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일본 답사단을 모집한다는 이벤트를 보고 바로 책을 주문하고 이벤트에 등록하였다. 나는 보통 어떤 것을 하면 직감이 오는 편이다. 이러한 이벤트에 거의 당첨이 없지만 이번에는 아주강한 직감이 왔다. 등록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잘써다고 자뻑(?)하면서 될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명의 당첨자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일본답사기의 출발신호를 기분좋게 알리고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규슈편>을 읽어보고 그 여정을 따라가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뭐 준비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대충 책을 스킵하고 짐을 챙겨서 아침 6시 모임이라 인천공항까지 가기가 힘들어 하루전날에 공항 스파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모임장소로 향하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라 어느정도 익명성의 비밀스러운 방에 잠시나마 있을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땅에 도착했다. 두 번째 일본방문이라 공항을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나는 적잖게 당황하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버스에 올랐고 본격적인 2박 3일 일본 탐방의 여정길에 올랐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일본의 고고학 유적지 요시노가리였다.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지 이 유적지는 비교적 잘 보전되었고 관광지로도 잘 개발되어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거주 방식 그리고 사람이 죽었을때 시신을 묻는 장례문화도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고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개발되어있었다. 특히 나는 요시노가리 유적지의 장례문화가 인상적이였는데 죽은 시신을 구부려놓고 사람이 들어갈만한 항아리에 넣고 그것을 땅에 묻는 문화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장례문화라고 생각했다. 중동같은 곳은 바위를 뚫어서 그곳에 시신을 넣거나 아미면 돌항아리에 시신의 뼈를 묻기도 하고 중국같은 곳은 땅을 파서 묻기도 하지만 일본처럼 항아리에 사람을 구부려넣고 땅에 집어넣는 것은 이들만의 고유한 장례문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죽은 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들만의 사후에 대한 고유한 사상이 장례문화에 표현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노가리는 역사유적지인 만큼 일반 관광코스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냥 일문의 문화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에 박물관 만큼이나 따분한 곳이 될수도 있었지만 고대문명에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제일 관심이 가는 곳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학술원과 관계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곳을 지키면서 연구하고 또 방문하는 자들에게 설명해주는 것도 좋은 경우라고 느꼈다. 마침 비가와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요시노가리가 하늘을 둘렀고 그 무지개를 감상하는 특권 또한 누렸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상적이였던 곳은 조선시대의 도공들이 잡혀가 그곳에 정착하여 도자기 문화를 주도했던 도조 이삼평이 있던 지역이였다. 이곳은 마을전체가 도자기 마을로 몇 대의 후손에 걸쳐서 도자기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도자기 마을이다. 그곳에는 도공들이 잡혀와서 도자기를 만들때 그들이 흙을 찾기위해서 전국을 헤매다 발견한 토사 지역과 그곳을 중심으로 도자기를 굽던 곳,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마을이 지금도 그 흔적의 여운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도자기 마을답게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들은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자기들이였다. 우리나라에서 몇천원이면 살수 있는 도자기들이 다른 빛과 색을 뽐내며 요염한 자태로 비싼 가격을 부르도록 흥정하는 것만 같았다.

 

마을전체가 아담하고 고즈넉했고 산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음은 마치 사람사이의 담이 없듯이 그렇게 담이 낮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열려있는 마을같았다. 아침에 탐방해서 그런지 사람들을 거의 없었지만 무언가 모르게 몸과 마음의 안식이 느껴지는 잔잔한 곳이였다. 우리 도공들의 눈물과 그곳에서도 자신들의 도자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그들의 진정한 장인정신이 지금도 일본에 살아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문화가 얼마나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들의 근대문화형성에 기초돌이 되었는지 알수 있었고 그러한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일본 도자기의 시조로 불리는 이삼평은 신사에 모셔져 있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존경심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 갔던 텐만궁은 학문을 신을 비롯하여 부엌의 신등, 각종 신들이 있었다. 일본은 어떤 부분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신사로 모시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그들의 영혼에 은덕을 입고자하는 정령숭배적인 신앙이 퍼져 있었다. 짧은 2박 3일의 일정동안 일본의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그렇다고 많은 부분을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몇군데를 돌아보고 그들의 문화를 보고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일본인들의 삶속에 깊이 침투해있는 기본적인 사고의 골격은 정령숭배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고 그들의 공덕에 은덕을 입고자하는 순진한 마음에서 발현된다고 할수 있으나 미신적인 부분으로 그들의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지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이번 답사기간동안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열심히 설명하고 가이드 해주셨던 박인숙 가이드님은 참으로 친절하고도 자세히 우리들을 일본의 문화로 초대해주셨다. 교사출신이였다는 가이드님께서는 참 여성스럽고 단아하며 딱 일본의 여성같은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여린것 같지만 2박 3일 동안에 누구보다도 당차고 열심히 가이드해 주셨던 박인숙 가이드님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약 20명 남짓한 탐방 동행자들에게 2박 3일동안 관계성을 가지기에는 참으로 짧은 시간이였다. 그래도 함께 다녔던 시간동안 조금씩 물들어갈 무렵, 익명성의 구명보트의 수명이 다 할 무렵 서로에게 관심이 생기고 얼굴도 익숙해져 갈때쯤 해산해야 하는 부분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거기서 얼굴과 이름이 조합이 안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물론 여행을 마친 후에 서로 연락하며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는 일부 몇몇의 동료무리들이 생기는 것 같더라. 사람은 언제나 땅을 밟고 살아야 하며 서로 연대하는 것이 어느 나라, 어느 문화이던간에 공통적인 문화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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