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잘 읽는 방법 - 폼나게 재미나게 티나게 읽기
김봉진 지음 / 북스톤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년 새해가 되면 여러 계획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 책 읽기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책 읽기를 하며 그동안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8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보면 그동안 읽어온 책들이 다 기억나지 않기도 해 내가 무엇을 했나 싶기도 했다.

책을 단순하게 읽는다는 것은 인내심과 규칙적인 습관만 있더라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책 잘 읽는 방법'은 나를 포함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읽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게 알진 못한다.

봄을 맞아 슬슬 책 읽기에 몰두할 때쯤 '책 잘 읽는 방법'이라는 신간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분의 모습이 책 표지에 담겨 있었는데 지난 2016년에 읽었던 '배민다움'에 소개된 김봉진 대표다.

김봉진 대표라고 하면 모르는 분도 있겠으나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한 번쯤 사용해봤을 '배달의 민족'을 만든 사람이다. 내 블로그에 있는 썸네일 폰트도 그가 만들었다.

김봉진 대표가 속한 '배달의 민족'은 직원들이 책을 구매하는 데 있어 아낌없이 지원한다. (무제한으로) 그가 말하길 '배달의 민족' 직원들은 1인당 월 평균 6~7권 책을 소화한다고 한다. 한달에 6권이 꽤 어렵다는 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다 알기에 놀랍기도 했다.

김봉진 대표가 쓴 '책 잘 읽는 방법'에서는 평소 책을 읽는 분들이 놓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친절하게 얘기해준다. '폼나게 재미나게 티나게 읽기'라는 부제에 맞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책 읽는 방법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인문 고전이다. 어렵기에 구매하고도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인문 고전이나 철학 책을 쉽게 익는 방법이라든지, 자신의 어린 딸이 성인도 읽기 힘들다는 '총균쇠'를 완독했다는 일상적인 이야기 등을 말해주며 책과 함께 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얘기해주는데 평소 책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친구를 만난 듯한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책 잘 읽는 방법'에서는 부록을 통해 김봉진 대표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31권의 책 내용을 상세히 알려준다. 처음 보는 책도 있었기에 부록을 읽는 동안 컴퓨터에 도서 쇼핑몰을 로그인하고 열심히 검색하며 장바구니에 담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장바구니에 22권의 책이 늘어났다.

그동안 책 입문서를 많이 읽어왔으나 누구나 읽기 쉬운 문체로 친절히 알려주는 건 '책 잘 읽는 방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평소 경어체를 자주 쓰는 일을 하고 있는만 매번 똑같은 문체라 고민이 많았는데 읽는 이들에게 편하고 쉽게 얘기하는 저자의 문장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도 도움이 됐다.

나 역시 '책 잘 읽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 다름 아닌 내가 읽은 모든 책을 블로그에 남기는 거다. 그것도 최대한 상세히 남기는 편인데 서평보다 아래 글귀를 옮기는 데만 책 1권당 한 시간 이상 소모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가 많지만 막상 다 쓰고 나면 정말 뿌듯하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봤을 때 책 내용을 다시 알 수 있고 당시에 놓쳤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어 나만의 '책 잘 읽는 방법' 중에 하나다.

책을 잘 읽는 것은 누구나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평소 책 읽기를 하지 않거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책 잘 읽는 방법'을 읽어봐도 좋겠다.


* '책 잘 읽는 방법' 추천 도서

1. 논어의 말 - 나가오 다케시
2.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로렌차 겐틸레
3.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4. 메논 - 플라톤
5. 역사란 무엇인가? - E.H. 카
6. 바른 마음 - 조노선 하이트
7. 21세기 자본 - 토마 피케티
8.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9. 회복탄력성 - 김주환
10. 유한계급론 - 소스타인 베블런
11. 승려와 수수께끼 - 랜디 코미사
12.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
13. 행복의 기원 - 서은국
14. 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밸리
15. 인간의 품격 - 데이비드 브룩스
16.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17. 권리를 위한 투쟁 - 루돌프 폰 예링
18. 대한민국 헌법 - 편집부
19. 부자의 그릇 - 이즈미 마사토
20. 프레임 - 최인철
21.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22. 기업의 시대 - CCTV 다큐 제작팀
23. 매니지먼트 - 피터 드러커
24.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 짐 콜린스
25.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 - 제프 콕스, 하워드 스티븐스 
26. 인간을 위한 디자인 - 빅터 파파넥
27. 지적자본론 - 마스다 무네아키
28.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29. 숨결이 바람 될 때 - 폴 칼라니티
30. 정의론 - 존 롤스
31.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존 러스킨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책을 읽으면 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해드리고 싶어요. 정해진 운명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요. 우리의 삶은 수많은 크고 작은 결정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요. 이떄 '생각의 근육'을 키워두면 조금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겠죠. 이런 것들이 쌓이면 정해진 운명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시 모르죠. 운명조차 바꿔버릴지도요 - 6

