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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지금은 서재활동을 열심히 안하시지만, ‘알라딘 호외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흑백TV님이 지금은 까먹은 이유로 이 책을 선물해 주셨다(뒤늦게마나 감사드린다). 책 앞머리에 찍힌 책도장은 그게 2005년 8월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러니까 이 책은 무려 2년간이나 방구석에 놓인 채 내 손길을 기다려 왔나보다. 내가 선뜻 이 책을 집어들지 못한 건 표지 남자의 섬뜩한 눈초리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난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단어에 약간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세계명작은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 진도가 느리며, 읽고 나도 잘 이해를 못하는 거라는 편견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었으니까. 그런 편견을 해소해준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그러는 걸로 보아 역시 책은 어릴 적부터 읽어야지 나처럼 갑자기 벼락치기로 읽어선 안된다.
바흐를 즐겨듣는 주인공인 알렉스는 천하의 망나니로, 닥치는대로 사람을 때리고 돈을 빼앗는다. 일전에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악함과 폭력성이라는 면에서 알렉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 이런 나쁜 인간이 있을까 싶었고, 그의 폭력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이 왜 명작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후반부를 읽다보니 이 책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데, 저자는 사적인 폭력보다 더 나쁜 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것이라는 사실을 ‘루도비코 요법’을 예로 들어 주장한다. 루도비코 요법은 폭력이 담긴 필름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폭력에 저항감을 갖도록 세뇌시키는 것으로, 결국 주인공은 저항을 못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세계명작의 특징은 그 시대에만 진리인 게 아니라 요즘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이 책을 덮으며 삼성 회장의 박사학위 수여식 파동 때 K대 학생들이 보여준 자발적인 복종을 떠올렸다. 굳이 루도비코 요법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저항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자본이라는 괴물에게 말이다.
* 덧붙이는 말: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서 밑줄을 그어놓은 대목이 있다. “그 오랜 독일 거장(바흐)의 아름다운 갈색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인간들을 더 세게 패주고 갈가리 찢어 마루바닥에다 내팽개치고 싶다고 생각했지(45쪽).”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음악, 그것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