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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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술은 어릴 때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이후 처음이었다. 24살의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아쿠타가와 상을 안겨준 작품이라는 수식어보다 이 소설이 더 눈에 뜨였던 것은 두 단어 때문이었다. 기독교와 연금술. 즉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중세 유럽에서 신성 모독일 수 있는 연금술의 의미가 궁금했다.

 

 내용은 15세기 프랑스에서 한 수도사가 겪은 기묘한 체험담이다. 수도사 니콜라는 이교의 사상을 다룬 헤르메스 선집의 완본을 구하고자 파리에서 리옹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그러던 중 주교의 추천으로 독실한 연금술사인 피에르를 만나고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한다. 한편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선 사람들이 하늘을 원망하고, 이단 심문관은 마녀를 처벌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선동한다.

 

 결국엔 연금술사가 마녀로 지목되는데 그 모든 과정을 수도사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시선은 종교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자 비판이다. 또한 시간이 흘러 초로의 수도사가 연금술을 시작하는 것 또한 작가가 15세기를 배경으로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피에르의 말에 따르면 무릇 월하(月下) 피조물계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질료가 형상과 일치하고, 그뿐만이 아니라 결여태(缺如態)로부터 소유태(所有態)로의 복귀까지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눈먼 자는 그 눈장자에 빛을 밝히고, 귀 먹은 자는 음을 가려 들으며, 나병은 치유된다. 현자의 돌을 두고 만능의 약이라 칭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특히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 그는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전 기도의 경건함에서도, 식사중의 침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식탁에서의 모든 동작은 대단히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이루어지고, 소리 하나 내는 법 없이 진행되었다. 거기에는 길고 긴 단식을 끝낸 이가 마주한 최초의 식사를 입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과도 같은 외경(畏敬)이라 부를 만한 고요함과 눈앞 음식과의 진지한 교류가 보였다. 생리적인 욕구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욕구가 핍박받고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형태를 부여받아서 인간에게 적합하게 고양되었다고 해야 할 그런 엄격함이었다. 그 순간 음식은 피에르에게는 분명하게 외적이고 이질적인 것이면서도 몸 안에 들어가기 이전에 한 발 앞서 이미 동질성을 획득한 듯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피에르가 연금로를 마주하고 있을 때에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불가사의하리만치 충실감이 넘치는, 외계와의 일치성의 현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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