책에 대한 잘못된 상식 하나는 읽던 책을 다 읽어야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다음 책으로 못 넘어가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책은 기본적으로 절반 이상 지나면 좀 지루한 게 사실이잖아요. 한 번쯤은 포기하고 싶은 위기가 와요. 모든 책을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한 권을 끝내기 전에는 다른 책을 못 읽는다고 생각하니까 이 책도 못 읽고 저 책도 못 읽고, 거기서 책 읽기 자체를 관두게 되는 거죠 - 30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쓴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읽어가는 것이예요.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적어 출판한 것이 책이잖아요. 연설이나 노래나 강연 등 수많은 표현수단 중에서 그 저자는 책을 선택한 것이죠. 즉 책은 수단이고, 그것도 많은 수단 중 하나라는 뜻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텍스트(활자)에 집중하는 바람에 이것만 신성시하게 돼요. 더욱이 저자의 생각은 책 안에만 담겨 있지도 않아요. 보조적으로 저자의 강연 동영상,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라든가 블로그, 소셜미디어, 기사, 또는 다른 저자의 책 안에 담겨 있기도 해요 - 40

저자의 생각은 대부분 머리말과 결론에 담겨 있고, 생각을 풀어내는 논리적 구조는 목차에 들어 있어요. 그러니 책을 읽을 때 머리말과 목차를 놓치지 말아야 해요. 저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려면 무조건 읽어야 해요ㅛ. 머리말과 목차를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을 미리 가늠해보세요. 또 각 목차별 핵심 포인트는 다시 해당 세션의 처음과 마지막에 있다는 점도 참조하시고요. 책을 쓸 때 머리말과 목차를 작성하면 절반은 쓴 것처럼, 머리말과 목차를 잘 읽으면 절반은 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 75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삶의 변명을 찾기 위해서도 위로를 찾기 위해서도 아니예요. 책을 읽는 것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 고정관념을 깨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 위함이에요. 매번 책을 읽으며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예요 - 109

구성원들이 책을 읽게 하는 게 왜 중요할까요? 회사는 또 하나의 사회예요. 리더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역량이 무척 중요해요. 특히나 정답을 쉽게 찾기 힘들고, 점점 복잡해지는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매우 중요하죠. 마치 민주주의가 잘 이뤄지려면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하는 것처럼요 - 136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지혜 중 하나가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겸손함은 생각의 경직이 아닌 유연함을 가져다줘요. 위대한 현인들도 어떤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오류가 없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하죠. 강인함과 겸손이라는 말이 어울릴까요? 겸손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약한 자가 자신을 높이는 것은 허풍이고, 약한 자가 자신을 낮추는 것은 비굴이며, 강한 자가 자신을 높이는 것은 거만이고, 강한 자가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다" - 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기존에 알고 있는 작가의 책이 아닌 새로운 작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표지다. 이왕 고르는 책 한 권이라도 책 표지가 예쁘면 더욱 끌리는데 이와 함께 보는 것 중 하나가 책 제목이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을 보게 됐다. 2018년 2월 기준 알라딘에서는 베스트셀러 1위로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무례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순위를 통해 알려주었고 나 역시도 책 제목에 끌려 구매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쓴 정문정 작가는 현재 '대학내일' 디지털 미디어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여성으로서, 과거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기 전만 하더라도 밤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보유했던 그녀는 사고 이후 급격히 체력이 줄면서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일에 제동이 걸렸다.

남들이 무슨 부탁을 하든 들어주던 그녀는 온전히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거절을 하며 느꼈던 감정을 글을 통해 풀어낸다. 가장 핵심은 상대가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 웃으며 그냥 넘어가기보다는 확실히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변에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부모님일 수도 매일 마주치는 회사 동료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을 매일 같이 만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게 대부분이기도 하다.

책에 나온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남들의 생각하는 판단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생각하는 것을 확고히 밀어나가야 한다. 고집 세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남들이 멋모르고 하는 말에 신경쓰기엔 우리가 사는 인생은 참으로 짧다.

아래에 기록한 구절을 읽으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글귀에 나온 내용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책에 있으니 구매해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어릴 때 나는 감정 표현의 적절한 농도를 몰라 관계에서 자주 실패했다. 그런 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논쟁 끝에 상대를 비난하는 말하기의 길로 빠지거나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며 엉엉 울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참고 참다 그냥 관계 자체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단호하면서도 센스 있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까? - 7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말에 분명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례한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에 용기를 얻어 다음에도 비슷한 행동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에서 만나는 다음 사람들에게도 용인받은 행동을 반복했다. 또한 나는 그런 말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패배감을 쌓아갔고, 그렇게 모인 좌절감은 나보다 약자를 만났을 때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감정의 낙수 효과다 - 21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가 작은 호의만 보여도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다. 자신의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달콤한 말로 조종하는 사람에게 속기도 쉽다. 자신의 행복을 누리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하기에 불행의 세계가 오히려 더 익숙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날 사랑하는 게 맞아?" 하고 의심하고 집착하며, 상대를 시험하려 한다. 눈치를 보는 습관에 젖어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을 고려하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비극적인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 38

