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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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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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치] 서평단 알림
하나님의 정치 (양장) - 기독교와 정치에 관한 새로운 비전
짐 월리스 지음, 정성묵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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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평단에 채택되어 읽게 된 귀한 책이다

하나. 생각 열기

장로 대통령, 장로 경찰청장, 집사 서울교육감 또는 “고소영”라인으로 회자되는 오늘의 정치, 사회 상황과 보수우파를 자처하며 구국을 이야기 하는 시민단체(?)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물들의 기독교와의 밀접한 관계성을 볼 때, 이땅에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시대적 가치와 세는 하나의 아이콘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 이런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서 기독교, 기독교 정치(정치인), 기독교적 영역과 삶이 과연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적인지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 조차 많은 말들이 있고 합당치 못한 것에 대한 강한 주장이 있다.

오로지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 매도하고 매도 당하는 비논리적이고, 비성경적인 모습에 대해 고민함이 없이 오히려 약자를 배려함이 없는 독선적인 주장으로 “개독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반쪽의 현실을 보면, 마땅히 윤리적이고 성경적이어야 하는 설득력 있는 전제와 해석들, 나아가 대안적 패러다임 제시가 절실한 시점인 것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집단(한나라당, 민주당, 기타 정당)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그의 일을 맡기기 위해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의 신앙이 개인의 사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어 시대가 안은 문제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에겐 공적영역으로 나아가는 ‘온전한’ 제자로서의 삶을 위한 더 깊은 회심이 필요하다.

짐 월리스의 ‘하나님의 정치’는 바로 이런 우리의 상황에서 나와야 할 마땅한 책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단순한 구호나 주장, 사상의 전파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정치’를 구체적 사례와 정책 제시-가난과 질병, 환경, 전쟁이 왜 성경적인 문제인지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냄으로서 성경적 가치를 실현하는 ‘가치 논쟁’으로 이끌어 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장점이리라.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는 선지자 미가의 예언적 소명을 가장 강대한 미국의 사회와 정치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재해석해내고, 이를 운동으로 풀어가는 그의 소명이 놀랍고 부럽기도 하며, 이 책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기도 하다.

복음적 좌파 또는 보수 급진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책에서 빈곤, 환경, 전쟁, 진실, 인권, 테러, 일관된 생명 윤리를 ‘예수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와 자비 안에서 온전히 주장하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실증적 사례를 보여 줌으로서 경쟁과 우월함이 미덕으로 강조되는 왜곡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기독인들에게 성경적 가치의 삶을 대안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정치”를 세상의 도덕적 가치 안에 풀어내고자 예언적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복음 제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노예해방을 남북전쟁으로 풀어간 에이브라함 링컨과 “한 손에 성경을, 또 다른 한 손에 헌법을” 들고 흑인 공민권운동을 비폭력운동으로 풀어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앞서 살아간 예언자적 삶이 저자의 피에 동일 유전자처럼 반복되어 열매 맺는 것을 볼 때 시대의 암흑과 죄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미국의 이런 영적 유산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작은 것이라도 진실 되게 보도하는 언론의 사명이다. 언론이 정직해져야 한다. 언론이 예언자적 소명을 가지고 시대의 문제를 통찰할 때 비록 작은 운동이라도 하나님의 편에 진실 되게 서 있는 영적 소수가 시대적 암흑을 깨뜨리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하나님은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아니고,”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기에”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닌 희망이 있다. 연약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사회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기를,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성경적 이슈로 이끌어 나갈 영향력 있는 공동체가 우리 안에 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둘. 생각의 내용 쌓기

