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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다혜'라는 이름 석자를 알지 못했다면, 집어들지 않았을법한 책이지만 뭐, 가끔은 나의 취향을 벗어난 책들에서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으니 다양한 책 읽기의 일환이라고 해두자. <씨네21>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이분은 영화 이외에도 문학, 비문학 할 것 없이 책에 관한 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혹은 책이나 영화 같은 문화,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느낀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저자 본인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았던 이야기나 질문들이 페미니즘적 시각 안에서 얼마나 불편한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 안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생각 속에서 '여자'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이야기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스스로도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생각을 왜 못했지? 아..세상에 이건 뭐람..나 역시 여자이면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이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나.. 예를 들어, 저자의 최애 장르라고 말하는 범죄, 스릴러 작품 중 많은 작품이 탐정 혹은 형사는 오로지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하여, 이혼했거나 아니면 거의 이혼 직전이거나 혼자 살거나 하는 설정이고 사건은 꼭 탐정의 아내 혹은 전 아내를 죽이거나 납치하거나 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현재 부인도 아니고 전 부인을 살해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많은 작품에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거나 남자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냥 여자'는 눈 씻고 찾아봐야 한번쯤 보일까, 그것도 여성 감독이나 작가의 작품에서.
굳이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별 뜻 없이 하는 말 속에도 남성과 여성을 근본에서부터 차별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여자가 그러면 되나...여자라서...밤에 위험하니 일찍 들어와라...왜 가해자는 조심할 필요가 없고 피해자가 조심해야하는걸까. 부모들은 아들들에게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잔소리는 하지 않으면서 왜 딸들에게는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해야하는 세상일까. 단순히 신체적 차이에서 비롯된 관념이라고 하기에는 전적으로 부당하다.
이 책은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일상 생활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엮기에는 좀 아쉬운 분량과 내용과 정리이다. 그냥 말하듯이 써내려간 개인의 기록 정도의 무게감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꼭 무겁고 진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이야기들과 제대로 된 문장으로 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