인간관계는 시소게임이나 스파링 같아서, 체급의 차이가 크면 게임을 계속할 수 없다. 한두 번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져줄 수 있겠지만, 배려하는 쪽도 받는 쪽도 금방 지칠 뿐이다.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요건으로 '착함'을 드는 사람에게 그건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건강할 수도 없다고, 예전 내 모습이었던 착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느 한쪽이 착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사실 없어도 상관없는 '시시한' 것 아닐까? 건강한 인간관계는 시소를 타듯 서로를 배려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때 맺어진다 - 42

사람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가며 성장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배우며 성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착한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잊어버린다.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인생의 선택권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조차 방관자의 자세를 취한다. 진로, 취업, 결혼 같은 중요한 결정조차 마찬가지다.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잘못되면 포기하는 것도 빠르고 남 탓을 하는 데도 익숙하다.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 46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면 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판단을 뒤로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며, 그렇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다. 무언가를 보고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이고,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더 많이 보는 사람일 것이다.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여러 입장을 모두 보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삶까지 살아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 111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게 나를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깊은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까지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또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훅 들어오느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관계를 이어가려면 나름의 대처법이 필요하다. 평점을 유지하면서 나만의 고유한 공간 감각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나를 지키는 법'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 131

상대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 안 된다고 하면 상대가 나를 떠나갈까 봐서 무리한 부탁을 자꾸 들어주는 식으로 관계가 설정되면 갈수록 부작용이 커진다. 관계의 기울어진 추를 파악한 상대는 무리한 부탁임을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고, 부탁을 받는 사람은 일그러진 인정욕구와 피해의식이 겹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예민해진다. 부탁받은 일을 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마음이 기껍고 편안한 상태여야 한다. 예의 바르게 부탁을 거절했는데도 자꾸 하소연하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옆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 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모든 사람에 휘둘리게 된다 - 144

무례한 발언을 자주 해서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집안의 어른이나 직장 상사인 경우라면 현실적으로 화를 내기가 어렵다. 이들은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하느라 그러는 것이기에 정색하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참고만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서로 상처받지 않고 대화를 종결하는 데 필요한 자기만의 언어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사용한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 172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예언하기를 좋아한다. 주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에게든, 친구에게든, 회사 동료에게든 "너는 ~한 사람이야", "너는 ~할 것 같아"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말들을 자꾸 듣다 보면 당사자도 믿어버리게 된다.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다고, "이 결혼 해도 될까요?", "저 공무원 시험 쳐도 될까요?" 같은 질문을 접할 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남에게 묻는 걸 보니 하지 않겠구나'라고, 흔들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조언을 거대하게 받아들인다. 확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물을 시간에 그 일을 이미 하고 있다 - 185

직장 동료 또한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나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내게 업무가 넘어오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업무 성과를 내야 한다. 회식 자리에서는 나와 뜻을 모아 회사와 상사를 욕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의뭉스러운 사람이다. 후배의 경우도 비슷하다. 나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일하되, 말귀를 잘 알아들어 자신의 몫을 척척 해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겸손해야 한다. 안 그러면 되바라졌거나 무능력한 사람이다. 이처럼 직장 동료의 이상향을 설정해두고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파벌을 만들고 사내 정치를 하게 되거나 후배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선배가 되곤 한다. 혼자 기대해놓고 후배가 퇴사를 하거나 동기가 자신의 뒤에서 욕한 것을 알게 되면 '배신당했다'며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는 원래 이해관계로 얽힌 곳이다. 친구는 회사 밖에서 찾아라 - 189

걸핏하면 "난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과도 오래 관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관계란 애초에 누군가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당연히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고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좋을 때가 아니라 좋지 않을 때 민낯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난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며 공감 능력이 떨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 말에는 '그러니 네가 이해해야 한다'라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다. 관계란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은 권력 관계에서 자신이 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를 악용하는 행태를 보인다 - 200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 "다들 괜찮다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떨어?" 하는 사람에게 그 평안은 다른 사람들이 참거나 피하면서 생겨나는 가짜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인류는 약자가 강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함으로써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낸다. 부당함을 더는 참지 않기로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런 것이라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세상의 진보는 지금까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 222

인생에는 아주 약간의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이 필요한 것 같다. 온 힘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로 인한 상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생활 기스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게 체념하면 콤플렉스가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내 발목에는 교통사고로 생긴 7센티미터 길이의 흉터가 있는데 언젠가는 이 흉터가 시작되는 부분에 꽃 문신을 그려 넣을 생각이다. 흉터 전체가 활짝 피어난 꽃처럼 보이도록 - 228

남들이 지적하는 말을 듣고 단점을 없애는 부분만 집중하다 보면 장점도 함께 없어지고 만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단점이 있더라도 특정한 장점이 크게 발휘되는 사람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원래 반짝거렸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수정하다 보면, 결국 그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 235

회사는 기본적으로 이익 창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집단으로 꾸려진 임시 모임이다. 회사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같은 동료일 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동료가 있을 수 있고, 면전에서 나와 대립하는 동료가 있을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 사려 깊게 대하기가 어려워 무심코 말이나 행동으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모든 일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이유를 곱씹다 보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 243

교통사고를 당한 후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음을 실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는 교통사고나 암 같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자,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인생이 끝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상상을 자꾸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내가 자꾸 되뇌는 것은 이것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가치 없는 곳에 쓰지 말 것,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 - 248

