 하다.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수준에 가까운 호러물도 한편 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관한 몇편의 이야기들은 고양이라는 존재가 사랑받는 존재임과 동시에 신비롭거나 요물에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발자크나 마크 트웨인, 에밀 졸라 등 널리 알려져있는 작가들이 쓴 고양이에 관한 단편들도 의외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지만, 처음 접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견한 예상치 못한 위트나 뜻밖의 재미가 작가들의 다른 작품에 대한 탐구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모두 좋았지만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은 우드하우스의 작품 네편과 에드위나의 '어느 고양이의 일기 중에서', 그리고 데이몬 러니온의 '릴리안', 러브크래프트의 '율타르의 고양이들'이다.  이 책과 같이 구입한 <개를 읽는 시간> 역시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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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주시대
네이선 로웰 지음, 이수현 옮김 / 구픽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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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현재까지 여섯 편이 발표된 <태양 범선과 무역상 이야기>의 첫번째 작품으로 원제는 'Quarter Share', 즉 반의 반 명 몫이라는 뜻이다. 반의 반 명 몫이란 우주선에 탑승하는 특별한 재주가 없는 초보선원의 역할을 지칭하는 것으로 임금도 보너스도 반의 반 명 몫만 받게 된다. 그러다가 경력이 쌓이고 승진을 하게 되면, 반 명 몫, 한 명 몫 등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태양 범선과 무역상 이야기> 여섯편의 원제가 바로 Quarter Share, Half Share, Full Share, Double Share, Captain's Share, 그리고 Owner's Share이다. 2007년도에 첫 작품이 나왔음에도 우리나라에는 이제야 첫번째 권이 번역되었고 나머지는 언제 번역될지 몰라 안타깝다. 시리즈를 다 읽고 리뷰를 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이 소설은 SF임에도 (일단 첫번째 작품에서는) 기존의 SF 장르의 단골로 등장하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전쟁이랄지, 지구의 멸망에 관한 우울한 서사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인류는 우주의 삶에 적응하고 있고 행성과 행성 사이를 운행하는 범선의 대우주 무역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떤 행성에는 흔하디 흔한 물품이 다른 행성에서는 값비싼 물품으로 취급받고 우주선의 공식 무역 뿐 아니라 우주선 선원들에게 직급에 따라 다르게 할당된 질량의 범위 안에서 암암리에 허용된 개인 무역 이야기까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엄마와 함께 엄마가 적을 둔 회사 네리스의 행성에서 살던 이스마엘은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더 이상 회사 행성에 있을 수 없게 되어 어떻게 해서든 행성 밖으로 나가는 배를 타야하는데 배를 타는데 드는 비용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돈보다 많이 든다는 것을 알게된다. 즉 배를 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행성에 그대로 머물게 되면 가장 가까운 비회사 행성으로 강제 송환되는데, 그 모든 비용은 이스마엘의 빚으로 남는다. 이스마엘에게 남은 선택은 군에 입대하거나 무역선과 계약을 맺는 것인데, 군에 가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아무 재주가 없던 이스마엘이 무역선과 과연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익숙하지 않은 무역 용어들과 비현실적인 우주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스마엘의 우주선에서의 행보 역시 우리가 흔히 '모범생'이라는 정의의 범주안에 넣을만한 그런 캐릭터의 성향이라 읽다보면 약간은 우연의 연속으로 인한 지루함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건 겨우 1권이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어서 나머지가 모두 번역 출간되어 이야기 전체를 읽고 리뷰를 쓰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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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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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혜'라는 이름 석자를 알지 못했다면, 집어들지 않았을법한 책이지만 뭐, 가끔은 나의 취향을 벗어난 책들에서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으니 다양한 책 읽기의 일환이라고 해두자. <씨네21>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이분은 영화 이외에도 문학, 비문학 할 것 없이 책에 관한 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혹은 책이나 영화 같은 문화,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느낀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저자 본인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았던 이야기나 질문들이 페미니즘적 시각 안에서 얼마나 불편한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 안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생각 속에서 '여자'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이야기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스스로도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생각을 왜 못했지? 아..세상에 이건 뭐람..나 역시 여자이면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이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나.. 예를 들어, 저자의 최애 장르라고 말하는 범죄, 스릴러 작품 중 많은 작품이 탐정 혹은 형사는 오로지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하여, 이혼했거나 아니면 거의 이혼 직전이거나 혼자 살거나 하는 설정이고 사건은 꼭 탐정의 아내 혹은 전 아내를 죽이거나 납치하거나 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현재 부인도 아니고 전 부인을 살해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많은 작품에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거나 남자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냥 여자'는 눈 씻고 찾아봐야 한번쯤 보일까, 그것도 여성 감독이나 작가의 작품에서.