1부 바람의 방향을 바꾸라

“개인적 신앙은 그 누구도 훔쳐갈 수 없다. 문제는 정치적 영역이다. 특히 공적 삶 속에서 성경적인 믿음을 되찾아야 할 때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국가를 초월하며 크리스천에게는 국가 정체성보다 신앙 정체성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장 말씀처럼 예수님이 서 있던 자리가 어딘지를 보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저자는 종교의 예언자적 사명을 중시하면서 사회를 바꾸려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공민권법 통과를 위해 온 미국인의 관심을 한 군데로 모으고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그러한 관심사에 따르도록 한 것처럼, 정치인이 아니라 ‘바람’을 바꾸고, 담론을 바꾸고,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배경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패러다임 속에서 바람은 신앙적 ‘비전’없이는 바뀔 수 없다. “비전이(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해지나니~.” 비전의 정치는 다름 아닌 가치를 중요시하는 정치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공적 문제들을 두려움이 아닌 예언자적, 민주주의적 비전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정치가 아닌 하나님의 뜻(공익)이 이뤄지는 정치가 구약의 선지자들의 외침처럼 일어나야 한다. 개인의 구원을 통해 사회적 공익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정의, 곧 예언자적 종교의 소명을 정치에서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2부 불평의 정치를 넘어서

논쟁의 틀을 바꾸기 위해서 저항에서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명의 소중함과 신성함 속에서 전쟁과 평화,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편협한 신앙, 불의, 경멸, 냉담, 폭력을 없앨 수 있다는 희망. 심판으로 시작했으나 변화의 희망, 창조적 대안으로 끝맺음을 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기억하라.

빈곤과 전쟁의 문제에서 “신학과 영성만이 가난한 사람들과 전쟁 희생자들을 구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과 빈곤의 문제에 제 3의 길은 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해 보자.

공적인 삶에서 정치는 종교를 이용하는 종교근본주의와 종교를 배격하는 세속근본주의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정치로 회복되어야 한다. “권력은 부패하지만 권력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권능, 진실의 힘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방향에 관해 예언자적 양심과 도덕적 신념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가치들로 돌아가자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예언은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가치를 따져 투표하라.” 도덕적(성경적) 가치 속에서 정치, 경제, 문화를 통합할 수 있다. 좌와 우의 낡은 선택적 사고가 아닌 도덕적으로  ‘더 높은 기반’으로 올라가서 공적 삶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지혜를 보여주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이다.


3부 영적가치와 국제관계

“예수가 언제부터 전쟁 옹호론자였는가?”라는 명제아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정치적 이해하기보다는 영적, 신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의 해결을 위해 교회가, 크리스천이 이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말고 통찰할 것을 요구한다. 전쟁의 기본적 틀로 “평화주의, 정당전쟁, 그리고 십자군”을 놓고, 가능한 전쟁으로 정당전쟁을 이야기 한다. 이해관계가 실질적 권력이 되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평화주의와 정당전쟁을 넘어서는 제 4의 길이 있다고 제안한다. 성경적이며, 평화주의와 정당전쟁의 이해를 넘어서는 “정당한 평화정착”을 주장하는 것이다. 마치 십자가를 통해 이 땅의 왕이 오셨듯이.

이의 연장선상에서 테러문제를 - 9.11 테러의 원인을 아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빈곤’과 ‘절망’이 테러의 직접적 사유는 아니더라도 테러를 잉태하는 ‘습지’이므로 빈곤과 절망을 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테러에 대한 바른 영적 태도이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대량살상무기라는 거짓된 이유로 이라크 전쟁을 벌인 부시 정권에 대해 사상자수에 주목하며 치명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히 이와 같은 부당한 전쟁으로 인해 거대 기업에 감면혜택을 주고 정작 지원이 필요한 소외 계층에 필요한 예산은 삭감하고 있는 잘못을 통렬히 공박하고 있다.

 


4부 영적가치와 경제정의

“이데올로기 전쟁 중에 저소득층은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모두의 희생 제물이 된다. 언론의 관심은 실질적인 해결이 아니라 그 문제를 둘러싼 다툼에 있다.”

“가난은 ‘좌파’의 이슈가 아니라 영적이면 종교적인 이슈다. 인식의 문제가 아닌 내용의 문제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모두의 지혜와 열정이 필요하다.”