친구 또는 애인과 헤어져 나오는 길이 언제나 공허하다면,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보다 나를 더 소중히 대해주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면, 서운함 때문에 마음속에 뾰족함이 자라나 뼈 있는 말로 자꾸 상처를 주게 된다면 그 관계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이때는 서로 지쳐서 그런다는 걸 알아차리고 서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 251

나이를 들면 그동안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마음속에 사람의 유형을 혈액형 나누듯 감정적으로 구분하고, 내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자꾸 나누게 된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본능 같기도 한데, 이처럼 사람을 빠르게 판단해 편을 가르는 습관이 되면 만나는 사람의 영역이 더는 확장되지 않고 멈춰버린다. 주변에 생각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만 두면 사람은 급속도로 '꼰대'가 되고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취월장 - 일을 잘하기 위한 8가지 원리
고영성.신영준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든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자신의 일을 잘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막상 일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란 생각보다 더 어렵다.

사회초년생이라면 지금 당장 배울 게 많기에 그런 걱정이 적은 반면 어느 정도 업무에 숙달된 사람이 현재의 자신보다 더 발전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동안 5~6년차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느낀 것이라면 매일 같은 업무를 하는 직장인이 성과 관리를 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되는 건 '업무효율화'다. 같은 업무라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메뉴얼화를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을 잘하기 위한 원리다.

지난해 고영성, 신영중 작가의 '완벽한 공부법'을 통해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나 당시의 나는 매일 공부하거나 책 읽는 것 또한 게을리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회사 생활에 전념하면서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도 2년 차가 돼갈 무렵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찰나 '일취월장'이라는 책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

'일을 잘하기 위한 8가지 원리'라는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 내용을 부제로 담은 '일취월장'은 운, 사고, 선택, 혁신, 전략, 조직, 미래, 성장이라는 주제로 일을 하는 마음가짐에 관해 외국 교수가 쓴 논문이나 박사 연구를 토대로 상세하면서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운'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뼈저리 느낀 것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어느정도 '운'을 뒷받침해야 하기에 가장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주제의 내용이 많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나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여러 취미 활동이 많아지면서 배움을 덜했기에 반성되는 부분도 있었다.

아는 만큼 벌고 얻으며 모를수록 손해만 보는 요즘 같은 시대에 '배움'이라는 것은 하루라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렇기에 '일취월장'에 나오는 내용처럼 언제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여유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겠다.

'일취월장'에서는 또한 마케팅적 요소로 업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실제 기업이 했던 프로젝트를 토대로 알려준다. 그중 의류 브랜드 '자라'의 마케팅 방식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솔깃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직접 진행해보고 싶다.

이 책을 읽는다고 지금 당장 못했던 일을 잘할 수 있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현재의 직장 생활과 대비하며 느낄 수 있는 공감 요소도 많았기에 앞으로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을 성취하여 월등히 성장한다'는 말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이 찼을 때만큼 즐거운 일 또한 없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식의 습득을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운 자체를 인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상황을 분석할 때, 사람을 평가할 때,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일을 기획할 때, 즉 일을 할 때 '운'을 제대로 인지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얼마나 많은 보고서에서, 얼마나 많은 인사고과에서, 얼마나 많은 회의에서 '운'을 얘기하고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보라.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성공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운'이라는 단어를 보기도 힘들고, 쓰기도 힘들며, 말하고 듣기도 힘든 실정이다 - 24

우리가 말하는 '일취월장'을 하기 위해서 가슴 속에 새겨야 할 제1의 신조는 '예측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측의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우리는 과거의 예측이 아니라 '운'이었음을 알게 된다. 예측의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완벽한 계획이란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예측의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혁신에 있어 아이디어의 질보다 아이디어의 양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예측의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최선을 기획하는 것보다 최악을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인지하게 된다. 예측의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조직에서 실수를 용납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조직문화인가를 인지하게 된다. 예측의 불가능성을 이해할 때 예측을 남발하고 자신의 예측을 자랑하는 전문가들이 실제는 사기꾼에 가깝다는 사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전문가 아닌가? 한 분야를 수십 년 넘게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 아닌가? 안타깝게도 전문성과 예측능력은 같은 말이 아니다 - 34

일을 할 때는 무수한 변수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리저리 맞추다 보면 인과관계처럼 보이거나 유의미한 상관관계처럼 보이는 많은 통계들을 접할 수 있다. 그것들은 함정이다. 그래서 탁월한 통계적 사고를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는 것이다. 또한 유의미한 상관관계와 무의미한 상관관계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 105

맥락적 사고는 상황에 따라 유연한 생각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균형감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경영학자들은 지식의 탐색과 지식의 심화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양손잡이 경영'이라고 하며 실제 혁신과 관련해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당연히 양손잡이 경영은 맥락적 사고가 있을 때에 가능하다 - 118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도 부족한 면이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 상대방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잊을 때가 많다. 이는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일어난다.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든 당사자들과 고객은 완전히 입장이 다른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괜찮고 좋으니 고객도 괜찮고 좋을 것이다'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는 관련 내용과 장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공급자의 생각과 판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데도 그렇다. 매해 수없이 많은 신제품들의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그 신제품들 중에 고객이 우리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나온 상품들은 없다. 지식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 143