   굳이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별 뜻 없이 하는 말 속에도 남성과 여성을 근본에서부터 차별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여자가 그러면 되나...여자라서...밤에 위험하니 일찍 들어와라...왜 가해자는 조심할 필요가 없고 피해자가 조심해야하는걸까. 부모들은 아들들에게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잔소리는 하지 않으면서 왜 딸들에게는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해야하는 세상일까. 단순히 신체적 차이에서 비롯된 관념이라고 하기에는 전적으로 부당하다.


   이 책은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일상 생활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엮기에는 좀 아쉬운 분량과 내용과 정리이다. 그냥 말하듯이 써내려간 개인의 기록 정도의 무게감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꼭 무겁고 진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이야기들과 제대로 된 문장으로 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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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마신 소녀 - 2017년 뉴베리 수상작
켈리 반힐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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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마법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내내 미소 지으며 읽은 책이다. 마법이나 판타지 같은 소설은 보통 아이들이 보는 장르로 취급되지만 아마도 해리포터 이후로 그런 시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렇더라도 주위 사람들을 보면 이런 판타지 소설을 다 큰 어른이 재미있게 읽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딱히 내가 동심이 남아있어서가 아니라 마법이나 판타지의 세계는 현실의 팍팍함을 상쇄시키는 카타르시스 같은게 있어서 마음이 답답할 때 읽기 좋은 장르이지 싶다.


   <달빛 마신 소녀>도 글밥이랄지 책의 내용은 딱 어린이, 많이 봐줘서 청소년용이다. 복잡한 스토리 전개나 꼬아놓은 인물 설정은 거의 없고 에피소드들도 '마법'이라는 효과를 십분 살려 고구마 백만개 이런 거 없이 초고속으로 쭉쭉 진행된다. 보호령이라는 숲과 습지 사이에 끼어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은 마을 장로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의문을 제시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게끔 마녀의 존재를 지어내고 매년 보호령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중 가장 어린아이를 마녀를 달래기 위한 제물로 바친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마녀의 존재를 만들었기 때문에 마녀에게 바쳐진다는 명목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녀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고 매년 버려지는 아이를 거두어 자유도시로 데려가 좋은 가정에 입양시킨다. 숲에 버려진 아기를 자유도시로 데려가는 긴 여정을 매년 수행하는 마녀의 이름은 '잰'. 이미 오백살 먹은 할머니 마녀이다. 아이를 데려가면서 배고픈 아이에게 별빛을 마시게 하는데,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한 아이를 데려가던 잰은 별빛을 먹인다는게 실수로 달빛을 먹이게 된다. 하지만 달빛은 바로 마법으로 가득 찬 존재! 잰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만 이미 달빛을 마셔버린 아이를 인간 세상으로 보낼 수 없어 잰이 자신의 아이로 기르게 된다.


   바로 이 달빛 마신 소녀, 루나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과 슬픔으로 가득 덮힌 보호령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책 속에 주연 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습지 괴물 글럭과 작은 용 피리언의 존재도 이야기에 깨알 재미를 더한다. 마법은 마법으로 읽어야 한다. 루나의 뒤를 쫓아다니며 루나가 흘리고 다니는 파랗고 은색으로 빛나는 마법을 주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책을 펼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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