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봉화 땅 의성 김씨네 집성촌 이란다. 사람이 살지않는 집이 그렇게 쉽게 폐허가 될 줄은 몰랐다. 여러채의 기와 한옥이 어우러져 한껏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뽑내고 있었을 마을인데 사람들이 떠나버리자 알맹이가 빠져나간 허물처럼 만지면 폭삭 주저 앉을 것만 같다. 오, 세월의 무상함이여..

 

내성천 수중보로 놀기 좋은 장소 보러 갔다가 땅벌 집을 밟아 땅벌의 공격을 받고 두다리가 벌집이 되어버렸다. 하도 아파서 죽어라고 뛰어서 집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궁여지책으로 쏘인 곳에 된장을 발랐는데 누가 똥을 거기다 발랐느냐는 바람에 씻어 버리고 그냥 견디기로 했다. 내가 자연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덤볐나 보다. 겸손하게 대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흥분했나 보다.

 

다리 밑에서 멱감고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보니 고향인 김해 덕두 농수로에서 멱감던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물놀이 만큼 흥겹고 즐거운 놀이가 있을까? 찐 계란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아내랑 수중보 벼랑의 절경을 구경하러 갔다.

 

멀리서 보아도 이끼 낀 벼랑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가까이 가니 벼랑아래 자리를 깔고 소풍 온 시골 농부들 한 무리가 먼저 와서 삼겹살을 굽고 있고 두 아낙네가 식사를 마치고 바위를 요 삼아 늘어지게 오수를 즐기고 있다. 더운 여름날 논밭에서의 힘든 일을 마치고 이렇게 쉴 때 그 쉼이 얼마나 달콤할까? 무슨 꽃인지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낙화 중인데도 그 향기가 너무 짙어 어지러울 지경이다. 숲 속에 야생 나리가 함초롬히 피어있다. 벼랑을 이룬 바위를 온통 몇 겹으로 뒤덮은 이끼가 일품이다. 수중보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를 먹고사는듯 싱거러운 푸른빛을 띠고있다. 또 하나 수중보의 사냥꾼 왜가리가 작은 폭포를 이룬 수중보을 타고 오르는 물고기를 노리는듯 제방 위에 서서 참을성 있게 수중보를 주시하고 있다. 이모든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빗줄기가 거세어 지자 물놀이 하다 말고 다리 밑에서 기어 나온 아이들을 싣고 사미정으로 갔다.  모름지기 정자가 있는 곳의 풍경은 좋기 마련이지만 이곳 사미정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물안개 피는 곡류천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가장 적당한 자리에 위치하여 주위 자연에 녹아든듯 어우러진 사미정을 바라보며 우리 선조의 자연을 대하는 혜안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정자 아래에 있는 음식점이 이 절경의 구도를 망쳐 버렸다. 무엇이든 경제의 관념으로 접근하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억수로 퍼붓는 비속에서 자연으로 트인 공간에 마련한 풀천지 특유의 사랑방 스레이트를 잇대어 덮은 지붕에서 비가 샌다. 시골 아낙네와는 거리가 먼듯한 하얀 살결에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사모님이 당귀차를 내어 왔는데 보통 향긋한 내음이 아니다. 손수 재배한 당귀에 산 속의 약수로 끓인 만큼 시중의 차와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터. 거기다가 전연 자연산으로 앞마당의 자두나무에서 딴 자두를 한 광주리 풍성하게 내어와서 그렇지 않아도 자두 좋아하는 하림이 놈이 신바람이 났다.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 봉화로 들어와 농사지으며 산지 6년째 되신다는 풀천지님, 이런 낙원 속의 삶이 있는데 그것도 모른 채 서울에서 허비한 그 오랜 세월이 억울해서 분통터진다는 님. 서울에 살 때부터 건강 공부를 몇 년간 하시고 자연 속으로 들어와 온전히 사람을 살리는 건강한 먹거리를 통하여 튼실한 몸을 만들고 그러한 몸을 통하여 건강한 마음과 정신 나아가 행복을 가꿔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도시에 살면서부터 좋은 먹거리를 만나서 아들의 아토피 병을 치료하게 되면서 그것이 자연 속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아파트 한 채와 직장만 있으면 모든 의식주가 해결되지만 산 속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그래서 남자에겐 집 짓는 본능이 있고 여자에겐 호미 한자루만 쥐어주면 밭 매는 선수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 봉화에 와서 가마솥에 불 때기와 물고기 잡기 등의 직접 체험을 해보니 정말 즐거워 춤추는 나의 영혼을 발견했다. 아이들도 아궁이 재 버리는 일도 서로 하겠다고 싸우는 것을 보니 생활 속의 사소한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즐거움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보다 잘살기 위하여 도시를 택했다. 그런데 소음과 매연의 도시 가운데 그것도 대지와는 한참 떨어진 고공에 떠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아파트 속 고공에 떠서 잠을 청한다. 이렇듯 도시의 삶이란 것이 철저하게 자연과는 유리되어 사는 삶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 아내랑 맨발로 공원을 산책할 때의 발바닥으로 느껴지던 그 대지의 감촉을 잊을 수가 없다. 도데체 무엇이 잘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매일 과자와 음료수를 마시고 밥이라고는 무슨 쓴 한약 먹듯이 하고 야위어만 가는 하림이나, 고3으로 대입을 위하여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하고 뻑하면 배 아프다 머리 아프다 하면서 드러눕곤 하는 딸아이를 보는 것도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건강한 삶을 그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데.. 그런 면에서 풀천지님은 자연 속 대지의 삶을 택하여 행복을 거머쥘 수 있었으니 참으로 그 용기있는 결단이 부럽다.

