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파란만장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래도 평탄한 편은 아니였고,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수성가라고 해봐야 뭔가 거창한 성공이나 부를 누린 것은 아니고 나의 환경에 비해서 반듯하게 그리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초등학교 6학년때 했던 신문돌리는 아르바이트가 가장 처음한 일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친구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신문을 돌렸다. 돈을 벌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냥 일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그 경험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몇가지 장면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때는 상당히 작은 편이였다. 그렇게 작고 이쁘게(?) 생긴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을 돌리는 것이 새벽녘에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는 어른들에게는 참 딱해 보였나보다. 그래서 어떤 가게에서 신문을 돌리면 가만히 있어보라고 하고서는 과자나 먹을 것을 주셨다. 그리고 길거리를 가다가 회사에 출근하는 아저씨들은 남은 신문을 사갔는데 거스름돈은 받지 않으셨다. 어린 나는 그러한 경험이 무척이나 신이 났고 한달치 월급을 받을때는 무척이나 들떠서 떡볶이나 평소에 먹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사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뭏튼 그때 나는 순진했고 사회에 대해서 몰랐지만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뭔가 안타까워하는 듯한 눈빛을 기억하고 있다.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른들은 어린나이에 현실에 내몰린듯해 보이는 어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던 나는 어떤 소속감이 없던 상태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직장을 잡고 돈을 벌고 있는데 나는 뒤쳐진다는 생각, 알바나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진로를 정해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뒤로도 필요한 비용을 벌기위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전국을 돌며 전화기지국에 있는 에어컨을 고치는 일, 우유배달, 식당 서빙, 식당 음식배달, 심지어는 신종 의약품 실험대상이 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나로써는 당연한 일이였지만 코에 튜브를 꽂고 몇일동안이지만 인간 마루타가 된 기분은 이루 말할수 없이 묘상했다. 그길로 그 알바는 그만두었고 대학원을 진학해서도 학비를 벌기위해 이런저런일을 많이 했다.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의 팍팍함은 그때보다 더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워킹 푸어들을 수없이 양산하는 이 사회에서 의식주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어쩌면 안타까운 현실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인간의 조건>을 쓴 저자 한승태는 그러한 생활 전선에서 분투하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자신의 경험을 엮어서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웬지 서글프고 암담한 현실이 느껴졌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누구라도 대수럽지 않게 여겨지는 사람들이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꽂게잡이 배선원이나 양돈장 똥꾼처럼,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날것의 모습들. 그들이 지내는 숙소는 어느정도 크기인지, 여름엔 얼마나 덥고 겨울엔 얼마나 춥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배경과 어떠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저자는 꽂게잡이 선원으로 편의저과 주유소 직워능로 돼지농장 일꾼으로 자동차 부품공장의 공돌이로 일하면서 느낀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일을 경험하고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6장에서 퀴닝(queening)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저자의 가장 중심적인 생각을 들어낸다. 퀴닝은 체스 용어로 졸이 한칸씩 움직여 상대편의 끝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여왕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에 신분상승의 의미로 퀴닝이라고 붙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지가 여왕으로 상승하기를 기대한다. 하루먹고 사는 처지에서 넉넉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우받는 직분으로 상승하기를 꿈꾼다. 저자는 이 사회에서 퀴닝을 꿈꾸는 것은 하나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매일을 달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적인 구조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간간히 퀴닝할 수 없는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인 문제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형편과 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므로 그들 또한 인간적인 삶과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는 소박한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팍팍한 삶은 개인의 노력부족일까 아니면 사회구조의 문제일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던져주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저 음지에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자들을 한번을 돌아보라고 독려한다. 그리고 그들도 퀴닝(queening)을 꿈꿀 수 있도록, 아니 퀴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먹고사는 것. 아마도 인간의 삶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건강한 개인이 설수 없고 건강한 개인이 설 수 없다면 건강한 사회도 설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깝고 퍽퍽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감추어진 아픔이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네 이웃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책이였다. 시장에서 추운데 앉아서 생선을 하나더 팔려는 아주머니, 정류장 옆에서 군밤을 팔면서 고마워하는 아주머니, 지하철 안에서 껌을 팔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분들...그냥 지나칠 타인이 아니라 함께 팍팍한 현실을 돌파해야할 이웃으로 한번 더 시선을 돌아보아야 할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이따위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쓸모없는 놈이라며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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