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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스필버그가 <백 투 더 퓨쳐>를 만든 이후부터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은 영 시들하기만 했다.
그런 대작을 보고나면 뭔들 재미있겠는가?
시간이 흘러 내 기억이 쇠퇴한 탓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이 업그레이드됐는지
<타임슬립>은 간만에 읽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흥미진진한 수작이었다.
겐타, 그리고 고이치는 각각 2001년과 1945년을 사는 일본 청년이다.
어느날 바다에서 서핑을 하던 겐타는 난데없이 1945년으로 가고,
같은 바다에서 비행연습을 하던 고이치는 2001년으로 온다.
“옛날이 좋았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삶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
21세기를 살다가 20세기 중반으로 간 청년이 행복할 리는 없다.
겐타가 바라는 건 오직 2001년으로 돌아가는 것뿐.
게다가 1945년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
징용이 된 겐타는 가미가제 비슷한 일에 동원되어 죽을 운명에 처한다.
그럼 현재로 온 고이치는 좀 나을까?
머리를 물들이고 록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미국과 싸운 게 이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건가!”라며 개탄을 하긴 했지만,
먹을 것도 충분하고 즐길 것도 많은 2001년의 삶에 고이치는 점차 적응해 간다.
“겐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겐타로 살아갈 것이다. 미나미를 평생 지켜주면서.”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봤던 주말의 명화를 떠올렸다.
미 항공모함 한척이 폭풍우를 만난 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던 1941년으로 가버린 것.
그 정도 화력이라면 혼자서도 일본군 전체를 물리칠 수도 있을텐데,
실제로 그들은 몇 번의 전투에서 손쉽게 승리하며,
역사를 다시 쓰자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다시금 폭풍우가 몰려왔을 때, 함장은 명령한다.
“최대한 후진해! 폭풍우를 피해!”
그 항공모함과 달리 겐타는 혈혈단신으로 과거에 갔고,
그나마도 일개 비행사 신분에 불과했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안다는 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겐타의 상황은 1975년으로 간 사람이 강남에 땅을 사야 한다는 건 알지만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는 것과 비슷한 심정일게다.
“아는 건 힘이지만, 힘이 있어야 그 앎을 실천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