 

비오는 늦은 밤 봉화 김문안씨네 사랑방에서의 파전과 돼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인 풀천지님과의 대화는 끝이 없고..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싶자 사모님이 그만 일어서자는 신호를 보내기가 무섭게 하던 말씀을 뚝 끊고 일어서던 풀천지님를 보고 말씀은 별로 없지만 역시 풀천지님을 움직이는 분은 사모님이구나 했다. 후에 풀천지님 처럼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아이들의 미래는? 그들도 이러한 산골의 삶을 정녕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하는 토론이 이어졌지만 적어도 현재의 풀천지님 부부의 표정과 모습에서 자연이 주는 싱싱한 건강미와 자급자족의 풍요로운 삶의 단면을 읽을 수는 있었다.

 

새벽 5시 반 바깥의 환한 빛에 일어나 집 뒤 산기슭에 있는 서당 고택에 올랐다. 거기서 바라본 내성천의 물안개는 과히 환상적이다. 구비치는 강과 계곡을 품은 물안개가 고요히 천상의 여행을 준비하려는듯 피어오르고 있다.

 

아내랑 새벽산책에 나섰다. 내성천 너머 들판 길에 들어선다. 바람에 쓸리우는 벼들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풍요로운 폭풍의 언덕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꾸만 내게로 기대오는 아내를 본다. 그녀가 이순간만은 아련한 행복의 물결에 젖어있음을 느낀다.

 

아내의 문제(?) 해결차 들린 춘양역은 참 아름다운 역이다.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역을 에워싸서 운치를 더해 주는데 누군가 정자며 작은 연못 등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금상첨화였다. 이 역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근무 환경이다. 특히 춘양목을 전시해 두었는데 거북 등 껍질을 가진 198년 된 적송으로 그 나이테의 촘촘함에 놀랐다. 일년에 아주 조금씩 자라서 한 200년은 되어야 재목으로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더디 세월을 축적하여 자란 춘양목은 재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래서 궁궐을 짓는 재목으로 이 춘양목을 썼다고 한다. 인생 칠십에 강건하면 팔십이라 백년도 못사는 부생 인생이 이백년을 살아도 한창인 아름다운 춘양목에 비기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빗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처제들(?)과 군고구마에 커피 마시며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것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이야기는 역시 여자들이 잘 한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아이들과 살림을 챙기는 가운데 수많은 시시콜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거미줄 마냥 술술 끝도 없다. 어릴적 명절 큰집에 가면 유독 여자들의 수다를 듣고싶어 불을 때 주겠다는 핑계 하에 부엌에 들어서는 나오지 않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을 베어 문다.