의사결정을 할 때 현재의 선택안이 충분하지를 물어보자. 그래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안들을 찾아보자. 그 대안들 속에 진짜 해답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다른 선택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기회비용과 벤치마킹을 활용해보자. 이 하나의 프로세스만으로 당신의 의사결정이 실패율은 20퍼센트 떨어질 것이며 6배의 매우 훌륭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168

경쟁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선택에 있어서 '신속한 결정'이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신중함이라는 단어는 매우 좋아 보이지만 경쟁자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늦은 완벽한 선택보다 완벽하지 않지만 적시에 선택을 하는 것이 정글과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 필요하다. 결국 경쟁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선택의 속도를 의사결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 187

수차례 언급했듯이 대중이 어떤 디자인의 상품을 좋아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오르테가는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해 예측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소비자에게 최대한 많은 디자인을 선보여 고객의 반응을 살핀 후, 반응이 없는 것을 빠르게 폐기하고, 반응이 좋은 것은 더 양산하되 비슷한 콘셉트의 다른 옷들을 몇 종 추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자라의 디자이너들은 1년에 무려 3만 개의 디자인을 만들고, 그중 1만 8,000개가 고객들에게 선을 보인다. 대다수의 디자인이 소비자의 눈에 들지 않지만 워낙 많은 디자인을 선보이기 때문에 디자인 수가 적은 다른 회사이 비해 월등히 많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저렴하기까지 하니 고객의 선택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르테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혁신은 질보다는 양에 의해 탄생되는 사실을 - 243

비즈니스를 할 때는 항상 고객의 관점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고객의 목소리르 듣고 고객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상품 제작자가 빠질 수 있는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생활용품 기업인 처치앤드와이트는 '암앤해머'라는 빵 굽는 소다를 팔았다. 그런데 이들은 고객들을 관찰하면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어떤 고객은 암앤해머를 치약에 섞어 쓰거나 세탁 세정제에 들이 붓는 것이 아닌가. 상품 전문가가 보지 못한 상품의 다른 가능성을 상품에 대해 초보자인 고객이 발견한 것이다 - 255

뇌가 신체의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듯 전략 또한 실행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전략가는 생각만 하는 자가 아니며 아이디어만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행될 수 있게 실행과 관련된 프로세스, 자원, 조직 등을 실제로 정비하고 구축하는 자가 전략가이다. 그러므로 전략은 실행 능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 실행할 수 없는 아이디어는 전략이라고 할 수 없으며, 실행 가능성이 없는 좋은 전략이란 있을 수 없다 - 284

처음부터 세상을 놀라게할 명품을 만들 생각은 교만으로 치부하고, 승산이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테스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을 재빨리 만들어 출시한다. 이런 제품을 MVP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고객들의 반응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발 빠르게 제품을 개선하는 것이다. 만약 처음 아이디어를 낼 때 세웠던 가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선회한다. 이를 Pivot(방향전환)이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쳐 제품의 완성도를 높인 후 검증된 가설을 바탕으로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제품 출시 및 판매를 실행한다. 이것이 바로 '린 스타트업'이라는 경영 전략이다 - 296

숨은 자원을 바라볼 떄는 선입견을 버리고 맥락적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에게 성냥 하나가 있다. 만약 지금 칠흑같이 어둡다면 성냥 하나는 밝은 빛을 내어 시야를 환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잠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을 잠깐 꺼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엄청나게 많은 마른 장작이 불쏘시개와 함께 준비되어 있다면 성냥 하나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같은 성냥 한 개라도 이렇게 맥락을 달리하면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 308

연구에 의하면 100달러를 기준으로 할인율과 할인 가격을 나눠서 제시하는 것이 판매에 더 유리하게 작용된다고 한다. 이를 100달러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100달러가 안 되는 상품은 할인율을 표시하는 것이 좋고, 100달러가 넘는 고가의 상품은 할인 가격을 알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달러 제품을 45달러로 할인할 때는 '10퍼센트'가 할인되었다는 정보를 제시하고, 500달러 제품을 10퍼센트 할인했다면 '50달러'가 할인되었다고 제시하는 것이 좋다 - 329

마케팅을 할 때 몇 번이고 물오바자. 과연 우리가 하는 마케팅이 '리마커블'한가? 눈에 확 띄는가?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실용적 가치를 제공해주고 있는가? 놀랄 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소셜 화폐, 가시성, 감성, 실용성, 스토리라는 5가지 요소를 갖추게 된다면 최고 수준의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 335

직원이 자신의 동료를 자발적으로 돕거나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이디어를 스스럼없이 내는 행동을 '조직 시민행동'이라고 한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 시민행동이 많이 나타날수록 좋다. 홍콩 시립대학교 고수인 무아메르 외저가 보석 세공사 266명을 연구한 결과, 자율성이 높은 직원일수록 조직 시민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통제가 아니라 자율성을 허락할 때 조직에 대한 헌신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총동기 이론으로 볼 때 자율성은 가장 긍정적인 동기부여인 일의 즐거움과 일의 의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정서적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율성은 창의적 발상의 토대가 된다. 높은 동기부여에 따른 몰입과 창의성 발현은 당연히 조직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밖에 없다 - 373

