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왕권과 교역
이성시 / 청년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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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원에 갈무리된 신라 유물과 육국사 등에 기록된 발해 관련 기사를 두루 살펴보면서 근대인의 선입관과 달리 정치와 경제를 뚜렷이 가르기 어려운 고대 동아시아 교류사의 특성을 당대인의 시선에 가깝게 복원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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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요즘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역사 서술이 대체로 최근 100년 사이에 해석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 고대사의 내용도 고대부터 이어지는 전통적인 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그 대부분은 19세기 후반의 근대 국가 형성기에 국민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 서양의 것과 유사하게 창안된 것으로, 이것이 지금까지 일본 고대사라고 일컬어져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중국, 한국, 북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서기》를 필두로 하는 일본 6국사나 중국의 《사기》부터 《신당서》에 이르는 정사(正史), 혹은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고대사 사료는 이전부터 계속 읽혀 오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상을 이들 사료에서 직접 끌어낼 수는 없다. 근대 국가가 고대의 역사상을 새롭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은 해석학이다. 과거의 사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시대에 살고 어떤 가치관의 구속을 받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사료를 해석한다면, 현재 우리 시대의 가장 통속적인 가치관과 해석 도식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험 삼아 2차세계대전 이전에 나온 일본사 책과 전후 1960년대 무렵까지의 연구서를 펼쳐보라. 거기서 일정한 사고의 패턴 아래 이뤄진 해석 유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역사 연구는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분위기와 시대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면 그러한 구속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어떤 시대의 구속을 받으면서 역사를 연구해 왔는가, 그리고 현재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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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된 임진왜란 - 근세 일본 고문헌의 삽화로 보는 7년 전쟁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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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 실린 324점의 삽화를 통하여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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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593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벽제관 전투, 1597~98년 가토 기요마사의 울산성 전투, 1598년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사천 전투를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3대첩이라고 칭한다. 조선·한국 측이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을 1592년 김시민(金時敏)의 1차 진주성 전투, 이순신의 한산도 전투, 1593년 권율의 행주산성(幸州山城) 전투로 꼽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국은 자국군이 승리한 전투를 기억하고 패한 전투는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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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본 임진왜란 -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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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략에 ‘복수‘하는 전쟁이며,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인들도 섬기는 자비로운 ‘도깨비 장군‘이었다는 에도 시대 일본인들의 인식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당혹스러워서 그들이 그렇게 여기는 까닭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임진왜란의 비극을 또다시 겪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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