 

봉화 여행에 동행한 동화정원팀의 처제들 면면을 보면 저마다 색깔이 선명하고 참으로 끼가 넘친다. 열정적 참살이꾼 주희씨(나와 색깔이 많이도 닮았다), 옹골찬 얼롱이 은숙씨, 미워할 수 없는 여우 은정씨,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애경씨, 거칠 것이 없애라 잔다르크 명아씨. 이들 기라성 같은 사랑스러운 처제들의 형부로 추앙(?)받는 영광을 아내(차선-부드러운 땡벌)에게 돌린다.

 

문안씨와 남자들이 비바람과 물불은 내성천의 격랑을 무릎쓰고 반도를 챙겨서 천렵을 나갔다. 따라 나서려던 아이들을 애써 집안에 머물게 하고 수중보 부근에서 제법 큰 메기 한마리와 피래미 등 몇 마리를 잡았지만 물살이 장난이 아니다. 급기야 소방대원 주태씨의 구명밧줄로 몸을 묶고 물에 뛰어드는 문안씨, 왕년의 천렵꾼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세고 물이 불어 역부족이다. 잡아온 물고기를 대야에 풀어 놓으니 아이들이 좋아라 어쩔줄 모른다.

 

어로작업(천렵)을 마치고 돌아오는 우리 남자들을 맞는 변신한 여자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비오는 날 나름대로 놀거리를 찾아 화장놀이를 마친 여자들의 변신이 놀랍다. 임은 품에 안아야 맛이라더니 역시 여자는 화장을 해야 품에 안을 맛이 나는건가? Cosmetic Artist 주희씨의 작품으로 변신한 아내와 내게 신방 차려준다고 누군가 방 비워라고 소리친다.

 

물고기 만지고 놀던 하림이가 갑자기 똥이 마렵단다. 흐르는 시냇가에서 종이를 깔고 하림이 똥 누이기는 일도 이곳 봉화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체험이다. 녀석은 집에서 똥 눌 때는 항상 바지를 홀라당 벗고 볼 일을 보는 습관이 있다. 비는 내리는데 우산을 받쳐들고 녀석의 바지를 벗기고는 일을 보게 했다. 그런데 때마침 나타난 지수가 보는데 서는 똥을 누지 않겠단다. 지수를 멀리 쫓아 보내고서야 겨우 일을 치를 수 있었다. 변비기가 있는 녀석의 똥은 치우기도 쉬웠다. 일을 마치자 마자 개구리 잡는다고 빗속으로 뛰어 나가는 하림이를 보며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는건데.. 하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알싸하다.

 

아이들이랑 재미로 가마솥에 불을 땐다. 오랫동안 불이 든 적 없는 아궁이는 재로 잔뜩 막혀있어 매캐한 연기가 역류하여 내어치는 바람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다. 그래도 좋아라 하며 아궁이를 떠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시절을 본다. 누가 그랬던가. 아이는 자연이라고. 물론 어른도 자연이었는데 문명에 너무도 길들여져서 이제는 다시 원초적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아 안스럽다.

 

돌아오는 길에 우중드라이브 160킬로를 마치고 영동에 들렸다. 은숙씨네 어머니 솜씨로 빚은 맛있는 민물매운탕과 솔잎주 그리고 햇강냉이..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이렇게 풍성히.. 물론 은숙씨의 배려로 미리 준비한 귀한 먹걸이들 이었지만 내가 마치 처가에 온 착각으로 흥분하여 많이도 떠벌렸나 보다.

 

봉화와 영동을 잇는 이박삼일간의 여정을 마무리 하면서 이 여행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애써 준비해 주신 주희씨와 은숙씨네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함께 하신 동화정원 가족들과의 아름다운 다음 모임을 기대해 본다.

 

2006. 7. 21. 금.

하림아비 김종호(구름에 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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