비즈니스의 현장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비상시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낼 수 없도록 때로는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최소한 자신이 하는 일이나 자신이 있는 근무 환경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직원은 더 일에 몰입할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합당한 통제권을 줄 때 직원들은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직원의 건강과 조직의 생산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생산성을 떠나 직원들은 '인간'이다. 귀중한 한 생명이다.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사명이다. 그래야 우리 모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임을 잊지 말자 - 377

공짜의 매력은 바로 손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공짜를 선택한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다. 어차피 그것은 공짜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공짜가 아닌 무엇인가를 선택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잘못된 선택으로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우리는 당연히 공짜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공짜는 앞에서 언급한 인가의 대표적인 비합리성인 손실회피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료화가 비즈니스에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같은 산업 분야라면 전통적인 유료 비즈니스를 하는 상품들을 파괴해 버릴 수가 있다. 이를 소멸화라고 한다. 무료화에서는 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면, 소멸화는 제품과 서비스가 사라진다 - 436

힘들 때는 다 같이 매달려 일해서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때 리더는 지시받은 업무 사항을 직원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그에 수반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리더 본인이 최대한 떠안아야 한다. 그래야만 팀원들이 일에 더 전념할 수 있어서 힘든 상황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종료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잘될 때이다. 모든게 잘된다고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일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직원들에게 반드시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대해 준비를 시켜야 한다. 여기서 준비라 함은 구체적으로 업무적 역량개발이다. 퇴근을 정시에 지켜서 개인적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도 간접적이지만 여전히 개인과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 458

구성원을 일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해당 업무에 관한 디테일을 알려주는 것이다. 한 업무에서 제대로 내공을 축적하여 직급이 올라가면 더 많은 디테일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되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큰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직급이 낮을수록 디테일에 더 가까이 있지만, 가까이 있기에 그 중요성을 더 쉽게 간과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리더는 구성원이 디테일을 놓치면 다그치고 무조건적인 압박을 할 게 아니라 그 사소한 일이 왜 중요한지 큰 그림과 함께 설명해줘야 한다. 또 그런 디테일을 잘 챙기기 위한 구체적인 조언도 해 주면, 구성원의 리더에 대한 신뢰감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렇게 리더에 의해 많은 구성원들이 능동적으로 일깨워진 상태로 함께 일하게 되면, 서두에 언급했던 시너지의 새싹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 459

학습은 책상 앞에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겪는 '경험' 또한 학습이며 이를 '실질 학습'이라고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양손잡이 경영에서 지식의 탐색을 이야기하자면, '경험의 축적'은 지식의 심화를 말하는 것과 같다. 하루하루 쌓아가는 오늘의 경험을 절대 헛되이 생각하면 안 되며, 책상에서 일어나 현장에서 온 몸으로 학습할 필요가 있다 - 484

회사 생활이 결정적으로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대부분 리더가 지식의 생산을 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생산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예술가가 아닌 이상 순수한 영감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지식 혹은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여러 지식을 합치면서 거기에 약간의 본인 생각을 가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열심히 배웠지만, 전달의 과정을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습득한 지식들이 전혀 요약되어 체득되어 있지 않다 - 526

낮에 꿈을 꾸는 자는 항상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열정이 식지 않고 한계에 굴복하지 않으며 성취에 대한 자신감으로 어렴울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꿈을 생생히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꿈꾸는 자가 갖고 있는 여러 혜택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꿈을 이성적으로 이루어내는 냉철함이 그것이다 - 5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남녀차별, 특히 어린시절부터 집안에서 밖에서 당연하듯 당연하지 않듯 생기는 남녀간의 차별은 셀 수 없이 많다. 무엇을 하든 남자가 솔선수범, 그러면서도 "여자들은 안돼"라는 말을 쉽게 내뱉고 이해하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나 역시도 남녀차별에 관해 많은 걸 겪었다. 특히 온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날엔 식구가 많으니 남자들부터 식사하자라던가, 남자들은 가만히 있거나 TV를 보면서 쉬지만 정작 여자들은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나 역시도 그렇게 알고 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들은 안방에서 식사를, 여자들은 부엌 한 켠에 쪼그려 밥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씨는 서른네 살에 결혼해 딸을 두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남녀간의 차별을 숱하게 겪어오다 사회 생활과 일상에서 겪는 남녀차별 발언에 대해 대꾸 하나 하지 못한다. 남녀차별이라는 게 당연했던 세대, 지금도 변함 없이 흘러가는 그런 세대 속에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 여성이다.

