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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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남녀차별, 특히 어린시절부터 집안에서 밖에서 당연하듯 당연하지 않듯 생기는 남녀간의 차별은 셀 수 없이 많다. 무엇을 하든 남자가 솔선수범, 그러면서도 "여자들은 안돼"라는 말을 쉽게 내뱉고 이해하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나 역시도 남녀차별에 관해 많은 걸 겪었다. 특히 온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날엔 식구가 많으니 남자들부터 식사하자라던가, 남자들은 가만히 있거나 TV를 보면서 쉬지만 정작 여자들은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나 역시도 그렇게 알고 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들은 안방에서 식사를, 여자들은 부엌 한 켠에 쪼그려 밥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씨는 서른네 살에 결혼해 딸을 두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남녀간의 차별을 숱하게 겪어오다 사회 생활과 일상에서 겪는 남녀차별 발언에 대해 대꾸 하나 하지 못한다. 남녀차별이라는 게 당연했던 세대, 지금도 변함 없이 흘러가는 그런 세대 속에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 여성이다.

책 속에서는 김지영 씨의 어린시절부터 직장을 다니다가 임신을 하여 퇴사한 후 육아에 전념하기까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남성인 나조차도 알고 있었지만 당연하게 넘어갔던 성차별 발언을 보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육아에 전념하며 집안일까지 도맡는 김지영 씨를 보며 주변에 출산 후 산후 후유증을 겪는 이들이 생각났다. 그녀들 역시도 하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일명 '워킹맘'들이 얼마나 대단한 정신력으로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에 나오는 김지영 씨는 우리나라를 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는 여성 분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상황에 분통하기도 하고 공감도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나와 같은 남성들이라면 우리가 자칫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녀차별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벌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당연하듯이 여기고 그걸 이용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과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앞으로의 미래에는 남녀간의 차별없이 조금이라도 동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하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ㅎ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 29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 46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 68

김지영 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같은 해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설문 조사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퍼센트였고, '여성을 선호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96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태워 준다고? 김지영 씨는 순간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했다.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100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 123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힘든 나라로 꼽혔다 - 124

홧김에 김지영 씨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139

그 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 144

아기는 새벽 4시에 태어났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김지영 씨는 진통할 때마다 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예쁜 아기는 안아 주지 않으면 밤이고 낮이고 울기만 했고, 김지영 씨는 아기를 안은 채 집안일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잠도 자야 했다. 아기에게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이면서, 그래서 두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면서, 예전보다 더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고, 아기의 옷과 수건들을 빨고, 젖이 잘 나오도록 자신의 밥도 열심히 챙겨 먹으며 김지영 씨는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 무엇보다 몸이 아팠다 - 147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에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떄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 149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시간 10분 정도이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고 주부가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아이 없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김지영 씨는 마음 편하게 집안일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 157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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