저자의 관심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주제가 ‘빈곤’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마태복음 25장의 예와 미국의 빈곤의 구체적 통계수치를 들어가며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가 예수님에 대한 배려이며 이러한 관점으로 ‘빈곤’을 전면적인 이슈로 이끌어 내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 미국의 아동들 6명당 한 명 꼴로 빈곤(1천 3백만 명), 빈곤 한계에 처한 미국인들의 수가 3천 6백만 명,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4천 5백만(이 중에 어린이가 8백 4십만 명)...” 참으로 미국인들에게는 부끄럽고 이방인들에겐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빈곤문제에 관한 이런 사실적, 성경적 접근으로 현재의 미국 정치를 비판하며 보다 근원적이고 신학적인(영적이고 성경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덧붙여 세금 논쟁에 관한 균형 잡히고 성경적인 대책을 수립하여 가난한 자들에 대해 제도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5부 영적가치와 사회적 이슈

낙태, 안락사, 사형제도, 핵무기, 빈곤, 인종 차별 같은 ‘생명쟁점들’은 하나의 일관된 생명 윤리로 “이음새 없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통째로 짠 옷”과 같다는 시카고의 조지프 버나딘 추기경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날 미국이 있기까지의 ‘미국의 원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미국의 원죄는 우리나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미국에서 노예제도와 그 이후에 발생한 흑인에 대한 차별은 대단히 심각한 불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적 회개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 엄청난 죄에 대해 ‘사과하는 것’도 대단히 심각한 논쟁을 불러 왔을 뿐이다.”

저자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 정당이 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종차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보다는 흑백차별을 당연시 하거나 이용해 왔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히스패닉계와 아시아계가 섞여 일어나는 혼합되고 복잡해진 인종갈등의 양상을 구체적이고도 철저하게 영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인종차별은 복음과 그리스도의 화해사역의 핵심을 부정한다.” 서로 분리된 사람을 화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목적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일로 보면서, 문제해결의 열쇠는 백인들에게 있고, 흑인들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책임과 역할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양자가 만나서 정직하게 현실을 대면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 놓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화해를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이다.”


6부. 영적가치와 사회변화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의 관계, 일, 공동체, 심지어 미국의 역사에서도 변화는 언제나 진짜 가능하다. 이것이 믿음의 약속이다. 하지만 나쁜 종교, 위험한 종교의 해법은 세속주의가 아니라 좋은 종교다. 그리고 종교 우파에 맞서기 위한 최상의 종교는 예언자적 신앙이다. 바로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종교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의 무지막지한 오류를 적시하며 하나님의 공의로 사회적 변혁을 이루어 가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정치 현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보수와 기독교가 동일시되어 미국적 신앙뿐만 아니라 미국의 오도된 정치지형까지 받아들인 우리 기독교보수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냉소주의자와 성자뿐일 것이다. 냉소주의자와 성자의 유일한 차이는 희망이다. 희망은 현존이며, 힘이며, 가능성이다. 그리고 참으로 영적 종교적 이슈다. 우리는 순진한 바람이 아니라 세상의 현실을 정확히 읽는 눈으로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신앙이 문제가 될 때는 지적 논쟁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실제 삶이다.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표현하라. 신학 세미나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바로 구치소다!”

치열한 삶의 한 가운데 ‘희망’이라는 이름의 믿음이 표현되어야 하고, 신앙과 정치에 대한 예언자적 삶이 진보의 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운동가들이 쉽게 놓칠 수 있는 삶의 여유, 즉 치열함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가르쳐 주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사회 운동을 벌이면서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세상을 바꾸려고 분주히 애쓰는 가운데서도 그 세상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 잡힌 삶, 그리고 희망찬 삶을 살려면 꾸준히 즐기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셋. 삶 속으로 영역 확장하기