책 속에서는 김지영 씨의 어린시절부터 직장을 다니다가 임신을 하여 퇴사한 후 육아에 전념하기까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남성인 나조차도 알고 있었지만 당연하게 넘어갔던 성차별 발언을 보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육아에 전념하며 집안일까지 도맡는 김지영 씨를 보며 주변에 출산 후 산후 후유증을 겪는 이들이 생각났다. 그녀들 역시도 하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일명 '워킹맘'들이 얼마나 대단한 정신력으로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김지영 씨는 우리나라를 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는 여성 분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상황에 분통하기도 하고 공감도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나와 같은 남성들이라면 우리가 자칫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녀차별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벌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당연하듯이 여기고 그걸 이용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과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앞으로의 미래에는 남녀간의 차별없이 조금이라도 동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하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ㅎ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 29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 46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 68

김지영 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같은 해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설문 조사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퍼센트였고, '여성을 선호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96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태워 준다고? 김지영 씨는 순간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했다.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100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 123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힘든 나라로 꼽혔다 - 124

홧김에 김지영 씨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139

그 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 144

아기는 새벽 4시에 태어났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김지영 씨는 진통할 때마다 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예쁜 아기는 안아 주지 않으면 밤이고 낮이고 울기만 했고, 김지영 씨는 아기를 안은 채 집안일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잠도 자야 했다. 아기에게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이면서, 그래서 두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면서, 예전보다 더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고, 아기의 옷과 수건들을 빨고, 젖이 잘 나오도록 자신의 밥도 열심히 챙겨 먹으며 김지영 씨는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 무엇보다 몸이 아팠다 - 147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에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떄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149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시간 10분 정도이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고 주부가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아이 없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김지영 씨는 마음 편하게 집안일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 157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4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병에 걸린 주인공 선윤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책 아몬드를 읽고 난 후 저자 손원평 작가의 팬이 됐다. 그녀가 '아몬드'를 쓰기 전 발표한 '1988년생'은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는데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서른의 반격'이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에 나오는 주인공은 단군 이래 우리나라가 가장 호황기로 불렸던 88올림픽에 태어나 학창시절 어느 반에나 한 명쯤 있을 흔한 이름을 가진 김지혜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지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듯 안정과 높은 월급의 대명사인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하지만 하루종일 복사만 하고 정규직도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

10개월째 비정규직으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김지혜는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존재하지 않는 정진 씨를 점심시간마다 만나며 자기만의 안식을 찾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사내에서 직원에게 공짜 강의로 제공하던 우쿨렐레 강좌를 듣게 되면서 이규옥과 무인, 남은 아저씨를 만나며 모임을 결성한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함께 부조리함에 반항하듯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현재의 불만족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서른의 반격'에 나오는 김지혜는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정답이 없는 시대에 강좌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과 비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며 정규직은 커녕 취업도 힘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김지혜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내가 현 사회의 부조리함에 목소리를 얼마나 냈을지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지난 봄 장편소설 '아몬드' 이후 약 8개월이 지나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을 읽으면서 또한 느낀 것은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그녀의 필력에 감탄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인데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나 '서른의 반격'을 읽는 동안 주인공의 생각에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후 손원평 작가가 낼 작품에 기대가 모아진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신호가 왔다. 엄마는 책에서 본 대로 흡, 하고 짧고 강하게 기합을 넣었다. 흡, 흡, 흡, 세 번 만에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딸이었다. 엄마는 안도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김추봉이 될 뻔했던 나를 꼭 껴안았다. 어쨌든 내가 폐호흡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쌔근쌔근 잠든 세상의 첫 번째 밤, 엄마의 뒤바뀐 승리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백 미터 금메달리스트는 벤 존슨에서 칼 루이스로 바뀌었다. 그렇게 눈물겨운 투쟁을 거쳐, 아직 산후 조리도 채 마치지 못한 엄마가 밤을 세우고 옥편을 뒤지며 고심한 끝에 내가 얻게 된 이름은, 88올림픽을 즈음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 중 가장 흔한 이름인 김지혜가 되었다 - 11

정진 씨를 만들어 낸 건, 이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하나의 숨통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언제나 같은 사람들과 밥을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숨 막히는 일이다. 매일 점심때마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오늘은 돈가스 어때, 좋아요, 메뉴는 짜장면으로 통일할까, 그러죠, 따위의 대화를 나누는 것. 나서서 냅킨을 깔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도맡아 물을 따르는 것, 다들 그런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도피처가 필요했다 - 34

다시 복사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나의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복사기 토너? 나사 정도의 부품? 문득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딱 봐도, 성실하게 야무져 보이는 여대생이다. 면접 장소가 어디냐고 조심조심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예의 바르게 묻는다. 나는 손끝으로 면접 장소를 가리켰다.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싱그럽다. 아까 본 이력서 속 경력이 떠오른다. 여기서 일하기에 너무 모자람이 없는 이력이다.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 하나의 모자람이 되어 그녀는 이곳에서 일하지 못할 것이다 - 36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그 안에 무언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내 인생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한입 머금고 목구멍 저아래에서부터 스며나오는 불안과 섞어 삼켜버린다. 연예인이 자신의 사업 실패와 바가지 긁는 마누라 얘기를 털어놓으며 눈물 섞인 웃음을 선사하다. 창밖으론 점점 화려해지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겠지. 어딘가 높은 곳에 사는 누군가의 눈에 분명 그런 그림이 보일 거다. 각자의 창으로 보이는 장면이 조금씩 다른 것뿐 - 37

나는 그의 미련함이 반갑지 않았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여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하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 가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법이다 - 43

그날 밤, 나는 알딸딸한 정신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온 국민이 광장으로 나갔던 그해 여름의 사진들을 검색했다. 광화문 거리가 촛불로 빼곡히 들어차 반짝이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놀랍다. 빛이 하나하나 모여 알고 있던 세상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꾸어놓는다. 순수하게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정말 이랬던 적이 있는 걸까. 그리고 저 수많은 불빛 중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것일까. 감동이 밀려온다. 짧고 휘발성 강한 감동이, 억울하건 화가 나건, 사람들은 세상에 비일비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꾸역꾸역 잘도 잊어버렸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아니, 살아지지 않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그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고, 통용되는 것들에 대부분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자신 없게, 네, 라고 말해버리는.. 그런 내가 규옥의 제안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규옥에 대한 이끌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번쯤은, 단 한 번쯤은 자신있게 외쳐보고 싶어서였을 거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고 - 90

너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보수화되는지 알아? 명백한 자기 재산이 생길 때야. 절대 빼앗기거나 침해될 수 없는 것, 집이나 돈이나 그럴듯한 밥그릇이 생길 때. 근데 나한테 그게 얘야. 그런 게 생기면 있지. 이 세상에 갑자기 되게 위험해 보인다? 코웃음 치며 부렸던 객기는 다 증발하고, 교통사고, 전쟁, 사이코패스, 환경호르몬, 미세먼지, 그런 것만 생각하게 돼. 그리고 나는 집 밖의 몹쓸 것들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투사가 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점점 보수화되지. 나와 다른 세계에서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지거든. 기본적으로 팔짱 탁 끼고, 걸려봐, 된통 쏘아줄 테니까, 이 마인드야.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도 참 젊은 나이인데, 워홀 갔다가 웜홀에 빠진 줄 알았는데 이젠 블랙홀이다 - 101

해본 적 없는 의문들이 하나둘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먹는 모습을 찍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처음 나온 걸까. 내가 밥을 먹고 있다는 행위조차,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아야 비로서 의미가 생기는 걸까. 똥 누는 모습을 감추면서 먹는 행위는 왜 그토록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까.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무슨 심리일까. 먹고 살기 위해서, 라는 말은 왜들 그렇게 입에 달고들 사는 걸까. 먹기 위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먹는 걸까, 뺨 위로 뜨거운 게 흘러내린 걸 깨달은 후에야 나는 당황해서 창을 껐다. 이런 건 맘에 들지 않는다. 남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도 없으면서 흘려지는 눈물, 달아오른 볼을 두드리고 휴지로 물기를 찍어냈다 - 111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뻣뻣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을 뿌려도 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은 늘 깜짝 놀라면서 당황해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단어들은 이런 것들인 것 같아싿.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 129

간신히 문을 열고 신발을 팽개치듯 벗은 후 화장실로 들어가 헛구역질을 몇 차례 했다.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토하고 싶은데 게워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세상은 대체 왜 이 모양인 걸까. 이런 사소한 일까지 내 의지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게 갑자기 무척이나 서러워져 나는 엉엉 소리를 내서 울부짖었다. 너무 취해서인지 눈물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세면대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마주 봤다. 서른 살의, 젊다면 젊은 낙오자가 서 있었다. 아니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낙오한 적도 없다. 잘나갔던 적도 없기 때문에 슬럼프라는 말도 사치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을 뿐이다. 내 깜냥만큼, 내 능력만큼, 내 성격이 받쳐주는 딱 그만큼 그게 나였다 - 170

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만 반복하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 179

실연의 상처가 아니라 복합적 괴로움이다. 혹은 비밀스런 죄책감이다. 규옥과의 키스를 그만두었던 그 밤으로 수렴하는 떳떳하지 못한 죄책감, 너는 멋진 사람이지만, 너와는 내 미래를 함께할 수 없다는, 그 알량한 방어기제 내지는 허영심, 내가 함께 하는 행위에 대해 끊임 없이 의심했음에도 부룩하고 말하지 못한 가식, 그걸 거울놀이 하듯 한 때의 동지였던 무인에게서 보게 되는 아이러니, 어쩌면 처음부터 속으로는 알고 있었을 거다. 이런 행위 따위로는 세상을 바꿀 수도, 균열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걸, 다만 나는 그걸 입 밖으로 내지 못했을 뿐이다. 얕은 진심을 드러내기엔 너무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어젯밤 저 바닥까지 헤집고 쑤신 무인이 나보다는 솔직한 건지도 모른다 - 215

거리의 모습을 똑같았다. 내가 사회적으로 물의가 될 만한 사건을 벌이고 구치소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건 그 누구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하찮아서 다행이었다. 그 하찮음은 이 세상에 멀어지고 있는 더 끔찍하고 더 슬프고 더 자극적인 일들에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 일들로 시선이 돌려지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드라마는 금세 잊혀지고 만다 - 219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 있다고 가끔식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 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