공적 영역에서의 공의와 정의를 약자를 배려함은 전혀 없이 자신의 입맛으로만 해석하고 주장하여 수많은 사회적 정치적 국민적 갈등과 대립의 축이 되는, 자신을 보수로 치장한 근본주의 신앙과 삶의 양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할 수 없고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다. 이 책에서 이 부분을 짐 월리스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부시와 네오콘들 그리고 그들의 9.11 이후의 정책을 예로 잘못된 테러와의 전쟁을 축을 삼아 날카롭게 설파하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기아와 질병 등 빈곤의 문제와 생명경시의 정책을 비판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정의와 평화의 밑바탕이 되도록 신학과 영성을 강조한다. 부시의 예처럼 신앙의 진정성은 있으나 나쁜 신학에 물들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지금의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것을 좌파와 우파의 논리로 보고 해석하며 대책을 세우는 이원론적 흑백 정치 시스템을 보면 저자가 새로운 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하나님의 정치,” 곧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실존적이고 가장 실용적인 문제 분석틀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혹 우리도 내가 하는 것만 ’선‘이고 성서적이며, 상대편이 하면 ’악‘이고 비성경적이라는 나쁜 신학에 물들어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내부에도 메워야 할 깊은 웅덩이들이 산적해 있다. 양극화로 대변되는 빈곤과 부의 축적 문제, 질병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시스템, 토지(아파트)로 상징되는 정당한 소유를 넘어선 탐욕의 자본주의, 인종적 차별에 준하는 지역감정의 구조화 등 이런 문제는 예수님이 보는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 책의 저자, 월리스가 주장하는 좌와 우를 넘어선 "하나님의 정치"를 대안적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내가 하면 옳고 상대방이 하면 틀리는 이분법적 사고와 오도된 법과 원칙의 준수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이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이 책이 도움이 되는 지점은 ‘통일’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에게 통일은 좌의 통일도 우의 통일도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눈먼 자, 병든 자, 억업 받는 자가 고침을 받고 자유케 되어야 하는 영적이고도 실존적인 문제이다. 그런 통일이 필요할 뿐이다.  

통일의 문제는 이념과 빈곤이 결합되어 최악의 차별을 낳는 악의 문제일 수 있다. 어느 한 쪽을 낙인찍어 차별을 고착화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가는 정치가 아니다. 월리스가 말하는 "하나님의 정치"가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깊은 성찰 때문이 아닐까. 좌와 우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의 지평으로는 실존적 문제인 빈곤과 차별의 고착화를 담아낼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심장이 박동하는 실천적 기독교인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언자적 삶으로 정치를, 사회문제를, 그리고 통일 정책을 다룰 때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문제가 있다. 교원평가로 대표되는 교육개혁과 자율학교 확대로 상징되는  공교육체제의 교육개방, 이 속에 숨어 있는 하나의 고리는 '경쟁'이다. 무한 경쟁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 교육을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 수월성과 경쟁위주의 논리로 풀어가는 것에 대해 기독인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지금 거세게 부는 교육의 회오리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자리할 수 있는 위치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정치가 이 땅의 공기를 부드럽게 하여 들이쉬기에 편안하게 한다면, 우리 공교육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인권과 자유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에 있어 무엇이 성경적인지 치열하게 돌아볼 때다.

 


넷. 생각 마치기

“성경으로 돌아가자.” 그것도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본질로 들어가자.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와 미가 선지자, 그리고 예수님처럼!

빈곤과 전쟁, 독선적 무력정책, 배려 없는 정치, 인간이 상품화 되어 가치가 무의미한 이 시대, 성경적 본질을 놓치지 않고 정책과 글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논리적 지평을 열어가는 저자의 삶과 능력에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몸으로 읽어내며, 예언자적 통찰력과 삶으로 시대의 문제를 끌어 안은 기독실천운동가 짐 월리스와 그의 책을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는 한국정치와 그 안에 몸담고 있는 기독한국인들에게 성경을 삶으로 읽고 사회, 역사적 맥락에서 풀어갈 것을 도전하는 참으로 시원 통쾌하고 유의미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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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메이슨과 함께하는 교육
카렌 안드레올라 지음, 임종원 옮김 / 꿈을이루는사람들(DCTY)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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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편이 읽는 책이다. 두께가 6cm정도 되는 두꺼운 책이다.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대략 살펴 보았는데... 실생활 속에서 엄마가 가르치는 인생과 그 속에 녹아든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요즘의 실생활과도 깊게 연관되는데. 가령 음악. 미술 교육도 담고 있다. 홈스쿨링을 하며 나중에는 교육대학도 세워서 그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아동의 인권이 없던 시대에  아동의 가치를 세워서 공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실제 자녀를 양육하며 가슴으로 적은 책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며 그에 따른 인격을 갖추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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